어떻게 나랑 똑같이 생각하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만난 레이먼드

by 여행가 데이지


덜컹덜컹


상파울루의 지하철 출발한다.

지하철 안, 드문드문

아날로그의 두꺼운 책을 읽는 이들이 보인다.


'여전히 아날로그가 보이는구나.'


아날로그 감성에 괜스레 정을 붙인 채,

넓은 지하철 창가를 바라본다.


완공되지 않은 날 것의 주황색의 벽돌로 이루어진 주택 단지가 보인다.

주황색의 향연을 지나쳐 상파울루 도심지에 들어선다.



카우치 서핑을 통해 우연히 발견한 언어 교환 행사.

남아메리카에서 온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 나는

상파울루 일대를 구경하고 난 뒤,

언어 교환 행사에 참석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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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교환 행사에서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이들은

눈이 마주치면 눈인사로 시작해 이전에 보던 친구처럼

서로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미국 등

남과 북아메리카 곳곳에서 온 이들과 만난다.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모두가 브라질 상파울루에 모이게 된 이야기는

나를 온전히 순간에 빠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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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에서 온 레이먼드와 함께



한참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고,

집으로 돌아갈 지하철은 끊겨버린다.

앞 날에 대한 생각 없이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깔깔대는데

몇 분 전에 이야기 나눈 레이먼드가 내게 묻는다.


"데이지, 집에 어떻게 돌아갈 거야?"


"모르겠어. 지금 대중교통은 다 끝났겠지?"


"나는 차가 있어. 조금 있다가 다른 친구들도 데려다 줄 건데,

괜찮으면 내가 데려다줄게."



상파울루거리




나를 비롯해 다른 친구들도 레이먼드 차에 오른다.

내 호스트과 정반대인 그는 더 멀리 가야 하는 상황.

친구를 데려다주고 호스트 집으로 향하니

꼴딱 새벽 한가운데에 선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며 움직이는 와이퍼 소리에

우린 새벽 늦도록 이야기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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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베네수엘라 사람인 레이먼드는

경제적으로 살기 힘든 본국을 나와 브라질에서 일한다.



베네수엘라는 전 세계에서 원유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이다.
이에 석유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기득권 세력의 부패가 생긴다.
유가 가격이 내려가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폭락한다.
실제 화폐가치는 사라지고 화폐 무게와 물물교환이 이뤄지기도 한다.

[출처] 14F




"온라인으로 학생을 가르치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어 수업을 못한 적도 있어.

베네수엘라에서 일하려면 전기처럼 기술적 문제를 감안해야지.

나도 베네수엘라에서 언제나 노심초사하며 일했지."

베네수엘라인을 처음 본 나는

가난하고 위험하다고 알던 중앙아메리카에

베네수엘라가 속해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


처음 본 베네수엘라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로

작동하는 와이퍼를 따라 베네수엘라 이미지를 색칠한다.


"반면에 브라질에서의 삶은 매우 안정적이야.

교통수단도 좋고, 네트워크도 편리하지.

이곳에서 달러로 돈을 번다면 금상첨화야."

베네수엘라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산업심리학자 준비를 하던 과거를 바탕으로

심리상담가의 면모로 내게 오밀조밀 질문한다.

그와 대화는 마치 심리상담하는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이 난 좋다.


*산업심리학: 산업 활동에서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는 심리학의 한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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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는 내게 묻는다.


"네가 관심 있는 분야는 뭔데?"


"나는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어.

근데 한국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와 소통하고 싶어.

아마도 뉴욕이나 파리 등

전 세계인을 만나는 곳에서 일하면 좋겠다."



"어떤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은데?"



"여행하면서 내가 정치학이나 국제관계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어.

한국에 돌아가면 그쪽을 공부하면서 더 고민해 보려고.

이 외에는... "


'어떤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은지의 대답을 찾으며

정적이 이어진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어떤 삶을 살 건지, 어떤 사람이 될 건지' 물으며

오랫동안 생각해 온 질문이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나는

머뭇거리며 말한다.


"음.. 조금 더 생각해 봐도 될까?"


"물론이지. 너희 집까지 가려면 1시간이나 더 걸리는걸.(웃음)"



상파울루의 늦은 새벽.

빗방울이 창문에 톡톡 인사하는 차 안.

불과 몇 시간 전에 처음 본 한국인을 데려다 주기 위해

늦은 밤 한 시간 넘게 자동차를 몰고 있는 이 사람.


내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는 질문이 참 좋다.

그 질문을 곱씹으며 레이먼드가 어떤 사람인지를 느낀다.


그와의 대화는 생각 변화의 바람을 수용할 줄 아는

말랑말랑한 젊은이와의 대화처럼 느껴진다.


젊게 보이는 그에게 비결이 무엇인지 물으니

그는 웃으며 답한다.


"젊게 생각해서 그래.

젊은이들과 계속해서 소통하고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언제나 수용하지."


claudia-aran-L52QsKeNq40-unsplash.jpg?type=w773 Photo by Claudia Aran on Unsplash



어느덧 새벽 2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하루 종일 상파울루를 휘저은 내 몸은 잠에 빠지려고 유혹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삶과 주옥같은 말은 잠에 빠지지 않도록 나를 붙잡는다.


"젊을 때 방탕한 생활을 하며 지냈어.

거의 이 바닥까지 갔었지.

이런 삶이 잠시 동안은 괜찮지만,

쭉 이렇게 산다는 건 좋지 않다고 깨달았어.

나 스스로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는 이후 다시 베네수엘라로 돌아가

미국 대사관에서 진행하는 장학금을 받아 스탠퍼드에서 심리학 마케팅을 공부한다.



"스탠퍼드에서 돌아온 뒤로 나는 무언가 더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되었어.

내가 어떤 종류의 삶을 원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선택과 집중 말이야."



어떤 삶을 살지, 무언가에 어떻게 도달해야 할지 막막하던 시절,

그는 자신이 배운 분야를 알아가며

그 분야 속 특정 분야를 발견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속에서 내면에 있는 그만의 꿈을 찾는 이야기까지도.

요 근래 스포츠 심리학자를 준비하는 그는 말한다.



"스포츠 심리학자는 의학적으로 근본적 문제를 보기보다,

수행에 집중하지. 예컨대 베네수엘라에서 유명한 야구를 말하면,

야구선수들이 투수를 잘하도록 심리적 도움을 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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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상담을 배운다면, 상대방의 힘든 부분을 함께 들어줄 수 있어야 해.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나에게 와서 상담받기도 했어.

나는 친구들에게 편안한 존재였지."


실제 그와의 대화 내내 편안함을 느낀다.

그는 내게 편안하게 질문을 하고,

난 유도된 그 질문을 곱씹으며 나와 대화한다.


아직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질문,

대답하면서도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생각,

미처 나도 모르게 하는 새로운 대답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알아간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어.

그래서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했지.

돈만을 열심히 벌었어.

그리고 여행을 많이 했어.

그리고 깨달았지.

돈을 많이 벌기보다,

삶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고."


"너의 젊은 시절은 지금의 내 모습이잖아!"


그가 들려준 우주는

내 우주와 평행선을 이룬다.

한때 세상을 바꾸고 싶던 젊은이의 야망,

더 나은 삶을 꿈꾸던 젊은이의 꿈,

자신은 큰 사람이 되겠다 믿은 가능성까지도,

레이먼드가 거쳐온 우주의 역사는

지금 내가 거치고 있는 역사와 거의 일치한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세계를 바꿀 수 없다는 특정한 생각이 들었어."



그는 젊은이의 야망을 넘어

자만감으로 똘똘 뭉친 본인을 돌아보며

어린 십 대들의 사고를 가진 시기라 말한다.



"그 생각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시간이 걸렸어.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했지.

네가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고.

좋은 사람이 되고 나서 무언가, 작은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시도하라고 말이야.

무엇이든 간에 단계별로 이뤄지는 법이야."


그의 말을 들으며

세상을 바꾸겠다고,

더 좋은 영향력을 펼치겠다고 외치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겹쳐진다.



그가 지내온 삶 하나하나는 무언가 지금의 나를 서술하는 느낌이 든다.

그가 보내는 지금의 삶이 어쩌면 미래의 내 삶은 아닐지 생각한다.

이정표 없는 지도 위에서 내가 할 일은 그저 그의 말 토씨를 따라가려 노력하는 것뿐이다.



"레이먼드,

여행하면서 만난 여러 사람들도 결국 자기가 특별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더라.

그렇지만, 너의 말처럼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인 걸.

좋은 사람이 되고, 작은 그 무언가를 바꾸려는 게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말이야.

지금의 나는 큰 꿈을 꾸고,

여전히 더 나은 세상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나도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믿어."



그에게 하는 대답은

사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언제나 작은 변화의 가치를 잊지 말라고.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우리 모두는

그 무엇보다 특별한 존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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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상파울루의 거리



"우린 모든 순간마다 선택을 하지.

대게는 특정한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도 해.

나의 경우는 부모님이었어.

부모님을 행복하게 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이제는 나의 행복을 찾으려고.

우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선택해야 해.'"


이기적으로 들릴지 모르겠다며

웃음 짓는 그에게 말한다.


"아니야. 그건 이기적이지 않아.

내가 행복하지 않는데,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행복한 건 이기적인 게 아니야.

내가 행복하다고 남이 불행한 것도 아니잖아. "



자동차 전면 유리를 닦는 와이퍼 소리가 들린다.

편안하고 따뜻한 차 안.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레이먼드, 삶의 이유가 뭐야?"


KakaoTalk_Photo_2025-02-16-07-07-58_004.jpeg?type=w773 레이먼드 삶의 이유



"내 삶의 이유는 나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주는 거야.
(To feel good about myself)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거지.

왜냐하면, 내 삶의 대부분에서 내가 한 건, 다른 이들이 좋아하는 거였거든.
지금은 나는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고 있어"




남들을 배려하며 지내온 태도가 대화 내내 가득 느껴져서일까,

돌아가는 차편 고민 없이 데려다준 그의 친절함 덕분일까,

그와의 대화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남을 위해 살아온 그가 여전히 나를 위해 대화하고, 나를 위해 데려다주면서

자기에게 좋은 감정을 준다는 그를 바라본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이,

그의 마음씨가,

그가 지내온 삶과,

그 속에서 피어난 삶의 태도가


소중하다고 밖에 표현되지 않는다.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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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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