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만난 후안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돼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빅터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우린 잠재된 의미를 찾도록 도전해야 한다.
숨겨진 의미를 찾는 의지를 깨워야 한다.
도전 앞에서 주저하면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앞으로 전진할 잠재적 의미를
스스로 깨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빅터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칠레 파타고니아에 위치한 토레스 델 파이네.
흰 눈으로 뒤덮인 장엄한 산맥은
빙하, 호수와 함께 비현실적인 경관을 보여준다.
푸에르토나탈레스는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 가는 출발 점이기에
숭고한 산맥을 품고 있다.
나는 국립공원에 가기 전,
푸에르토나탈레스 호스트 후안과 만난다.
후안의 집은 커다란 창문을 갖고 있다.
창문 너머 하얀 눈으로 덮인 산맥은
우람하게 마을을 지킨다.
오붓한 오두막 같은 집 문을 여니
후안과 후안의 친구가 나를 반긴다.
커다란 레트리버 강아지도 내게 달려온다.
"안녕"
후안은 차분함을 풍기며 인사한다.
친구는 영화배우같이 훤칠한 외모로 내게 인사한다.
"안녕!"
베네수엘라 사람인 후안과 친구는
어릴 적 같은 마을 합창단 동료였다.
석유를 비롯한 정부 경제정책 실패로
급격한 경제 위기를 맞은 베네수엘라.
친구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칠레로 왔다.
"안녕!"
일을 마치고 돌아온 다른 친구도 인사한다
발랄하고 통통 튀는 매력의 친구 역시 베네수엘라 사람이다.
베네수엘라에 대해 무지한 나는
아는 지식을 동원해 갖가지 질문을 하며 대화한다.
"이제 장을 보러 갈 거야."
호텔에서 일하는 친구는 직장 동료와 다 함께 파티를 준비한다.
대화의 끝 무렵 즈음,
친구들은 저녁 파티를 위해 장을 보러 간다.
"나도 함께 해도 될까?"
"당연하지!"
그들은 이방인에게 흔쾌히 침대와 음식을 나눠주고 저녁 파티에 나를 초대한다.
평화롭기 짝이 없는 공간.
커다란 창문 너머로 설산이 보인다.
강아지는 풀 밭을 뛰어놀고,
친구들은 저녁 파티를 준비한다.
조금씩 도착한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며
다 같이 잔디밭에 둘러앉는다.
조금씩 저무는 여명을 음미하며
신나는 노래에 맞추어 이야기 나눈다.
"이 친구는 최근에 호텔에서 해고당했어"
"(웃음) 와하하 해고당했다니!"
친구들은 놀림을 주고받으면서도
서로에게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고 있다.
"전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웠었어.
그렇지만, 지금 나는 호텔에서 좋은 사람을 만났어"
"K-pop을 좋아해!"
"나도 내년에 호주 워홀을 갈 거야!"
"베네수엘라에서 모델을 했었어.
지금도 호텔 일을 하며 이곳에서 모델 일을 알아보고 있어."
필리핀에서 넘어온 친구, 베네수엘라에서 온 다른 친구,
칠레 시골 토박이, 칠레 도시 출신 등
우린 각자 배경을 공유하고,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다는 온기를 나눈다.
담대한 설산을 배경으로
여명이 하늘에 번져간다.
"우와! 정말 아름다워!"
각자 인생을 살아오다
남아메리카 작은 마을 푸에르토나탈레스 잔디밭 돗자리에 함께 모여든 이 순간,
주홍빛으로 발그레 저무는 일출은
우리의 미소를 더욱 잊지 못하게 만든다.
칠레의 밤을 안온하게 보내며
다음날 토레스델파이네 여정을 준비한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한 편의 화폭이었다.
국립공원을 거닐며 바로 옆에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보자니
마치 그림 옆을 걷는 기분이 든다.
푸른 하늘빛 호수는
고요하면서도 거칠게 철썩이며 파도를 만든다.
국립공원에서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을 느끼고 돌아가는 길,
지갑이 없어짐을 발견한다.
다시 마을로 돌아와 분실 과정을 밟던 중,
누군가 경찰서에 내 지갑을 두고 갔다는 소식을 받는다.
"나도 곧 출근하는데, 시내로 같이 갈래?"
경찰서에 가려는 나에게 후안은 말한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일하는 후안은
출근하기 전, 함께 시내를 소개한다.
지갑을 무사히 받아 들며 후안도 함께 기뻐한다.
우린 축하의 의미로 후안이 좋아하는 빵집의 빵을 사서
공원에 앉아 잠시 이야기 나눈다.
후안은 지난 시간을 공유하며
어릴 적 오케스트라 했던 경험을 말한다.
"나도 어릴 적 오케스트라를 했었는데,
다 함께 합주를 시작한 그 순간을 참 좋아했어."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후안은
무언가 지적인 느낌은 풍긴다.
"그 시간이 그리워?"
"그렇지."
그는 베네수엘라에서의 시간을 추억하고 있다.
그가 내뿜는 차분한 분위기는
지난 시간이 우수에 젖은 것처럼 느껴진다.
주위 관계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있는 그.
그의 차분함은 타지에서 지내며 느낀 외로움이 짙게 묻어난다.
달콤한 빵을 나누며 시작한 대화는 이내 깊어진다.
"후안,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올바른 사람이 되고 싶어. (right person)"
"나도 동의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
삶을 즐기는 사람,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여행하면서, 삶을 살아가면서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거든."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후안은 내게 질문한다.
"데이지, 가장 오래간 관계는 뭐였어?"
"중학교 때였어. 어렸을 때야, 지금도 물론 어리지만(웃음)
너는?"
"가장 오래간 건 4년이었어.
대학교 친구였는데, 대학 졸업한 이후에
자기 마을로 돌아가려 해서 헤어졌어."
"그를 보낸 걸 후회해?"
"응"
"너는 그에게 문자를 보낼 수 있잖아."
"10년 전의 일이야.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는걸."
관계에 대해,
지나간 인연에 대해,
붙잡을 수 없었던 순간에 대해
우린 깊은 대화를 나눈다.
나는 후안에게 말한다.
"나도 고등학교 때 관계에 대해 느낀 게 있어.
친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내가 그 친구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거든.
이후 수십 번의 사과를 하고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상대는 결국 내 사과를 받지 않았어.
우정, 사랑, 무엇이든 사람 간의 관계는
언제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지."
"동의해.
관계에서 매 순간 실패했지만,
결국에 그걸 통해서 많이 배웠어. "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관계를 통해 행복을 찾는다.
타인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타인을 통해 삶의 이유를 찾는다.
그 속에서 멋대로 되지 않는 관계는
우리에게 큰 깨달음과 소중함을 준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의 작은 공원에서
이 순간의 관계를 마음으로 간직한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를 떠나는 날.
후안은 버스정류장까지 함께해 준다.
"후안, 우리가 5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버스 출발까지 5분 남은 상황.
커다란 배낭과 함께 뒤뚱뒤뚱 정류장으로 뛰어간다.
무모한 도전 같은 이 순간에 웃음이 나온다.
"후안! 다행히 버스가 출발을 안 했어!"
무사히 버스 좌석을 확보하며
지난 시간에 작별 인사를 한다.
"푸에르토 나탈 레이스에서 함께해서 좋았어."
버스에 시동이 걸리며
출발 준비를 마친 순간,
그에게 작별 인사와 함께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내게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야.
(right person)
그는 차분한 웃음으로 덧붙인다.
"우린 아무에게나 강렬한 연결을 느끼지 않지.
함께 있으면 행복한 사람, 그런 사람을 찾고 싶어.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
열려있는 마음으로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사람 말이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데이지,
네가 어떤 감정, 순간을 겪으면
소중한 이들에게 그걸 알려줘."
네가 가진 상황을 주위에게 열어줘.
그리고 너 자신에게도 말해줘."
그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나는 푸에르토 나탈레스를 떠나는 버스에 오른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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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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