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먹는 게 곧 당신이다

아르헨티나 엘 찰텐에서 만난 탐

by 여행가 데이지



andrew-svk-150fZ07GQqs-unsplash.jpg?type=w773 사진: Unsplash의 Andrew Svk


해발 3375m 높이로 파타고니아 지방 안데스산맥에 위치한 피츠로이.

연기를 뿜어내는 산이라는 의미의 피치 로이는 세계 5대 미봉의 위대함을 드러낸다.

세계유산에 등록된 명산이자 파타고니아를 찾은 여행객에게 빠지지 않는 코스이다.



여행객은 대게 엘칼라파테에서 버스를 타고 엘찰텐으로 향한다.

나 역시 엘칼라파테에 도착해 버스정류장에 있는데 문득 생각이 든다.



'엘칼라파테에 있는 이들의 대부분이 엘찰텐으로 갈 텐데,

히치하이크가 당연히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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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나를 아스팔트 위로 이끌고,

난 도로 바닥에 짐을 푼 채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무심하게 지나치는 운전자들에게 미소를 지은 지 한 시간이 흘렀을까,

조그만 승합 차가 내 앞에 멈춰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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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찰텐으로 히치하이킹을 하며


영화 속 배우같이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운전자는

본인을 탐이라 소개하며 히치하이커를 실은 채 엔진 소리를 다시 내기 시작한다.



엘찰텐으로 향하는 도로 위.

달리는 차창 너머로 파타고니아 산의 위엄이 드러난다.

탐은 과거보다 눈이 조금 녹은 산을 안타까워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20240129_200003.jpg?type=w773 탐과 함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쭉 살아오던 탐은

친구의 권유로 엘 찰 텐트에서의 삶을 시작했고,

강황(tumeric)이라는 뜻을 가진 '꾸르꾸마' 비건 식당을 8년째 운영해 온다.



"별 뜻은 없어. 내가 강황을 좋아하거든 (웃음)"



공학과 정보학을 공부하다 관두고 그래픽디자인 공부로 전향해

졸업 후 바로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그는 실제로 소비자에게 필요 없음에도

필요하다고 설득시키는 작업이 탐탁지 않았다.


"'왜 내가 이런 거에 에너지를 써야 하는 거지?'란 생각에 의미가 없다고 느꼈지.

나는 무언가를 팔기보다, 진짜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 싶었어."


어릴 적 친척 집에 놀러 가면

마주치던 도축 현장을 끔찍이 여기던 탐은

18살 이후부터 베지테리언이 되었다.


11월부터 3일 사이인 성수기는 피츠로이를 찾는 여행객들로 마을에 활기가 넘치지만,

비수기에는 관광객도, 관광객을 응대하는 상인조차 없다.

휑하니 남겨진 마을이어도 탐은 1년 내내 엘찰텐에 머무르며 꾸르꾸르를 지킨다.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부모님 아래

부에노스아이레스 삶의 방식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여기 삶이 좋아.

앞으로도 이곳에서 살고 싶어."



과거 동물권에 관심이 많았던 나 역시도 베지테리언 삶을 고려하기도 하였고,

탐이 추구하는 건강하고 느린 삶에 관심이 있어왔기에

우린 건강한 삶에 대한 서로의 우주를 공유하고,

공유된 우주 속 수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한다.



탐은 다음 날인 생일을 맞아 42살이 되지만

서로의 공통점은 20년 차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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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찰텐으로 가면서


탐과 이야기하며 창문 너머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다.


RUTA40.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라고 소문난 국도답게

창가 너머로 드러나는 피스로 이에 감탄을 멈추지 못한다.


드문드문 보이는 사슴류의 동물을 보며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차분함에 휩싸여 쩍 벌어지는 입안에서

호들갑을 부리는 나를 보며 탐은 웃으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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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을 먹는지,

건강하게 먹는 방법이 어떤 건지 배워야 해.

우리가 먹는 음식의 기본적인 영양소는 알아야 하지. "


쌀에 다른 곡식을 섞어먹으면 좋으며

계란보다 콩 섭취가 낫고

생각보다 우리는 많은 프로틴이 요구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유르베다와 같이,

우리 몸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공부해야 해.

각자 저마다의 다른 작용을 갖고 있어.

내 몸의 주인은 나 자신이잖아.

내 몸을 스스로 파악하고, 그에 맞게 식습관을 가져야지."


아유르베다(Ayurveda).


인도 아대륙의 전통적 대체의학을 의미하는 단어는

우주와 인간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생활의 지혜와 과학을 의미하는 단어이자 탐이 추구하는 방식이다.


육식 문제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적극적으로 식습관 변화를 촉구하는 활동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 활동은 온전히 연민과 이해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육식주의에 대한 분노나 저항에서 비롯된 채식 운동은
오히려 사회에 더 큰 분리와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0원으로 사는 삶] 박정미


사람들의 식습관을 비난하지 않고 단지 모르기에 알려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주장은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되,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겨냥해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을 따뜻하게 껴안는다.


나 역시도 명상과 건강한 식습관을 추구하기에

건강한 삶에 대한 이야기 속 탐과 무수한 공통점을 발견한다.


만난 지 몇 분 되지 않은 우리의 첫 만남을 무색하게 만들어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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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가까워진 거리는 무수한 이야기를 꽃피워내고

어느새 피츠로이를 품은 마을에 다다른다.


"데이지, 잘 곳을 못 구했다면 우리 집에서 자도 돼."


피츠로이를 위한 새벽 등반 전 머무를 수 있도록

탐은 자기 공간을 내준다.


걸을 때마다 푹푹 꺼지는 나무판자 바닥 너머로

수공작업으로 만들어진 듯한 화장실과 책상 등이

조그만 다락방 느낌을 내며 탐의 삶을 보여주는 소중한 보금자리를 느낀다.


우린 따뜻한 차 한 잔과 음식을 공유하며

아스팔트 위의 인연을 이어갔고,

그의 조그만 유기농 농장 옆에서

나는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어려운 질문이라며 웃음 짓는 탐은 이내 생각에 잠긴다.

그를 기다리며 빵을 한 입 베어 무는 내게 탐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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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이 건강한 음식을 먹도록 도와주고 싶어.
우리는 건강하게 먹는 방식을 몰라.
우리의 식습관은 몸에 다 나타나지.
우리는 몸에 어떻게 에너지를 주는지 알아야 해.
그게 내 삶의 이유야.


삶이라는 텃밭에서 건강한 습관으로 피워내는 새싹은

타인에게도 전하고자 하는 마음과 어우러져

튼튼한 떡잎을 내기 시작한다.


"탐, 너는 올바른 일을 하고 있구나."


"올바르게 먹는 것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야.

사람들이 올바른 식습관을 알도록 도와주는 것,

사람들에게 올바른 의식을 만들어주는 것,

그게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야."


웃음에 풋풋함이 묻어나는 그의 얼굴은

유기농 텃밭에서 일군 상큼한 과일과도 같다.


"데이지, 물어봐 줘서 고마워.

사실 요 근래 고민하고 있던 게 있었는데,

너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내 고민에 대한 답을 조금 알 거 같아."


8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며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는 어느 순간 노예처럼 일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한다.

여전히 식당 운영을 좋아하지만

변화를 요구하는 무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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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 근본적 구조를 바꿀 시간이라고 무언가 너 안에서 말하고 있는 거야.

너는 그걸 해낼 수 있어. 내가 알아."


고맙다고 웃는 그에게 두 번째 가게 오픈은 어떠냐고 묻는다.

삶이라는 텃밭에 자란 떡잎 위로 봉송함 솜털이 돋아난다.

보드라운 솜털 같은 웃음을 지으며 그는 말한다.


"아마도 두 번째 식당을 열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내일은 내 생일이니 오늘은 생각하지 않을래! (웃음)"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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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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