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부터 시작하는 거야

아르헨티나 바릴로체에서 만난 애리얼

by 여행가 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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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40번 국도를 지나며


남아메리카 대륙의 남에서 북을 가로지르는 아르헨티나 40번 국도.

총길이 약 5,000km로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긴 도로인 40번 국도는

남쪽 끝과 북쪽 끝을 가로지르며 다양한 기후와 지형을 통과한다.


40번 국도의 끝자락인 파타고니아에서 출발한 버스는 바릴로체로 향한다.


광활한 대초원 너머로 펼쳐지는 호수와 산맥이 보인다.

자연이 가진 아름다움에 압도되며 평화로움과 경이로움의 경계를 오고 간다.


그 속에서 편안히 잠을 자기도,

헤드셋 너머 지난 시절 노래를 들으며 우수에 잠기기도 한다.


대자연의 숨겨진 마법을 속삭이는 도로 위에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몰은 파타고니아 산맥 사이로 조금씩 져간다.


GOPR4124.JPG?type=w773 아르헨티나 40번 국도를 타고 이동하는 길


한바탕 자고 나니 밝아온 다음날.

아름다운 호수를 가진 바릴로체에 도착한다.


바릴로체 칭찬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버스정류장 밖으로 발을 딛기는커녕


폭등하는 아르헨티나 환율에 헤롱헤롱한 채

산티아고로 행 버스 고민으로 반나절이 흐른다.


다음날 버스를 예매하고 나니

카우치 서핑을 통해 애리얼에게 연락이 온다.



"데이지! 너는 엄청난 여행자구나!

나는 일이 곧 끝나는데, 되면 만날래?"


본인을 애리얼이라 소개하며 버스정류장에 찾아온 그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내게 밝게 미소 짓는다.

그를 보자마자 반가움에 인사를 나눈 뒤

우린 함께 바릴로체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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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얼과 처음 만난 순간

버스정류장에 나서니 바릴로체의 푸른 호수가 전경에 펼쳐진다.

반나절을 버스정류장에서만 보낸 게 아쉬울 정도로 호수는 찬란하게 빛난다.

바릴로체의 호수는 엄마 립스틱을 몰래 바른 아이 입술처럼 짙은 색을 가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을 내뱉는 나에게 애리얼은 말한다.


"바릴로체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야.

난 이곳에서의 삶이 참 좋아."


등산, 캠핑, 스키, 수영 등 자연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모든 핑계를 가져와 시간을 만든다는 애리얼.

그는 바쁜 거리로 가득 찬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바릴로체로 넘어와 등산 장비 판매를 한지 어엿 5년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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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얼과 함께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열려있고,

아르헨티나는 아름다운 산과 호수도 있잖아.


아르헨티나가 경제적인 변동이 많아도,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나는 아르헨티나를 선택할 거야"


인플레이션으로 하루아침 물가가 완전히 달라지는 아르헨티나에서

불안정한 경제와 생활고로 시름을 앓고 있더라도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대게 본인 국가에 대한 큰 자부심으로 국가를 사랑한다.



"아르헨티나가 나에게 많은 돈을 주지 못하더라도,

아르헨티나는 나에게 수많은 것들을 줬지. 친구들, 부모님, 가족, 기회…"


'헬 조선'이란 별명을 붙이며 본인 국가를 떠나고 싶어 하는 한국이 문득 머릿속을 스친다.


'나조차도 한국을 좋아하지만, 더 넓은 세상을 위해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경제에서 살아가면서도

인상을 찌푸리며 스트레스받는 한국인의 모습과 대비되어

호탕하게 웃고 스포츠와 춤, 파티에 열광하는 아르헨티나인의 모습이 보인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지만,

자신의 국가를 사랑하며 현재 삶에 만족하는 애리얼의 미소를 바라본다.


자신의 배경, 문화에 자부심에 가득 찬 그의 모습이

바릴로체의 짙은 호수와 같이 아름답다.

그는 말한다.


"달러로 돈을 벌면서 여기 사는 게 최고인 거지 (웃음)"


함께 초콜릿 가게에서

그는 다양한 문화에도 흡입되는 스펀지 같은 힘을 가진다.

여러 주제를 꺼내도 그 주제에 대해 자신만의 확실한 견해로 이야기한다.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 나누면서 나도 배우는 것이 많아."


우린 음료수를 산 뒤 호수를 바라보는 잔디에 앉는다.

오후의 어스름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친구와 뛰어놀고, 연인과 눈빛을 교환한다.


커피를 들고 바릴로체 호수를 걷고, 그저 호수를 바라보는 삶을 지내는 그.

마을 전경을 품는 호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우린 이야기를 잇는다.



"나는 어렸을 때 유럽에 가는 게 꿈이었어.

지금도 하고 싶은 게 무수히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분명하게도 세계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지."


"에이, 지금도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렇지.

그렇지만, 현실적들을 정리하고 해야지.

내 목표는 2025년에 여행을 떠나는 거야.

그러기 위해 지금 당장은 일을 열심히 해야겠지."


여전히 이방인을 향해 밝게 웃는 애리얼.

여행을 꿈꾸는 그는 등산용품 판매일을 하며 본인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옮겨가며 브랜드 확장을 목표로 지낸다.


"사실 이게 성사될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은 하고 있어."


"꿈을 크게 잡으면, 네가 그거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꿈에 가까이 다가갈 거라고 하는 말도 있잖아."


그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에 놀라면서도

호기심을 가진다.


"데이지, 지금까지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어?"


"정말 수없이 많은 걸 깨닫고 느꼈지.

그중에서 너의 답을 들으며 생각나는 건,

여행하는 데 있어, 돈이 정말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혹자는 나한테 말하곤 해.

'세계여행을 한다고요?

부모님이 돈을 많이 쓰셨겠네요~'

혹은

'집안이 부자인가 봐요~'

그렇지만, 나는 관광이 아니라 여행을 하고 있는 걸.


여행은 사람을 만나고,

색다른 공간에 발을 딛기도 하면서

나의 세계를 넓혀가는 일인 걸.


물론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겠지.

그렇지만, 돈이 있어야지 여행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야."



"맞아. 관광과 여행은 다르지."

모든 게 돈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니까."


조금씩 어두워진 거리

잘 곳을 아직 안 정했다는 나에게

본인은 밤 동안 일을 해야 한다며 흔쾌히 집 열쇠는 건넨다.

아무렇지 않은 그가 놀라우면서도 감사하다.


그의 집에 짐을 내려놓고

바릴로체의 남은 밤을 보내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선다.


관광객을 위해 조성된 거리와

자연이 만든 아름다움을 느낀다.

애리얼이 출근하기 전,

우린 이어서 우주를 공유한다.



"애리얼,

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야?"


그는 내가 좋은 질문을 갖고 있다고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나의 질문을 통해 자신도 돌아볼 수 있다고,

이 대화를 이끌어줘서 고맙다고 덧붙이며 말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best person)

때로 부정적(toxic)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나쁜 사람은 아니지.

마지막 관계 이후 혼자 살아가는 걸 고려했지만, 쉽지 않더라.

어쩌면 우주가 누군가를 데려다주려나"


"상대방을 먼저 찾는 건 어때?"


"일부로 누군가를 찾으려는 건 잘못된 거야."


"왜 그게 잘못이야?"


"무언가는 그 순간에 존재하는 거야. 나에게 사건들은 우연하게 발생하거든.

때때로 무엇이든 재는 것보다 느끼는 게 중요하지."


어느덧 어두워진 바릴로체의 공기.

주황빛 가로등을 배경으로 바릴로체 초콜릿, 과자 꾸러미와 함께 공원에 자리 잡는다.

한적한 공원은 바릴로체 호수와 같이 담담하면서도 평안하다.

우리는 대화를 이어간다.


"우린 모두 저마다 다른 면이 있잖아.

때때로 두려움에 빠지고, 화도 나고, 웃고, 행복하기도 하지.

그 속에서 오늘 '나 자신'과 있는 사람 아닐까.

지금 나에게는 두려움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도 한국에 있을 때 명상을 매일 하고,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스스로를 다스리려고 노력했지.

여행하면서 점차 그런 시간이 사라지니까 내 마음 자체가 달라지는 게 느껴지더라.

여행하면서 종종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어."


"그게 평범한 거야. 그렇지만, 나도 나 스스로를 좋은 사람(best person)으로 바꾸려고 노력하지."


바릴로체의 조그만 광장에서


"네 삶의 터닝포인트가 있어?"


"과거에는 숫자로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곤 했는데,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

지금 너에게 초콜릿을 선물로 준 건 시실 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로 인해 너와 나눈 대화처럼 지금 이 순간이 훨씬 값진 거잖아.


물론 때로는 상황을 숫자로 보기도 하지.

그렇지만, 내가 너에게 초콜릿을 사줬다고 금액이 얼마인지,

네가 나에게 얼마를 빚을 졌는지 재지 않아."


"모든 게 돈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으니까."




올해 40살인 애리얼은 지난해 어머님의 부고를 맞았다.

이에 바릴로체의 삶을 정리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한다.


"죽음을 처음 맞이할 때 매우 힘들었지(toxic).

그렇지만, 그보다 더 끔찍했던 건 엄마가 돌아가기도 전에,

‘만약 우리 엄마가 사라지게 되면, 나는 혼자 살게 될 텐데'라고 생각했다는 거야.


엄마가 돌아가도 그게 내 삶의 끝이 아니잖아.

그럼에도 스스로를 두려움과 걱정에 넣었던 거야."


소중한 이의 죽음을 맞이하기 전부터

두려움의 구덩이로 들어갔던 그가 선택한 방법은 인정이었다.


"내 감정을 인정하기 시작했어.

그냥 나는 단지 슬프고, 마음이 텅 빈 거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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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친구분은 내게 조언하곤 했어.

“언제나 0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준비하라.”라고 말이야."


"그러기 위해서 네가 해야 하는 건 뭐야?"


"난 지금 바릴로체의 삶을 만족해. 그렇지만 어머니의 부고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가서 처리할 것들을 해야 하지. 그때 생각했어.

'그래. 0부터 시작하는 거야.'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 거야. 문제없어. 똑같은 태도로 살아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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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정말 좋은 질문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기에 딱 그 답을 찾아가고 있거든.

답이 끝이 없는 질문이지.


때때로 나는 매우 궁금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관심이 많지.

중요한 질문은 그걸 나는 어떻게 다룰 거냐는 말이지."


나의 삶의 이유는 하나는 여행이지.

나는 내년에 여행할 계획이 있어.
다른 이유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돌아가 다시 일상을 구축하는 거야.


나는 그의 답을 듣고 말한다.


"네 삶의 이유는 목표 같은 거네.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목표 말이야."


그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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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얼과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


그가 출근을 위해 떠나고 난 뒤, 돌체 데 레체 젤라토를 들고 바릴로체의 밤거리를 걷는다.

아이스크림의 풍미가 현안에 가득 퍼진다.


서슴없이 자신의 집은 내준 애리얼 덕분에

바릴로체 밤거리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젤라토 달콤함 덕분일까,

그 따뜻함을 나는 잊지 않기 위해

가지런히 뚫린 일자 대로 끝에 떠있는 달을 향해 인사한다.


헤드셋 너머로 Here with Me 노래가 흘러나온다.







I can't describe what I'm feeling

지금 이 기분이 어떤 건진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And all I know is we're going home

내가 아는 거라곤 우리가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단 거야








애리얼 집으로 향하는 일자 대로의 길이

마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걷는 삶과 같이 느껴진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사랑하는 이를 향한,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앞으로 날들에 대한,

가족을 향한,

하고 싶은 무언가를 향한,

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기 위한,


공통된 그 방향을 향해 가고 있듯이 말이다.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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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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