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중 죽을뻔한 순간

칠레 깔라마에서 만난 스텔라

by 여행가 데이지


어릴 적부터 노래를 불렀던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책 속에서 하얀 소금으로 뒤덮인 우유니 사막을 보며 어린 시절의 두근거림을 잊지 못한다.

한 소녀의 두근거림은 21살 배낭여행자의 마음에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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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 사막으로 가기 전, 깔라마 도시에서


우유니 사막에 가기 위해 칠레의 한 마을, 깔라마(calama)에 잠시 머문다.

깔라마 근처 아타카마 사막을 구경한 뒤,

우유니행 새벽 3시 버스를 예매한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인 나는 버스 시간까지 터미널에서 기다리려 하는데,

아타카마 투어를 하며 만난 분께서 본인 호스텔 공간을 제공해 주신다.

호스텔 라운지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하며 그간의 짐을 마무리하고 버스에서의 여정을 준비한다.


아타카마의 아름다운 밤하늘처럼,

무언가 운명처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이 물결이,

부드럽게 흘러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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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카마 사막 투어를 하며


볼리비아 사람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삐걱거리는 소리마저도 사랑스럽다. 비자받기는 무척이나 까다롭지만,

나, 볼리비아를 벌써부터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


기이하게도 새벽 3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탄다.

새벽 3시,


그토록 원했던

어릴 적 그 순간,

간절히 바라고 바랐던 우유니를 향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손쉽게 발견한 버스 앞,

버스 안내원에게 표를 보여준 뒤,

순조롭게 버스 좌석에 자리를 잡아

피로를 풀기 위해 곧바로 잠에 빠진다.


눈을 붙인 지 한두 시간이 흘렀을까,

버스 안내원이 뒷좌석에 앉으라며 나를 깨운다.

잠결에 눈을 뜨며 뒤로 좌석을 이동하는데,

한 서양인 승객이 큰소리로 말한다.


"내 가방이 사라졌어."


그는 좌석 근처 모든 곳을 꼼꼼하게 살피며

다급하게 말하지만,

버스 안내원은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동이 트기 전 버스 안은

자고 있는 승객과

분주히 버스에 오르는 승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자신의 가방을 찾는 승객을 보며 생각이 스친다.


‘설마, 내 것도?’


곧바로 버스에 들고 탄 가방 안을 살핀다.


‘어라’


가방 안에 있는 모든 전자기기가 사라졌다.


‘어라’


내가 정말 도난을 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

몇 번이고 가방을 다시 들춰본다.


‘그럴 리가 없어’


버스에서 잠깐 눈을 부친 사이, 누군가 내 가방을 열어

모든 전자기기를 다 가져간 것이다.

노트북, 헤드셋, 하드디스크, 각종 충전기, 카메라까지.

큰 배낭에 들어가지 못한 샴푸만이 작은 배낭 안에 홀로 남아있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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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 사실을 알게 된 직후, 버스에서 내린다.


조금씩 현실을 직시하는 마음과, 현실을 부정하는 마음이 소용돌이친다.

버스 안내원은 어느새 승객들을 다 태웠는지 출발 신호를 보낸다.


'자, 우선 침착하게 이 사실을 알리자.'


도난당했다는 현실이 자각되자마자 빠르게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잠시만요, 제가 가방 안에 둔 소지품을 도난당했어요.”


정신이 멍해있는 나를 보며 한 승객이 다가와 손길을 내민다.

나는 그 승객에게 내 사정을 다 토로했고, 그는 이야기를 버스 안내원에게 전달하였다.


“깔라마는 도난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야.

자기 물건은 자기가 잘 관수해야지. 전적으로 네 책임인 거야.”


대답은 매정하게 들리지만, 사실이다.

그럼에도 찾으려는 시도조차 없는 그의 반응이 무심하게만 느껴진다.


노트북과 헤드셋, 카메라는 다시 사면된다.

그렇지만 지난 11개월간의 세계여행을 담은 모든 추억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용량이 커서 백업하지 못한 추억 전부 하드디스크에 담아두었다.

그 하드디스크를 잃어버리는 건,

지난 내 11개월의 모든 여행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순간에 도난당한 하드디스크 안의 추억은

내가 나고 자란 조그만 시골 아이들에게 '너도 세계를 탐험할 수 있다'는 응원이자,

가족들에게는 뿌듯함, 내게는 내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꿈이었다.


하드디스크 안의 영상과 사진들은, 지난 1년간 세계를 여행하며 나의 소중한 친구였다.

버스기사와 안내원은 마치 어제도 이런 피해자를 봤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안쓰러운 눈빛을 뚫고 그들에게 다가가 얕은 스페인어로 간절히 말한다.


“제발 도와주세요. 제가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울리지 않는 메아리를 찾으려고 멍 때리며 허공을 바라보아도

깨닫는 건 메아리는 울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 위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방패'를 사용한다.


혐오스럽고 증오스러운 이 마을을 떠나고 싶었다.

1초라도 깔라마에 더 있다가는 마음의 상처가

아물 수 없을 정도로 깊이 패어 마음이 아예 절단될 것만 같았다.


다른 버스도 알아보지만, 이미 우유니로 향하는 모든 버스가 떠난 상황.

지옥 같은 이 공간에 남아있는 방법밖에 없었다.

앞으로의 대한 모든 생각이 멈췄다.


지난 내 세계여행의 순간을 공유해 온 모든 친구를 한순간에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누군가와 이별한 듯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으로 나는 매우 지쳤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더욱 처절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미어지도록 뻥 뚫린 가슴을 붙잡고 있는데,

한 여성이 내게 다가와 묻는다.


"무슨 일 있어?"


아까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여성이다.

경찰서를 나서려고 방향을 트는 순간,

내가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름도 모르며 불과 1분 전에 나를 따라와 처음 마주친 이에게 말했다.


“괜찮다면, 오늘 하룻밤만 당신 집에서 묵어도 될까요?

저는 지금 어딜 가야 할지,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오늘 필요한 뭐든지 도와줄게요. 불편하다면 미리 미안해요."


"손님을 맞이할 줄 몰라서, 제대로 정리를 못했어요.

잠시 기다리면 방을 청소하고 올게요."


흔쾌히 자신의 집 문을 열어준 이가 방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불과 한 시간도 안 되어 발생한 일을 곱씹었다.

그토록 바라던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가슴 떨리던 어젯밤. 우유니로 향하는 버스에서 소중한 지난날의 추억을 다 잃어버린 지금. 하루 만에 발생한 상반된 감정이 믿기지 않았다.


책 너머로 우유니 소금사막 사진을 보고 가슴이 쿵쾅거리던 어린 시절이 스친다. 어릴 적 그 소녀는 우유니를 바로 앞둔 상황에서, 모든 걸 잃었다. 미치도록, 온 힘을 다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소파 너머 거울에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내 모습이 보인다. 처량하고 허망한 모습에 눈물이 사정없이 쏟아졌다.


방 정리를 마치고 온 주인은 눈물 흘리는 나를 보더니 나를 꼭 안아주었다. 포옹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불과 몇 분 전 처음 본 사람에게 눈물과 포옹을 받자마자 나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버스와 경찰서에서도 놀랍도록 침착하게 대응했지만, 처량하기 짝이 없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니 눈물이 물밀듯이 흘러나왔다. 나를 위해 함께 눈물을 흘려주고,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 따뜻하게 안아주는 이의 포옹을 받으니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난 아무도 없는 것처럼 소리 내 울었고, 낯선 여성도 내 아픔에 공감하며 크게 소리 내 엉엉 울었다.

우린, 서로를 껴안고 몇 분간 울음소리로 정적을 채웠다.


IMG-20240206-WA0022.jpg?type=w773 잔뜩 울어서 눈이 탱탱 부었다

경찰서까지 나를 따라오고, 집과 따뜻한 포옹을 나눠준 이는 Sthela Solange(이하 스텔라).

내가 탔던 우유니행 버스에 그는 남자친구를 배웅하러 왔었다.

우연히 버스 안내원과 통하지 않는 말로 이야기하는 나를 얼핏 설핏 보고 있다가,

내가 떠나는 버스를 두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걸 보고 따라온 것이다.


그는, 정류장에서 흘겨 들은 바로 내가 도난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경찰서에서 나를 도와준 거였다.


스텔라는 끝까지 내가 물건을 찾을 수 있을지 도와주었다.

그는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일처럼 함께 속상해했다.

그러나, 스텔라가 도와주려고 함께 머리를 맞댈수록,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20240206_124608.jpg?type=w773 하루 종일 쳐다보던 천장



침대에 누워있어도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숨을 쉬고 있다는 이 사실 자체가 괴로웠다.

미치도록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가만히 있으면 자꾸만 고통과 우울의 심연으로 빠지기만 했다.


무언가 할 힘도 없으며 무언 갈하고 싶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무언갈 안 하면 마음이 고통이라는 불구덩이에 있어 무언갈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며,

무언가를 할 힘도 없었다.


눈을 떠도 괴롭고, 눈을 감아도 괴로웠다.

눈물을 흘려도 슬프고, 눈물을 참아도 슬펐다.

황량함과 비참함의 소용돌이에서 괴로워할 뿐이었다.


결국 내게 일어난 일을 받아 들어야 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사무치게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뾰족한 바늘로 내 심장을 무너질 때까지 찔러대는 느낌이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우유니 소금 사막을 바로 눈앞에 두었음에도, 나는 어릴 적 내 가슴을 그토록 뛰게 만들었던 우유니 사막을 가슴으로 볼 자신이 없었다.


우유니 사막을 꿈꾸며 넓게 펼쳐진 지평에 온전히 압도된 내 마음은

우유니로 향하는 한밤중, 밤 버스에서 도난을 당하고 망가질 대로 망가져 설렐 힘도 남아나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이 괴로워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래 속에서 발버둥 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망가진 마음으로 남은 계획을 억지로 강행할 자신이 없었다.

영혼 없이 질질 끌려간 채로 여행을 할 바엔 그냥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누군가 고통스러운 이 현실에서 나를 꺼내주기만을 바랐다. 나는 한국에 있는 은사님에게 연락했다.


"은사님, 앞으로 남은 여행이 2주 남았어요. 제가 남은 버킷리스트를 즐겁게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부모님께 이를 알리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그냥 은사님이 생각났어요."


그는 답했다.



내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제자야. 슬픔조차도 네게 찬란하구나.
지나간다. 지나가. 그건 너에게 있지 않아.
지나간다. 지나가. 이미 지나가고 있어.
오늘의 슬픔이야.
내일의 슬픔은 될 수 없어.
너는 아직 길 위에 있잖아.
여정이 언제 끝날지 결정하는 것은 너지만
그동안의 여정이 기쁘고 즐거운 수많은 순간들만 존재하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이렇게 여정의 끝에 뒤돌아 보았을 때
너의 여정 중 찬란하지 않았던 순간들은 지금 없을 거야.

이것 또한 마찬가지야.
자신에 대한 분함과 원망을 안고 보는 우유니는 어떤 모습인지,
너 자신에게 보여줘야 할 의무와 권리가 네게는 있다고 생각해.

이것 또한 지나가리.
원망과 분노를 가지고 악을 쓰고 가서
네게, 너 자신에게 우유니를 선물해 줘.
그것이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약하게 흐르던 물줄기가 다시 거세게 뺨을 타고 흘렀다.

주체할 수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을 방도는 없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생각이 들었다.


'우유니에 가야겠다.'


지난 추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가슴 아팠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에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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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라마 공원에서


스텔라의 제안으로 공원은 걷는다.


"데이지, 울고 싶으면 울어. 슬플 때는 우는 거야. 눈물이 너를 위로해 줄 거야."


그의 말을 듣자마자 담 입구에 금이 간 곳이 조금씩 열리면서 물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공원에 누가 있던지, 누가 나를 쳐다보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 내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진하게 나를 포옹하며 안아주는 스텔라도 함께 울었다.

우린 마치, 세상에 우리 둘만 있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슬픔을 다 가져가 이를 주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서로를 껴안으며 엉엉 울었다.

스텔라는 나를 토닥이며 말한다.


"괜찮아."


"왜 나를 도와주는 거예요?"


"왜냐하면, 언제 가나도 다른 나라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야."


그는 그러면서 본인 이야기를 공유한다.


"나는 지금 26살이지만, 두 아이의 엄마야."


그가 엄마라는 사실에 놀란 채 바라보니 그는 말한다.


"아이를 가질 당시, 나는 어렸고, 아이를 낳고 죽어라 일할 수밖에 없었어."


지금은 아이들이 내 삶의 전부이자 내 삶의 이유이지만


15살에 엄마가 된 스텔라는 10살의 아들딸이 있다.

그가 이방인인 나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는 건

떠난 남편 뒤로 스스로 엄마라는 길을 걸으며 쌓아온 길 때문일까.


"이런 일들은 일어나기 마련이야. 언제나 처음이 있기 마련이지. 다음 단계를 위한 하나의 경험이라고 여겨봐."


나는 그의 말에 다시 한번 눈물을 터뜨린다.

우린 다시 공원 한가운데에서 엉엉 울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다음 버스를 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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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우유니에 가기 위해

스텔라는 버스 직원에게 나의 사정을 설명해 주기로 했다.

그는 나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울컥해져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나를 위해 함께 슬퍼해주는 그가 고마웠다.

고마움에 눈물이 사무치게 내 뺨을 타고 흘렀다.


"아침 일찍 타려는 버스는 없어. 너 바로 앞에 서있던 남자가 마지막 승객이었어. 늦더라도 9시 버스를 타고 가."


우리 둘의 눈물에도 아랑곳없이 차갑게 말하는 직원. 그의 말을 따라 9시 버스를 예매했다.


다음날, 예정대로 9시 이전에 도착해 버스를 기다렸다. 9시가 되어도 아무런 안내도 없어 조금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매표소에 가서 물으니 직원을 말한다.


"네가 타려던 버스는 취소됐어."


출발시간이 훌쩍 지나고 취소 사실을 알린 직원.

환불도 없다는 그와 통하지 않는 언어로 실랑이를 했다. 스페인어로 빠르게 무어라 말하는 직원과

영어로 항의하는 내가 소통이 될 리 없다.


이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를 힘들게 하는 지긋지긋한 도시, 깔라마를 나는 1초라도 더 빨리 떠나고 싶었다. 급하게 우유니로 떠나는 다른 버스를 알아보지만, 9시 버스가 마지막 시간이었다. 원망할 대상도 없어 그저 깔라마 마을을 원망하며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은 이곳에서 하루를 더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분하고 속상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나아가려는 발걸음을 부정당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나아가려는 나에게 이 마을은 무슨 이유로 나를 계속 붙잡아 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지역으로 가는 버스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혹여나 우유니로 가는 버스가 남아있지 않을까,

버스 회사를 이리저리 다니며 허공을 향해 대상 없는 대상자에게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속상해."


그날 저녁, 스텔라와 다시 만난다.

스텔라는 집에 머무르라며

퇴근 후 나를 데리러 왔다.


"스텔라, 이렇게 자꾸 신세를 져서 미안해.

내 안에 있는 억울함과 분통함을 주체할 수가 없어.

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왔어.

그렇지만, 도대체 이런 일이 계속해 발생한 이유를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

신이 있다면,

도대체 나를 깔라마에 계속 붙잡아 두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토록 열심히 찍고 모아둔 내 모든 영상을 가져간 이유가 무엇인지,

그토록 원하고 원하던 볼리비아 우유니에 가고 싶지 않게 만드는 이 상황들의 이유가 뭔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

탓할 대상도 없이 원망스럽고, 분하고, 억울해."


스텔라는 투정 부리며 우는 어린아이를 안아주듯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데이지, 우리 맛있는 거 먹자. 먹고 싶은 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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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식기 조리 소리를 들으니

매일 요리를 해주던 엄마가 떠올랐다.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춰주는 등대 같은 존재인 엄마. 스텔라.

눈물을 멈추고 스텔라가 만든 음식 앞에서 미소 짓는다.


조금씩 천천히 마음을 안정시키며 저녁을 먹던 중 스텔라가 입을 열었다.


"데이지, 네가 타려고 했던 버스가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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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는 빨간 헤드라인의 뉴스를 보여줬다.


"어제 스텔라와 함께 찾아간 매표소에서 바로 앞 남자가 마지막으로 사간 버스야.

그래서 다음 차였던 네 버스가 취소가 된 거야.

승객들은 다 응급실에 갔나 봐."


신호음을 내는 앰뷸런스 뒤로 사고를 보도하는 기자,

사고로 인해 부서진 버스 유리창,

쓰러진 버스 옆에서 앉아있는 부상자를 보니

몸 안에 있는 모든 물이 빠져나갈 듯이 눈물이 쏟아졌다.


스텔라는 빨간 헤드라인의 뉴스를 보여줬다.


"어제 스텔라와 함께 찾아간 매표소에서 바로 앞 남자가 마지막으로 사간 버스야.

그래서 다음 차였던 네 버스가 취소가 된 거야.

승객들은 다 응급실에 갔나 봐."


신호음을 내는 앰뷸런스 뒤로 사고를 보도하는 기자, 사고로 인해 부서진 버스 유리창, 쓰러진 버스 옆에서 앉아있는 부상자를 보니 몸 안에 있는 모든 물이 빠져나갈 듯이 눈물이 쏟아졌다.


삶의 모든 순간은 죽음이라는 운명과 대비할 때 제대로 의미를 드러낸다.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스텔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소리 내어 통곡했다.


그저 내 앞에 닥친 현실과 그 감정을 나는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건들기도 어려운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무어라 형용할 수 있을지 찾을 수도 없었다.


하염없이 엉엉 울 뿐이었다. 죽음이라는 가치 앞에서 내가 느낀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걸까.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의 회오리는 나를 끊임없이 덮쳐왔고, 소용돌이를 막을 나의 유일한 수단은 눈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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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사막 도시 깔라마


다음날, 비가 좀체 내리지 않은 사막 도시 깔라마에 비가 내렸다.


"이곳에 이렇게나 비가 온 거는 기적이야."


사막 도시에 툭툭 떨어진 빗방울을 보며 나는 말했다.


"이건 우리 둘의 눈물인가 봐."


스텔라는 나를 지긋이 본 뒤에 내 등에 손을 얹었다. 나는 우리의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 바라봤다.


스텔라는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기에 잠들기 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무언가 의지할 곳이 필요할 때, 나에게 의지할 곳이 되어준 스텔라. 나는 그와 헤어지기 전, 삶의 이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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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유는
나에게 일어난 여러 가지 실패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야.
신은 언제나 내가 좋은 사람이고
다른 이들을 도와서 삶을 밝게 해 주기 위해 나를 이곳으로 보냈으니까.


처음 본 이방인이 엉엉 우는 걸 보며

함께 나를 껴안고 눈물 흘려준 스텔라.


그가 가진 상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지만,

그는 내 커다란 상처를 꼬옥 위로해 주었다.

나는 그 덕분에 남은 세계여행을 다시 할 수 있었다.


스텔라 집을 떠나면서 남긴 편지

"스텔라, 데이지예요.

시간은 언제나 흐르기 마련이죠.

가지 않을 것 같던 고통의 시간도 흐르네요.

버스에서 제 모든 게 사라진 걸 확인한 후,

아무런 대책도 없을 때,

무작정 경찰서로 갔을 때 저를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생판 처음 보는 저를 위해 소중한 보금자리를 주셔서 감사해요.

저를 위해 맛있는 스파게티 요리를 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를 위해 함께 울어주셔서 감사해요.

저를 위해 함께 공원을 걸어주셔서 감사해요.

저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함께 주셔서 감사해요.

저를 꼭 안아주셔서 감사해요.

저와 함께 저녁을 먹어주셔서 감사해요.

저와 함께 침대를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저의 고민을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해요, "



그가 가진 포용력은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던 누군가의 마음을 살린 기적과도 같았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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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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