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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I
순례길 이후의 이야기

데이지 버킷리스트 ②⑦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by 여행가 데이지 Mar 23. 2025


스페인 버킷리스트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산티아고 대성당 120km를 남기고, 오빠와 만났다. 


친오빠와 걸은 순례길 이야기 다시 보기 ▶  "나 포기하지 않았어"


본 글은 오빠와 순례길을 걷고 난 이후의 이야기를  대화 형식으로 담은 글이다. 





우리 오빠는 삶의 의욕도 없고, 본인을 인생의 실패자라고 여겨왔어.우리 오빠는 삶의 의욕도 없고, 본인을 인생의 실패자라고 여겨왔어.


나한테 친오빠 있던 거 기억하지?

나랑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고 했잖아. 


그래. 친언니랑 친오빠가 있다고 했잖아. 예진이 너는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오빠는 그 반대라고.


응. 나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지. 그러니 휴학하고 1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하고 올 정도이니.

나와 다르게 우리 오빠는 삶의 의욕도 없고, 본인을 인생의 실패자라고 여겼어. 

오빠는 삶에 대해 언제나 회의적이고 염세주의적이었지. 우리는 같은 핏줄이지만, 너무나 달랐고, 나는 그런 오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 

엇갈린 사춘기 시절도 이유가 되겠지만, 어릴 적부터 우린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어. 그저 가족이라는 이유로 묶여있던 존재였지.



다 너만큼 세계여행을 하지는 않아. 오빠는 23살이라고 했지? 그런데 그게 여행이란 무슨 상관이야?




모두가 나처럼 세계 일주를 하지 않지. 그렇지만, 우리 오빠는 보통의 사람들보다도 삶의 의욕이 없었어. 언제나 '어차피 안될 텐데'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았지. 운동을 하다가 그만두고 실업계를 졸업해 전문대를 입학했는데, 하고 싶은 학과도 아니니 잘 맞을 리가. 결국 자퇴를 하고 새로운 학교에 입학했어. 그곳도 오빠와 맞지 않았나 봐. 그나마 어릴 적 배웠던 테니스가 있었으니, 휴학하고 테니스 강사로 일단 지낸다고 하더라. 그런데 여행을 떠나고 6개월쯤이 지났을까, 연락이 한 번도 없던 오빠한테 문자가 왔어.




<예진아, 나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 번도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던 오빠여서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게 놀랐어. 오빠와 마땅한 교류도 없는 나에게는 무슨 상관인가 싶으면서도 가족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언가가 있나 봐. 오빠가 좋아하는 걸 찾고, 삶이 조금이라도 생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오빠한테 말했지.




<오빠, 여행을 해봐. 지금까지 살아온 울타리를 벗어나 온전히 낯선 곳에 오빠를 던져놓는 거야.

오빠가 몰랐던 오빠의 모습을 알게 될 거야. 여행을 다녀온 뒤의 오빠는 이전의 오빠가 아닐 거야.>


그래서 바로 비행기값 50만 원을 보내줬어.


비행기값을 보냈다고? 비용이 작지만은 않았을 텐데, 괜찮았어?


전혀 아깝지 않았어. 오히려 방황하는 오빠에게 전화점이 될 거 같아서 감사했었거든. 하루는 오빠랑 통화하면서 어떤 여행을 하고 싶냐고 물으니까 의외의 대답이 나왔어.



"예진, 너에게 용기를 받아서 새로운 것도 도전하고 싶어. 다른 나라 문화랑 음식도 마음껏 즐기고 싶네. 사진도 남겨서 추억도 만들고 싶어."



언제나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기운 넘치던 오빠에게서 설레는 목소리를 처음 들었거든. 이번 여행이 오빠에게 큰 전환점이 아니어도, 새로운 느낌에서 비롯된 설렘과 성장을 느끼길 바랐지. 






여행을 함께 가면, 함께 간 사람과 사이가 돈독해지거나, 완전히 파탄 나거나, 둘 중 하나라고 하지. 

나는 어땠을 거 같아?


글쎄, 지금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걸 보면 남부럽지 않게 사이좋은 남매가 되셨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거의 오빠와 연을 끊고 싶을 정도로 싫었지. (웃음) 


지금도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그런 마음이 있었지만, 사실 끝에는 생각이 바뀌었어. 끝까지 들어봐.

내가 여행을 시작한 지 8개월쯤이겠다.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었는데, 오빠와는 100km 전부터 산티아고 성당까지 걸으며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어. 


100km 지점이라면, 스페인 사리아에서부터 구나. 최소 사리아 지역부터 순례길을 걸으면 산티아고에서 인증서를 발급해 준다는 사실은 들었어. 


맞아. 우린 스페인의 한 마을에서 만나서 쭉 함께 걸었지.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삼일이 되며 시간이 쭉 흘렀을까, 오빠와 대화를 나누면서 받는 부정적 에너지가 싫었어. '힘들다.'부터 시작해 온갖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야. 당연히 가족과 함께 순례길을 걷는 건 행복한 일이지. 소중한 순간이고 추억이지만, 나도 모르게 오빠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 사실이 싫었어. 시나브로 오빠의 색채가 내게 드리워지는 게 탐탁지 않았지. 간단히 말해, 오빠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나도 싫었어. 


예를 들면 네가 예전에 말한 느낌이지? 오빠가 너희 어머님을 원망하는 것처럼 말이야. 


맞아. 오빠는 걸으면서도 내게 말했지.



"나는 엄마가 원망스러워. 고등학교에서 실력이 좋다며 나를 데리러 온다는 테니스 코치가 정말 많았거든. 엄마 말을 따라 중학교 때 테니스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까지 선수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을 텐데."



오빠는 과거에 갇혀 남을 탓하며 자신의 실패를 무마하고, 앞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어. 그런 오빠에게 말했지.



"언제까지 과거를 원망하면서 살 거야?

그 당시 엄마의 잘못이 아무리 있다고 해도, 오빠의 삶이야. 오빠도 충분히 꾸려나갈 수 있었을 거라고.

정녕 어리다는 이유로 무마될 수 있더라도, 지금까지 오빠의 삶은 과거에 묶여서 앞으로 못 나가게 할 거야?"



이건 하나의 예시에 불과해.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오빠와 빗금이 가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 



아무래도 생각 틀 자체가 다르기에, 그걸 이해한다는 건 많은 연습이 필요할 거 같아.



맞아. '오빠는 왜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지?',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는 건가?'란 생각은 어느 순간 나를 잠식했어. 오빠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지 않은 정도가 된 거야. 점점 오빠를 그 자체로 존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보이더라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순례길의 길 위에서비바람이 몰아치는 순례길의 길 위에서


에이, 그래도 테니스 강사면 좋은 거 아니야? 아예 직업도 없이 고민하는 사람도 많잖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렇지만 오빠는 테니스를 초등학교 때 시작하고 중학교 때 테니스를 그만둬서 선수 경력도 많지 않대. 대학교에서 방황하면서 다시 시작했기에 테니스라는 분야에 대한 확신도 없고. 일단 가진 기술이 어릴 적 배운 테니스 하나여서 뛰어든 거지.


나는 단지 대학 생활 동안 모은 돈으로 휴학하고 세계여행을 떠난 것뿐이야. 친오빠에게 재정적 지원을 해줄 수 있지도 않고, 계속 오빠 옆에서 인생 코칭을 해줄 수도 없어. 오빠에 대한 나의 큰 역할이 없다는 거야. 나는 오빠 삶을 변화시키고, 도와주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아.


단지, 오빠의 삶이 더 좋아졌으면 좋겠어. 오빠가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좋겠어. 이런 조그만 바람이 있지만 내가 원하는 오빠의 모습과 실제 오빠의 모습에서 생긴 불일치가 나를 괴롭혔어. 불일치로부터 비롯된 불만이 여행하는 동안 조금씩 오빠를 미워하는 감정으로 변하더라. 



원래 기대하는 감정이 클수록 실망도 크는 법이잖아. 오빠가 너에게 소중한 존재이기에 너는 오빠에게 기대한 거고. 어찌 보면 당연하면서도 그렇게 생긴 미움을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한 부분이야. 어떤 식으로 미웠는데?


순례길을 걷는 내내 오빠는 불평불만을 하느라 바빴어. '언제 도착하냐.'부터 시작해, '자기는 못 걷겠다.'라면서. 급기야 욕을 하면서 주저앉는 거야. 그런 오빠를 달래주기는커녕 그냥 혼자서 걷기도 했지. 


순례길에서 오빠와 한 컷순례길에서 오빠와 한 컷

어느 날은 이런 대화를 했어.


"오빠, 살면서 가장 최선을 다해본 적이 언제야?"


오빠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대답했어.


"나는 살면서 무언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본 적이 없어."


오빠가 자신을 실패자라고 여기며 삶의 의욕이 없던 이유 중 하나는 본인이 무언가에 '몰입'한 경험이 없어서야. 살면서 최선을 다한 적이 없으니, 그에 따른 성취감을 느낀 점도 없는 게 당연하지. 오빠는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는 방법도 모르고 그럴 끈기도 없었어. 힘들어하며 마을 한 귀퉁이에 주저앉은 오빠에게 말했어.



"오빠가 못할 거라는 생각을 버려. 스스로 한계를 정한 순간부터 오빠는 그 한계 밑에 있는 거야.

본인을 단정 짓지 마. 본인은 언제나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잠재 가능성을 품은 존재라고 생각해야지.

오빠는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존재야."








듣다 보니 오빠가 완주했을지 궁금해지네. 그래서 결말이 어떻게 되는데?




브런치 글 이미지 4


순례길 마지막 날이었어. 산티아고까지 몇 킬로 남지 않았고, 나는 오전에 이루어지는 미사를 볼 예정이었지. 그러기 위해서는 빠르게 걸어서 오전에 도착해야 했어. 오빠도 마지막 날이기에 의지를 갖추고 있었지. 우린 아침부터 의기를 투합해서 끝까지 함께 가보자고 다짐했어. 두 시간 정도를 걸었을까, 점점 미사 시간은 다가오는데, 오빠의 걸음걸이가 늦어지는 게 느껴졌어. 어느새 우리 둘 사이의 거리는 확연히 벌어졌지. 뒤로 돌아가니 오빠는 말했어.



"나는 못할 거 같아. 아무리 해도 안된다고."



여느 때처럼 불평하고 스스로 안된다고 규정하는 오빠한테 나는 단호하게 말했어.



"오빠가 못 걷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오빠는 못 걷는 거야. 할 수 있다고, 오늘 목표한 만큼까지 걸어보자고

'할 수 있다'라는 믿음으로 자신의 정신을 만들어. 몸은 정신을 따라 움직이는 거야.

나랑 같이 보폭을 맞춰서 걸어보자. 하나둘, 하나둘."



브런치 글 이미지 5


오빠도 내 말을 듣고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어. 아니, 순례길 위에서 어느 순간부터 오빠는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지. 하지만, 1분도 되지 않아 다시 간격이 벌어졌어. 나는 다시 뒤로 돌아와 오빠와 보폭을 맞춰 걸었지. 그때 오빠가 말하더라.



"예진아, 너는 미사를 보고 싶어 했잖아. 우린 오늘 저녁 포르투갈로 떠나기에 오전 미사밖에 없는 거고. 너라도 미사를 봐. 나한테 걸음을 맞추지 말고, 먼저 가. 나도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고 갈 테니까."



'나도 포기하지 않을게'라고 말하면서 조금은 울먹이는 오빠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오빠의 울먹임을 모른 척했어. 오빠가 이겨내고 빠르게 걸으려고 노력해도 결국 몸이 따라주지 않는걸, 본인이 안 된다는 사실을 마주해서 울먹였을까 싶더라고. 본인이 바꿀 수 없는 영역을 마주하는 것에도 큰 용기가 필요하잖아. 



너도 고민이 되었겠다. 미사를 포기하고 늦더라도 오빠와 함께 산티아고까지 걸을 것인지, 먼저 산티아고에 가서 미사를 볼 건지.


아프리카 속담 중에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라는 말이 있지. 나는 혼자서 빨리 가길 선택했어. (웃음) 오빠의 말을 끝으로 조금씩 우리 거리가 벌어지면서 울컥함이 들긴 했지. 그렇지만, 난 미사가 보고 싶었어. 



한 달간의 800km 순례길을 완주하면서 마무리 미사로 완벽하게 끝내고 싶었구나. 


산티아고 대성당 내부 산티아고 대성당 내부 

맞아. 그렇게 도착한 산티아고 성당의 미사를 들으면서 나는 알 수 없는 눈물을 폭풍처럼 흘렸어. 그저 미사를 듣는 것뿐인데, 찬양하는 감미로운 목소리가 순례길을 수고했다며 나를 다독여주는 느낌이 들었거든. 한참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데 오빠한테 전화가 왔어.


자기는 도착했다면서 한참 동안 기다렸는데, 어디냐고 한껏 짜증을 부리는 거야.

신성하게 미사를 받던 중에 오빠의 투정거림을 들으니 갑자기 김이 빠지면서, 알게 모르게 쌓여온 오빠에 대한 원망이 다시 불타올랐어. 

미사를 나와 오빠가 기다리는 광장으로 씩씩대며 걸었지.


'오빠는 100kg이 넘으니까 못 걷는 거야.'

'오빠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까 안 되는 거야.' 등 

오빠에게 상처 줄 말을 장착해

머지않아 오빠에게 발포 준비를 하며 광장으로 갔지. 



그런데, 저 멀리 넓은 광장에서 오빠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하나였어.


'오빠를 안아주고 싶다.'


브런치 글 이미지 7


오빠에게 상처 주려던 말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그냥 오빠를 안아주고 싶었어.

100kg이 넘는 거구가, 살아생전 100km을 걸어본 적이 없는 이 사람이 고생했겠구나.

저 멀리 뚱뚱하기 그지없는 남자를 보자마자 안아주면서 말했어.



"오빠, 수고했어."


오빠는 내 말을 듣자마자 눈물을 흘렸어.

그러더니 말하더라



"고마워 예진아.

나 포기하지 않았어."







오빠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아프리카로 떠나는 공항에서 우리는 헤어졌어.오빠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아프리카로 떠나는 공항에서 우리는 헤어졌어.


헤어지는 공항에서 오빠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연히 고등학교 3학년 때 이야기했어.



"오빠는 내가 아무리 자존감이 높다고 말해도, 나에게도 낮았던 적이 있거든. 고등학교 3학년 때 입시 준비하면서 점수로 비교당하고, 합격을 예상한 대학교에 다 떨어질 때. 그때 우리 언니가 옆에 있어 줬었어. 대학교 합격발표 몇 시간을 앞두고 내가 '어차피 안될 텐데'라고 나도 모르게 말하던 순간. 그때 언니가 '그건 모르는 일이지.'라고 말해줬었거든. 별말 아니지만, 그 당시 내게 큰 힘이 되더라."



이렇게 말하니 오빠가 나한테 그러더라고.



"예진아, 나에게는 자존감 낮은 그 시기가 바로 지금이야. 어느새 시간이 나를 사회에 던져놓았는데, 마땅히 잘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거든. 너는 누나가 힘이 되어줬겠지만, 나는 지금 네 덕분에, 잊지 못할 이 여행 덕분에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어.

나와 함께해 줘서 고마워."



함께 비행기를 기다리며함께 비행기를 기다리며



나는 오빠한테 할 수 있다고 말해줬어. 한국 돌아가면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고. 작은 것부터 실천하라고. 오빠는 아직 젊다고 말했어. 그리고 우리는 진하게 포옹을 했어. 

오빠가 포기하지 않고 순례길을 완주해서 나눈 포옹처럼 말이야. 어깨너머로 오빠가 훌쩍이더라. 


오빠의 눈물을 보면서, 지난 여행 동안 오빠를 미워했던 마음을 반성했어.

내가 오빠를 부정하며 살아왔구나.


그러면서 깨달았어. 


'아, 결국 내 욕심이구나. 

그저 오빠를 그 자체로 인정해 주면 되는 건데, 내 욕심에 오빠를 맞췄구나.'


진정으로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는 말은 격려란 걸 

지금 오빠에게 필요한 건 '왜 이렇게밖에 못 해?' 같은 질타가 아니란 걸,


오빠에게 필요한 건 그저, 

기다려주고 옆에서 응원해 주는 것뿐이란 걸,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거, 그거 하나뿐이란 걸.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우린 이야기 나눴어.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우린 이야기 나눴어.



중요한 가치를 깨달았구나.



약사 아버지와 정도는 다르지만, 나도 어쩌면 네가 말한 약사 아버지와 같아. 내가 생각해 온 이상적인 가족 틀에 오빠를 맞춰온 거야. 나는 하고 싶은 걸 찾아 나서며 언제나 의욕적으로 삶을 살아오지만, 오빠는 그러지 않은 사람인 거지. 내가 바라본 삶의 방식으로 오빠도 바라볼 거로 생각했고, 그러지 못하는 오빠를 미워했던 거야. 오빠를 불평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나 자신을 고통에 넣고 있던 거지.


각자 자신의 삶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거야. 오빠를 그저 오빠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모든 게 달라 보이더라. 바늘 하나 꽂을 때 없을 만큼 빡빡하면서도 바다처럼 포용력이 많아질 수 있는 게 사람 마음 같아. 



그렇지. 그래서 우린 계속 실수하고 깨달아가나 봐. 그럼, 오빠랑 다시 여행할 거야?



다시 여행하라고 하면 또 티격태격 싸우겠지. (웃음) 

그저 오빠가 잘됐으면 좋겠어.

잘 된다는 건,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삶의 주인이 되는 거야.

오빠가 자기 인생을 이끌며 살아가길 바랄 뿐이야.



오빠가 잘 됐으면 좋겠어.오빠가 잘 됐으면 좋겠어.



헤어지는 입국 심사대 앞에서 오빠에게 편지를 줬어.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읽으라고 손에 쥐여주며 우린 마지막 포옹을 했지.






멋쟁이 우리 오빠에게.


오빠 안녕. 예진이야. 우리가 스페인 한 작은 마을 슈퍼 안에서 오랜만에 만난 게 생생한데, 어느덧 3주란 시간이 흘러 오빠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구나. 여행을 하면서 오빠에게서 많이 배웠어. 나 역시도 서투른 부분,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오빠가 옆에 있어 든든하고 좋았어. 더욱이 오빠가 스스로 바뀌려고 하는 모습,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모습,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괜스레 기분이 좋더라. 아무래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여행한다는 게 서로에 대해 더욱 알아갈 수 있어서 좋았어. 내가 생각보다 오빠에 대해서, 오빠의 깊은 감정선과 고민에 대해서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마냥 완전히 다른 생각, 태도의 사람인 줄 알았는데, 또 어떤 면은 비슷하고, 무엇보다도 웃는 모습이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어. 역시 가족인가 봐.


오빠를 위해서, 오빠에게 세상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유럽으로 오빠를 불렀지만, 오빠 덕분에 가격 걱정 없이 레스토랑에 들어가고, 먹고 싶은 음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어. 유럽에서 오빠와 먹은 음식은 결코 잊지 못할 거야.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구나.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순례길, 인증서를 발급받던 순간, 리스본 광장에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던 순간, 바르셀로나 벙커에서 함께 노래를 듣던 순간, 이탈리아 거리를 함께 걷던 순간. 이번 여행이 오빠에게 큰 변화를 불러오지 않았더라도, 오빠는 비행기 타기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걸 잊지 마. 오빠가 지금 가진 젊음을, 시간을, 능력을, 생각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이 되길. 여행 내내 오빠를 매정하게 대했지만, 오빠는 내게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란 걸. 오빠 안의 있는 가능성을 나는 믿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오빠는 잘 해낼 거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사랑하는 일,
그리고 기다려 주는 일뿐이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그저 그를 그 자세로 인정하고, 힘들면 그저 옆에 있어 주면 되는 것을.

서로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고 상대를 인정하면 되는 것을.

우린 저마다 각자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남과의 다름을 바꾸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오빠의 눈물을 통해 알게 되었어. 








해당 편은 영상을 통해서도 생생히 만날 수 있습니다. 

너의 데이지 : 남매가 순례길 걸으면 생기는 일


https://www.youtube.com/watch?v=cd-k9aVieJA&t=638s








브런치 글 이미지 12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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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유튜브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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