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버킷리스트 ⑮/②⑨ : 스쿠버다이빙 하기 /피라미드 벽 만지기
이집트의 버킷리스트를 마친 뒤,
다음 비행을 위해 이집트 북부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찾았다.
알렉산드리아 호스트 나흘라 덕분에 황홀한 밤을 보냈다.
이집트의 마지막 밤 이야기 ▶ 너의 목소리를 따라가
"내 마음이 너를 공항까지 데려다줘야 한다고 말하네.
공항에 함께 가고 싶어."
나흘라는 1시간 거리를 데려다주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샌드위치까지 싸준 나흘라.
알렉산드리아 공항 앞에서 그와 포옹하는데 울컥함이 밀려왔다.
이집트를 여행하는 줄곧 받아온 차별과 멸시 앞에서
나흘라의 친절과 베풂이 감사했다.
괜히 울컥한 마음으로 나흘라와 헤어지며
이집트 공항에 들어섰다.
"나한테 돈 줄래?"
따뜻한 나흘라와 헤어지자마자
다시 이집트임을 실감했다.
이집트에서 배운 한 가지는 '정색하는 법'
돈을 달라는 공항직원에게 정색하며 입장했다.
아침 7시 비행기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쿠웨이트로 이동하는 날,
쿠웨이트에서 환승해 튀르키예로 향한다.
입국 수속 후,
비행을 기다리며 30분 정도 잠 들고나니
아침 6시가 되었다.
아침을 알리는 듯
공항 창문 너머로 해가 떠올랐다.
몇 분 가지 않아 이미 공항 전체를 밝게 비췄다.
보딩시간을 5분 앞두고 게이트로 향하는데
게이트 앞에 사람들은 미동이 없다.
비행 관련한 관계자를 찾아다녔지만, 보이지 않았다.
게이트 클로징 시간이 다 되어도 꼼짝하지 않는 문.
잔뜩 당황한 채 게이트 앞에 멀뚱히 서 있었다.
나와 동일한 비행기에 오르는 승객은 나와 눈이 마주쳤고,
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보더니 말했다.
"여기는 이집트잖아. (This is Egypt)"
떠나는 순간까지도 이집트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래, 이집트. 안녕이다!"
떠나는 손님이기에 툴툴 털어내며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승무원이 일부 승객을 불러 말했다.
그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확신했다.
안녕이,
아니었다.
"쿠웨이트로 가는 비행기가 여기가 아니라
카이로에서 출발하는 거였어요."
"??"
나는 듣는 즉시 내 귀를 의심했다.
항공사 측에서 비행기 출발 위치도 몰랐다가
비행시간이 지나서야 승객에게 말하는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국가 전체로 일반화하고 싶지 않지만,
아까 눈이 마주친 승객의 말이 떠올랐다.
"This is Egypt"
어리석은 비행사 측에서 어떻게 대응할지를 기다렸다.
비행기 결항을 처음 겪어서 신기하고 재밌었다.
앞으로 어떤 후폭풍이 닥칠지 몰랐기 때문이다.
승무원은 환승을 못하게 된 사람들을 모아
입국 수속 전 구간으로 내보냈다.
"우리가 지금 자금이 없어서
3주 뒤에 환불해 줄게.
취소된 비헹기는 알아서 해결하면 좋겠어."
나는 다시 한번 내 귀를 의심 헸다.
"뭐라고?"
"이집트에 머물거나
튀르키예로 가는 다른 비행기를 알아봐"
"너희 항공사 측 비행기는 언제 예정이 있어?"
"모르겠어.
그냥 기다려야 해."
온갖 뻔뻔한 태도로 대응하는 항공사 측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항공사의 대응은 온 우주 쓰레기를 다 모은 쓰레기보다도 쓰레기 같은 대응이었다.
해결 방법을 제시한 것도 없고
모든 책임을 승객 개인에게도 돌려
모르쇠를 시전 하는 것이다.
카운터로 가서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려고 물어봤다.
아랍어로 빠르게 오가는 대화 속에서
항공사 측이 무책임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게 확인되었다.
나는 무능한 항공사 대응에 화가 났다.
우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눈앞에 있는 여러 선택지를 파악했다.
튀르키예에 가자마자 일정이 있었기에, 튀르키예에 가야 하는 상황.
침착하게 튀르키예행 항공을 알아보는데,
원래 구매했던 비행기표(20만 원)의 2배를 훌쩍 넘은 가격이었다.
'안돼.. 이 돈으로 비행기표를 살 수 없어..
그렇다고 이집트에 더 머물라고?'
이미 호되게 당한 이집트에서
이 심정으로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나는 튀르키예로 가야만 했다.
공항 한가운데 서 있으며 넋을 놓고 있었다.
한 승객은 공항에서 소리를 지르며 시위를 했다.
일부 승객은 다른 비행기표를 사거나,
해결방법을 찾아보고 있었다.
공항에 울려 퍼지는 시위가 거세지기를 응원하면서
옆 승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는 항공사 측 대응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이대로 튀르키예에 갈 수는 있겠지만,
정당한 대응을 받아야 해요. 혹시, 저와 같이 생각하시나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왔다는 모녀는
비행 규정을 확인하며 말했다.
"우리는 비행기표 교환을 받을 권리가 있어요."
그들의 말을 통해 나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받았다.
당당하게 대응하던 항공사 측을 보며
순간적으로 항공사 측 대응이 맞는 건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 항공사 측 대응이 올바르지 못한 거야.'
우린 함께 승객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데,
사우디 모녀는 갑작스레 어딘가로 가야 한다며 짐을 부리나케 샀다.
"어디에 가는 건가요?
우리는 항공사 측에 항의를 해야 해요.
저 혼자서는 힘이 없어요. 도와주세요."
나는 애걸하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녀는 미안하다며 급히 자리를 떠났다.
소통도 잘 안 되는 아랍 승무원들을 상대로
혼자 항의를 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공항에 고래고래 소리치던 승객에게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한국 소녀야, 나는 지금 매우 화가 나있어.
나는 너를 도와줄 수 없어.”
그는 승무원과 아랍어로 대화를 나누더니 사라졌다.
다른 승객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선 다른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항공사 측을 고발하는 글을 작성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뿐이야."
무책임한 비행사 대응에
꼼작 없이 항의하지 못한 채
그저 피드백을 남기는 게 유이한 해결책인 건가.
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순식간에 일어나 상황 속에서
정당한 내 권리를 받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은
내게 허탈함을 안겼다.
그렇게 튀르키예에 가는 비행기 편을 알아봤다.
폭풍같이 비행기표를 검색하다가 절망하기를 반복하는데,
사우디 모녀가 나를 다시 찾아왔다.
"소녀야, 항공사 사무실에서 다 같이 이야기 나누고 있어.
따라올래?"
애걸복걸하게 도움을 요청한 게 마음에 걸렸던지
나를 데려오고자 공항 로비로 나온 것이다.
그를 따라 사무실로 찾아갔다.
소리치던 승객, 사우디 모녀를 비롯해
다른 승객이 표를 교체하고 있었다.
항공사 직원은 전화를 걸며 남은 좌석을 바쁘게 알아보고 있었다.
자신의 티켓이 교체된 승객 몇 명이 떠나고,
나도 비행기표와 함께 내 권리를 요구했다.
"다음 비행기는 31일 밖에 없어.
바로 가야 하면, 다른 항공편을 알아봐.
본 티켓 환불은 3주 뒤에 될 거야."
그는 뻔뻔하게 다시
3주 뒤에 돈을 줄 테니 알아서 해결하라고 말했다.
"너희가 지금 해야 하는 건,
결제할 때 준 돈을 환불하는 게 아니야
지금 가는 비행기표를 줘야 하는 거야.
나는 너희의 비행기표에 지불을 했기에,
너희는 나를 튀르키예까지 바래다 줄 의무가 있어.
나는 튀르키예까지 가야 할 권리가 있다고."
나는 공항에서 느낀 황당함을 가득 담아 말했다.
"너희는 비행시간이 다 되어서야 갑작스레 취소한 것도 모자라
승객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는데, 그건 말이 안 되는 행위야.
오늘 떠나는 비행기를 나한테 내놔."
강하게 나오는 나의 반응에
항공사 측도 당황함을 비추었다.
‘이 아시아 여성은 그냥 물러나지 않겠군’라고 생각한 듯 보였다.
표를 구해오겠다며 10분만 기다리라는 직원에게 말했다.
"10분 말고 5분 안에 구해와.
너는 이미 내 많은 시간을 뺏었어."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하며 사무실을 나갔다.
"5분 안에 구해올게.
약속해."
사우디 모녀가 나에게 항의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수긍한 채 비행기를 새로 알아봤겠지.
항의하는 사람에게만 표를 구해주는 비행사 측이 너무 어리석게 보였다.
동시에, 항의를 해야지만 권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슬펐다.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임에도 요구해야지만 주어지는 상황이 슬펐다.
10분이 넘어 직원은 숨을 헐떡이며 돌아왔다.
"오늘 밤 11시에 표가 있어!"
그의 말을 듣고 마음을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카이로발 비행이기에 다시 카이로로 가야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닌 걸 알고 있지?
너희는 우리에게 차량 지원을 해줘야 해."
끈질긴 항의와 논쟁 끝에
우린 항공사 측의 택시를 타고 카이로로 이동했다.
카이로 공항에 도착해 나흘라가 싸준 샌드위치를 열었다.
따듯한 나흘라의 마음을 보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무책임한 비행사,
이익에 눈먼 이집트 사람들,
보수적인 아랍문화,
정해진 거 하나 없는 규율,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스트레스,
그 속에서의 투쟁까지.
단순히 이것들로 인해 힘들어서가 아니다.
이 속에서도 나흘라 샌드위치와 같이 따뜻함이 있다는 사실이
사무치고 감사해서 눈물이 흘렀다.
척박한 인류애 속에서 나흘라 샌드위치는 나를 울리게 만들었다.
내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집이 그리운 게 아니라,
짜증 나고 답답해서가 아니라,
나흘라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너무 소중한 인연이 있고
너무 소중한 마음이라서
고마움을 표현할 방도가 없어
눈물이 났다.
나흘라의 샌드위치를 먹는데,
울컥함과 고마움이 사무치게 밀려온다.
폭풍같이 눈물 샌드위치를 먹으며 다짐했다.
나도 새벽 늦게까지 샌드위치를 싸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나흘라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우려했던 비행기 연착은 없었다.
예정대로 9시 비행기를 타고
쿠웨이트에서 터키로 넘어갔다.
공항 노숙도,
비행기 결항과 무책임한 항공사 대응도,
예기치 않게 마주한 경험들을 통해
나는 더욱 단단해짐을 느꼈다.
새벽 5시 반,
쿠웨이트 공항 환승 플랫폼 청소부 휴게실에서 쪼그려 작성하는 일기
인간관계가 마음대로 안된다는 사실을
나는 고등학교 때 처음 깨달았다.
인생이 마음대로만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언제 처음 깨달았더라.
아마도 고등학교 때였던 거 같다.
마음대로 안 되는 인생을 받아들이는 법은
여전히 배우고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순간 속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기도 하고,
더 재밌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한다.
예기치 않은 상황은
인생이라는 조각보에 다양한 색채를 더한다.
그래, 모든 계획이 틀어진 이 순간도 의미가 있는 순간이야.
모든 순간은 가치 있고, 그 만의 이유가 있으니까.
척박한 사막에서도 오아시스로 생명의 바람이 불 듯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순간에도 따뜻한 손길은 감동의 물결을 선사한다.
새벽 2시, 쿠웨이트 항공에 내려 추위와 싸우며 끙끙 잠들다가 5시에 깼다.
에어컨이 너무 빵빵해 결국 가장 따뜻한 화장실에 쭈그려 졸고 있는데,
화장실 청소부 분께서 자신의 휴게실로 날 안내해 따뜻한 커피와 비스킷을 제공해 주었다.
이런 조그만 따뜻함이 나를 눈물짓게 하고, 웃음 짓게 한다.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움의 손길을 아낌없이 내주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렇게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서 길어진 시간에
피곤이 극에 달했다.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곧바로 잠에 빠졌다.
이집트와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못했지만,
룩소르, 아스완, 다시 다합까지.
나는 이집트에 다시 올 것을 알고 있기에
다시 보자는 인사면 족했다.
나의 첫 번째 이집트 여행을 마쳤다.
수많은 사기와 화남,
짜증과 아쉬움으로 얼룩졌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얼룩들은 내게 매우 의미 있던 시간이었음을.
비몽사몽 한 상태로 창문 너머의 야경을 봤다.
아름다웠다.
나흘라가 말한 것처럼, 내가 믿는 것처럼
삶은 아름다웠다.
삶은 아름다움의 연속이다.
슬픔도 짜증도 눈물도 화남도
나는 아름다움이라 부르기로 했다.
내게 행복과 기쁨, 웃음과 설렘을 알려주는 아름다움이기에.
해당 편은 영상을 통해서도 생생히 만날 수 있습니다.
버킷리스트 이야기 다시 보기 ▶
데이지 버킷리스트 ⑮ 이집트 다합에서 스쿠버다이빙 배우기 (1)
데이지 버킷리스트 ⑮ 이집트 다합에서 스쿠버다이빙 배우기 (2)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②⑨ : 이집트 피마리드 벽 만지기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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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