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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I 유기견 보호소에서 해외 봉사하기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②② : 해외 봉사하기_불가리아 편

by 여행가 데이지

* <나의 데이지>로 발행하기 위해 재업로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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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달간의 튀르키예 여행


튀르키예의 지난 한 달은 한여름의 꿈이 되었다.

카우치서핑을 통해 만난 현지 친구,

한국에서 온 친구와 함께한 여행,

우연한 사건이 가져다준 인연,

홀로 지내온 고독의 시간까지.


나는 모든 과정에서 여러 감정 선위에 올랐고

감정의 파노라마 속에서 배움을 얻었다.


이제껏 혼자 해온 여행에서

한국 인연과 만나 함께하는 여행을 느꼈고

이별을 맞이할 때 무거워진 마음을 느꼈다..

언제나 약간의 아픔이 요구되는 이별 앞에서

돌아가는 친구를 보며 알 수 없는 감정과 함께 눈물도 흘렸다.

모든 과정을 돌이키면

재밌었고,

평화롭고,

안락했다.


지난 아시아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나는 새로운 대륙 여행을 시작한다.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스스로 다짐했다.


휴식에 대한 소중함을 잊지 않기.

아침에 일어나 쉼을 갖기.

일기 쓰는 행위를 감사하기.



다시,

혼자서 유럽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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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불가리아로 이동하며

버스 창가 너머로 풍력발전소 바람개비가 바람과 춤추고 있다.


어느덧 여행 182일째가 되었다.

나의 새로운 발걸음은 어떤 모양을 띠고 있을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두 팔 벌려 순간을 사랑할 것이다.

마치 뱅글뱅글 돌아가는 저 풍력발전소의 날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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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유기견 보호소 Everydaystray에서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②② : 해외 봉사하기_불가리아 편


유럽 대륙 여행의 첫 시작은 유기견 보호소였다.

두바이에서 만난 독일 커플을 통해 불가리아 유기견 보호소를 알게 되었다.

드라고노브느시(Dragonovsti)에 위치한 유기견 보호소는

동물보호운동가 닐과 클레어가 운영하는 Everydaystray이다.



Everydaystray는 불가리아 비영리조직으로

2023년에 정식 허가서를 받아 자치 단체로 성장했다.

구조된 강아지를 국경너머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해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400마리 이상의 강아지가 새로운 가족을 만나도록 도왔다.



"월 월!"



보호소에 도착하자마자 낯선 이를 반기는 강아지 소리가 들린다.

마침 아침 산책을 다녀온 클라라와 닐, 봉사자 콘스테인이 돌아오는 길이다.

휠체어 한 강아지에게서 울리는 딸랑딸랑 방울소리와 함께 그들은 내게 인사했다.


강아지는 처음 본 낯선 이를 향해 달려와 꼬리를 흔들었다.

아이들이 반가워서 울음이 났던 걸까, 왜인지 모르게 울컥함이 올라왔다.


들어와 차 한잔을 마시며 닐과 클레어와 인사를 나눴다.


(나)

"생각보다 보호소가 크네요.

언제부터 시작하신거에요?"


(닐)

"내 인생 전부를 바쳐서 했어."


짧지만 강렬한 닐의 대답은 강아지를 향한 그의 사랑을 알려주었다.

인생을 바쳐 하나의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게만 보였다.

그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작게나마 일주일동안 닐과 클레어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나는 한때 동물보호 길거리 캠페인도 나가고

동물권리 책도 섭렵하며 동물운동에 힘쓰던 시절이 있었지만,

대학 교정을 밟은 순간부터 '동물권'이란 단어는 내 삶에서 지워졌다.


문득 궁금해졌다.


중학교 때만 해도 동물보호가를 장래희망으로 적어내던 내가

동물보호에 대한 목소리를 안 내는 건 둘째치고

동물보호에 대한 목소리를 안 듣는 걸까?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를 하면서

나 자신에게 질문하고 싶다.

어릴 적 동물보호를 외친 굳은 목소리를 마주하고 싶다.




#1일차, 그래봤자 뭐가 달라져?




봉사자 콘스테인의 모습

"우선 Special Walking을 다녀오자."



오스트리아에서 온 봉사자 콘스테인은

보호소를 둘러보는 내게 스페셜 산책을 제안했다.


스페셜 산책을 함께할 주인공은 빙키(Binky)와 바슬(Basil)이었다.

조심스레 강아지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그들은 나를 처음 보자마자 달려와 애교를 부렸다.

이방인인 나를 환영하며 온몸을 다해 나를 껴안았다.


애교로 점철된 이 강아지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볼 때마다 북극곰이 연상되는 빙키와 버슬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동물 자체로 표현한 듯했다.


사랑스러운 존재 그 자체인 아이들과 산책을 다녀오고,

호두나무 아래에서 그저 잎사귀 소리에 귀 기울였다.


장난치는 강아지의 혓바닥소리가 들려왔다.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으르렁거리며 장난치는 아이들.

안온하고

평화로운 이 순간.


따뜻한 햇살 한 줌조차도

온전히 내게 머무르게 하는 편안한 시간이었다.

동시에 오래전부터 품고있던 의문이 떠올랐다.



'이렇게 봉사하고,

보호소를 열어 노력해 나가는 게,

정말 효과가 있는 일일까?'



콘스테인과 함께 봉사를 나가며

작은 움직임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

작은 것의 가치를 알고 있다.

작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무시하지 못했다.


'그래봤자 뭐가 달라져?'


평생을 바쳐 보호소를 운영해 온 닐과 클레어.

휴가를 쪼개 봉사하러 온 콘스테인.


이들이 아침 일찍부터 몸을 써가며 고생해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강아지를 유기할 것이며


이들이 밤늦게까지 강아지를 보살펴도

어딘가에서 혹자는 강아지를 학대할 것이다.


동물권을 외치던 십 대 시절의 나는 까맣게 잊은 채

대학 생활을 즐긴다는 명목으로 무시해 온 순간이 지나쳤다.


예전부터 해오던 고민,

이전부터 느껴온 무력감과 회의감이

평화롭기 그지없는 불가리아 한 시골 마을에서

회오리처럼 소용돌이가 되어 내 머릿속을 채웠다.



'물론 의미가 있다는 건 알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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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소 봉사에서 만난 아이들


보호소의 첫날을 마치고 잠들기 전,


보호소에서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을 보며

게시글에 올려진 강아지 사연을 읽었다.


Screenshot 2025-04-11 at 6.14.47 AM.png 인스타그램 게시글 예시


아이들은 다들 큰 사고를 겪고,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지만,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여전히 사람들을 좋아했다.

아이들은 대게 포옹을 좋아했다.


'내가 이 보호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보호소 활동에 대한 오래전부터의 회의감은

이내 실천을 위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짧다면 짧은 일주일을 통해

잊고 있던 지난 관심사에 대해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지에 대해서,

동물권리, 동물문제, 환경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꿈나라로 빠졌다.




#2일 차. 본격적으로 봉사 루틴을 만들어보자!



봉사자의 하루 루틴

7시: 아침밥 나눠주기
8시~10시: 오전 산책 (Pack walk, Wheelie walk)

중간 휴식 or 다른 프로젝트 (도시훈련, 스페셜산책 등)

4-5시 즈음 : 저녁밥 나눠주기
5시~6시: 오후 산책(Last walk)


본격적으로 봉사를 시작하는 둘째 날,

클레어와 닐은

강아지별로 어떤 종류의 밥을 줘야 하는지,

강아지는 각각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를 알려줬다.


'각자가 자신의 이름을 갖고 있다니!'


자신만의 이름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으며 존엄성을 받는다는 것.

실제로 강아지들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면

자신을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닐과 클레어를 보며 강아지 한 마리 한 마리를 생명으로 대해온 삶을 느꼈다.

그들은 봉사자에게 머물 아파트를 따로 제공하면서도

본인은 보호소에서 강아지와 함께 머문다.


2년 넘게 보호소에서 강아지들과 함께 살아왔기에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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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책을 나가며

.


봉사의 첫 번째 일과로 아침밥을 주고난 뒤에

여러 마리 강아지와 아침 산책(Packwalk)을 다녀온다.


매번 아침 산책을 다녀오는 아이들은

부릉부릉 나갈 준비를 이미 마친 채 문 앞에 서있었다.


마치 아침산책을 처음이라도 한 듯

설렘 가득 꼬리를 흔드는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침 산책은 보호소 근처에 있는 산을 한 바퀴 돌면서 이루어진다.

숲 속에서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이하는 건 찬란의 연속 가운데에 있는 듯했다.


'유럽은 정말 아름답구나'


아름다움에 매료된 채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어느새 한 시간이 뚝딱 지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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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산책을 준비하는 친구들


아침 산책을 다녀온 뒤에는 휠체어 산책(Wheelie walk)을 갔다.

사고로 인해 네 다리로 걷지 못하는 강아지를 대상으로

휠체어에 강아지를 태워 산책을 다녀오는 것이다.


휠체어에 태우기 전,

강아지의 배를 눌러 용변이 나오도록 돕고,

용변이 붙은 휠체어를 청소했다.


문득 요양원에서 용변을 제대로 못 가누는 할머니를 봤던

어릴 적 순간이 떠올랐다.


동시에 그들이 인간에게 받은 상처를 느꼈다.


울컥했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가 많을 텐데도,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사랑을 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아이들이 대단했다.


'상처를 받고도 사랑을 바라는 건 참으로 용기 있는 행위이구나.'


아이들은 무엇보다 용기 있는 존재들이었다.


우린 냇가에 가서

강아지들이 물로 몸을 적시는 걸 구경한 뒤에

다시 보호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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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훈련을 나가며 야보(Yabo)와 함께


아침을 먹은 뒤에는 도시 훈련에 갔다.

자동차와 사람 소리에 경계를 갖는 강아지에게

도시 환경을 적응시키기 위한 훈련이다.


도시 훈련을 함께한 이들은 애로(Arrow)와 야보(Yabo)였다.

애로와 야보는 마을을 거닐며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월! 월!"


급기야 자동차가 지나가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짖었다.


'이들에게는 조그만 자동차 소리도 얼마나 낯설을까.'


그러나, 조그만 도시 소음에도

긴장한 채로 공격적으로 짖는 행동은

몸에 드러난 상처의 이유를 알려줬다.


절뚝거리는 발은

그들이 얼마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지 알려줬다.



트라우마를 안은 채 살아가는 아이들은

도시에서는 겁에 질린 채 발걸음을 떼기도 두려워 보였지만,

한적한 보호소로 돌아오면 달려오며 안아달라고 애교 부렸다.


언어로 전달되지 않아도

상처는 그들의 삶 곳곳에 묻어있었다.


행복해보이는 강아지들이 사람에게 상처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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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도시 훈련을 하며


봉사 내내 같은 숙소에 머무는 콘스테인과 나는 매일 같이 퇴근길에 올랐다.


봉사 일과의 마지막 업무는

퇴근길에 길고양이, 길 강아지에게 밥을 주는 것이다.


클레어의 빨간 승용차에 오르기 전 챙긴 사료로

숙소 앞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나면 일과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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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마지막 업무


강아지 털로 가득한 옷을 털고 마주한 침대는 편안하고 안락하다.

하얀 베개 시트에 얼굴을 파묻고 있노라면 근심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오늘의 요리사, 콘스테인이 만든 비건 음식은

더더욱 하루를 달콤하게 만든다.

저녁을 먹으며 난 봉사하며 느낀 회의감을 토로했다.



콘스테인과 함께 비건 스파게티를 먹으며

(나)

"사실, 보호소 봉사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런 행동이 유의미할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어.


물론 의미가 있지.

그렇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는 잘 모르겠어."


콘스테인은 이야기를 지긋이 듣더니

똘똘한 눈으로 공감을 토로한다.


"나도 그 감정을 매번 받곤 해."


"그 감정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해?"


콘스테인은 버거를 한입 베어 물고는 말한다.



"설령 그게 정말 작고 보잘것없는 거라고 해도,

내가 무언가 나은일을 할 수 있는 결로부터 도울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잖아. (it’s not nothing)


내가 무언가 더 나은 방향으로 사람들을 변화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야. (it’s not nothing)


사람들이 작은 움직임이 모이면, 그건 점점 커질 거야."



"맞아. 나도 줄곧 그렇게 생각해 왔어.

작은 것도 충분히 가치가 있고,

충분히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 말이야."



창밖으로 오후 시간을 보내는 마을 주민들이 보인다.

주민들의 말소리를 뚫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어.

결국, 나를 위해서 작은 희망을 믿는 건 아닌가?


결국, 내가 하는 행동이 가치 있다고 믿으며

보잘것없고, 전혀 도움도 되지 않지만

그냥 나를 정당화하려고,

내 마음이 편해지려고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란 생각 말이야."


나의 말에 콘스테인은 말한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내가 무언가를 다루지 못했을 때,

나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데이지,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어.

나는 그 사실에 대해 괜찮아지려고 노력할 뿐이야."



그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멍해짐을 느낀다.

동시에, 멍해진 마음이 따뜻하게 녹아내린다.



"내가 비건이어도, 패스트 패션을 안 사도, 비행기를 안 타려고 노력해도

그걸로 인해 많은 게 바뀌지 않을 거야.

그럼에도 나는 최선을 다했기에 괜찮아지려고 해. 나도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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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의미가 있을까란 질문 이전에

스스로 이것을 사랑하는지를 물어봐야겠구나.


'아침 출근길에 고양이에게 밥을 주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이 동물들을, 이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사랑할까?'




나의 대답은 'Yes'였다.







#봉사 3일 차. 스태츄는 나를 좋아해



불가리아 봉사의 아침은 언제나 평화롭게 시작된다.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은 내게 풍만함을 가져다주었다.

적당한 온도와 햇살도 좋다.

무엇보다 빈속으로 맞는 아침 공기는 상쾌하고도 남았다.


어김없이 아침 산책을 하는데,

스태츄(Svetcho)는 뒤따라오는 나를 기다려줬다.


스태츄의 기다림은 한 시간의 산책 내내 이루어졌는데,

거리가 벌어지면 멀리서 나를 기다리고, 나를 바라봤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산책을 끝낸 뒤,

보호소 청소를 하는 중에도

스태츄(Svetcho)는 내 옆에 왔다.


나를 힐끗힐끗 바라보는 눈빛의 귀여움에

픽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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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교 가득한 스태츄



보호소 청소를 마친 뒤에는 빙키와 비슬 산책을 다녀오고,

오후 산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침 밥을 줄 때도,

밥을 먹고 산책을 나설 때도,

강아지들은 활기로 공기를 채웠다.


산책을 위해 문이 열리는 순간

저마다 레이스 선수처럼 전력을 다해 뛰어간다.

털을 휘날리며 달리는 그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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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단어 그 자체의 아이들


숙소로 돌아와 사랑으로 점철된 아이들을 떠올렸다.


'아직 강아지 이름을 전부 외우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강아지들을 이해하고 있구나.'


동시에, 중고등학교 시절,

한참 동물권에 관심 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한국의 강아지공장을 없애는 걸 목표로 가지며

유기견 봉사를 익히 해오던 순간들.


매주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유기견 보호소에 다니고

반려동물 미용도 배우면서

동물 권리를 외치던 시절.


나는 대학 입학과 함께

동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동물권이란 단어를 까맣게 잊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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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쩌면 우연히 이 봉사를 시작하게 된 건

과거의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서구나.'


세계여행 중 예정에 없던 유기견 보호소 봉사.

봉사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침대 위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과거의 나야,

한때 동물 권리에 대해 목소리 내던 그 시절의 나야,

그 당시 동물을 위해 목소리를 내려던 이유가 뭐였어?


지금의 나는 잘 모르겠어.

나는 동물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은 걸까?'



풀리지 않은 스스로에 대한 의문으로

창문 너머 반딧불이 소리를 들었다.



주황빛 조명이 은은히 비춰오는 이 순간,

선한 동기를 가진 이들과 함께하면서

스스로와 대화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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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감사한 순간들



#봉사 4일 차. 닐의 운동화가 삶을 말해주고 있어



숲 냄새를 물씬 맡으며,

눈을 뜨면 새하얀 하늘이 있다.


영국 라디오가 들리는 지금 이 순간이 좋다.

그리고 함께 옆에 있어주는 강아지 샌디와 오스카까지.


산책을 하며 닐은 말했다.


"일부 사람들은 강아지를 돈으로 보고 있어.

그러나, 강아지는 우리의 동반자야. 함께 삶을 살아가는 존재지."


문득 그의 낡아서 해진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나 역시 세계일주로 구멍이 네 군데 뚫린 채 해진 건


마찬가지지만,

닐의 운동화는 더 심각했다.

운동화는 강아지에 쏟은 그의 삶을 말하는 듯했다.


그를 보며 문득 생각에 빠진 졌다.


'나는 내 인생을 다해,

운동화가 그렇게 닳도록 유기견보호소에서 일할 수 있을까?'


나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동물 보호를 내가 좋아했던 이유는 뭘까?

나는 어쩌다가 동물과 떨어진 삶을 살고 있지?'



동시에 아침 산책 중 보았던 클레어의 피부가 떠오른다.

그의 피부는 무언가 병에 걸린 듯한 붉은 반점이 있었다.

해진 운동화와 붉은 반점이 강아지를 위해 바쳐온 그들의 삶을 말하는 걸까.


한평생 강아지를 위해온 그들이 만들려는 사회는 어떤 가치를 품고 있을까.

닐은 내게 말했다.


개는 언제나 내 삶에서 필수적인 존재야.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아이들이 내 삶의 이유이지.



그의 말을 듣자마자 보호소에서 바라본 아이들의 눈빛을 떠올렸다.

조용히 나를 바라보면서 눈동자를 움직이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내가 다가오며 사랑을 달라는 애교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동안 보호소에 비가 내렸다.

조용히 내리는 비를 감상하다

오후 산책을 다녀왔다.


냇가에 들려 몸을 적시는 강아지를 보는데,

비가 다시 세차게 내렸다.


급하게 보호소로 돌아가다가 문득 멈추었다.

내 살결을 적시는 비의 촉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이 상쾌함이 참 좋다.'


비에 젖은 채 엉덩이를 흔들며 황급히 돌아가는 아이들 모습이 귀여웠다.




이후 물기를 말리며 휴식을 취하는데, 문이 열려있었다.

내가 돌아오는 길에 문을 온전히 닫지 않은 것이다.



강아지들끼리의 서열 싸움을 막고자

구역을 분리해 놓았는데,

열린 문으로 강아지가 들어올 수 있었다.

자칫하면 싸움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데이지, 문을 제대로 잠거야 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



단호하게 말하는 닐에게

나는 변명했다.


"저는 닫았다고 생각했어요."


"데이지. 그저 네가 집중하면 되는 일이야."



명확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안한 마음으로 하루 봉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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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했던 숙소의 순간


돌아와 하루를 복기하며 스스로 반성했다.

동시에, 순간의 감사를 잊지 않았다.


그저 강아지들에게 사랑을 주고 자연과 함께 봉사를 하며

나는 강아지로부터 되려 사랑을 받고, 자연으로부터 여유를 받았다.


힘없는 순간을 즐기며

불가리아의 여유로움을 마음껏 향유하고 있다.






#봉사 5일 차. 강아지들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




어김없이 일상이 시작되었다.

가을이 부쩍 찾아왔는지,

꽤나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춥다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비가 내린 후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은 추위를 더했다.

비가 갠 뒤라서 그럴까,

아침 산책은 풀 내음과 흙 향기가 촉촉하게 스며왔다.


그곳에 강아지들의 숨소리가 함께했다.

아름답다.


신나게 뛰어노는 강아지들을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강아지들이 뛰어노는 걸 보면,

아이들이 참 행복해 보여.

유기견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전혀 유기견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거 같아.


전혀, 사람에게서 버림받은 거 같지도 않아.

산책하러 가며 해맑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독일에서온 새로운 봉사자 아니카는 말했다.



"강아지의 삶을 살고 있으니까."



그의 짧고 간결한 대답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울렸다.

동시에 한국에서 보아온 유기견 보호소를 떠올렸다.


Photo by Zoltán Csorba: https://www.pexels.com/photo/grayscale-photo-of-short-coated-dog-3965286/

좁은 공간에

철창으로 이루어진 문

생활 반경이라곤 고작 벽과 벽 간격뿐.

거기서 아이들이 할 일은 그저 멍 때리며 다음 밥시간을 기다리는 거였다.


안전을 위해 설치된 울타리이지만,

강아지들은 울타리로 인해 더 큰 무언가를 잃고 있었다.

그건 살아있다는 감정이었다.


그에 반해



이곳 보호소 아이들은

아침이 되면 보호소 옆의 들판을 하염없이 뛰어다닌다.

저녁이 되기 전, 매번 가는 산책 코스에 들려 강물에 몸을 적신다.

킁킁 냄새 맡고

성큼성큼 장난을 치며

누구보다 해맑고

사람에게 안기며

친구들을 물고 장난치는 아이들.



한국 보호소의 울타리는

강아지들로부터 자유를 앗아가고 있었고,

이곳 보호소 울타리는

보호소 강아지 안전을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강아지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한국 보호소에서 느낄 수 없는 활기가 그들에게 느껴졌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강아지의 삶을 살고 있었다.


IMG_7748.JPG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산책하는 아이들


강아지로 태어나

강아지의 삶을 사는 아이들.

그들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였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살면서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기견 보호소라면

언제나 답답하고,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는

버려진 강아지들의 정류장 같다고 생각했지만,

보호소에서 강아지들은

강아지의 삶을 살 수 있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으며,

드넓은 들판을 뛰어다니며 강아지로서 하고 싶은 모든 행동을 다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유기견 보호소’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이곳을

나는 결코 유기견보호소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똥냄새가 가득한 철창 안에서 자고 일어나는 유기견 보호소가

내가 알고 있던 유일한 보호소였다.


그러나, 불가리아에서 만난 보호소는

진정, 강아지들이 행복해하고 자신의 주인을 기다리는 보호소였다.



아니카의 말을 곱씹으며 나는 말했다.


"강아지들은

강아지의 삶을 살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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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하늘과, 자연. 이런 유기견보호소를 알게 되어 참 행운이다.

심지어 걸레 빠는 곳도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침에 햇살을 맞이며 빨래하니 좋다.


도시 훈련에 다녀온 뒤

오랜만에 빙키와 바살 저녁을 주었다.

빙키가 내게 키스를 폭풍같이 퍼부었다.

언제나 사람을 잘 따르고,

내게 수많은 키스와 애교를 준 아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산책을 할 때나,

밥을 줄 때나,

혹은 보호소 청소를 할 때나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나도 행복함을 느꼈다.




#6-7일 차.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아침 햇살이 커튼에 비추어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곧 끝이구나.


일주일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파트는 굉장히 편했고, 안락했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했다.

조그만 조명과 함께 저녁을 먹은 테라스.

봉사자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도.


아침 공기는 꽤나 차다.

긴팔을 입어야 할 날씨가 되었다.

쌀쌀하다.


유럽의 찬 공기는 참, 아름답구나.

동산 너머로 햇살이 불어오고,

나무들이 자연스럽고도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차를 타고 보호소로 이동했다.

이동해서는 아침 루틴을 시작했다.

찬 공기에도 강아지들은 여전히 활기찼다.

아침에 똥을 치우고, 걸레도 빨았다.


언제나 아침 산책은 상쾌하고 평화롭다.

서로 싸우는 강아지를 제지하고,

줄행랑치는 강아지는 찾아다니는 것조차 평화롭게 느껴진다.

행복한 표정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모습은 절로 나까지 행복하게 만든다.

아름답다.


강아지에게 사랑을 나눠주고, 쓰다듬고,

함께 노래를 불러주고,

뽀뽀를 해주는 건 언제나 기분이 좋다.


테디(Tedi)와 오스카(Oscar)를 쓰다듬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왠지 모르게 울컥함이 올라왔다.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보드라운 강아지들 털을 타고 흘러가는 이 느낌,

햇살,

불가리아 숲 속의 아름다운 자연이 좋아서,

평화롭고 편안하고 잠시 쉴 수 있는 이 순간이 감사해서 울컥했다.



'아- 행복하구나.'



봉사를 하며 쉰다는 것,

한때 내가 사랑했던 이 분야에 오랜만에 머무는 것,

아름다운 자연에서 그저 멍 때리는 것이 참 행복한 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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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산책하며


마지막 산책을 다녀왔다.

시냇가는 언제나 깨끗했고, 강아지들은 언제나 물에 들어가 첨벙거렸다.


스피릿(Spirit)은 언제나 콜록콜록 기침을 하고,

오스카(Oscar)는 언제나 물장구를 풀과 함께 쳤다.


발리(Bali)는 어제 넘어져서 오늘은 조심스럽게 물가에서 위로 발을 디뎠다.

할리(Hayle)는 언제나 막대를 물고, 나무뿌리를 파내어 달달한 나무뿌리 조각을 먹었다.

드래이보(Dravo)는 언제나 장난꾸러기처럼 뛰어나갔다 돌아왔다.


보호소를 찾은 새로운 식구

보호소를 찾아온 새로운 식구도 보러 갔다.

길거리에서 구출된 세 마리의 6주 된 강아지들이었다.

인형을 보는 것 같은 조그만 강아지와 인사하고

일주일을 함께한 강아지들과 인사했다.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내게 다가와 냄새를 맡았다.

이후 나를 조심스레 올려다봤다.

배짱 있는 몇 마리는 당당히 내게 키스를 날렸다.

한참을 멍도 때리며 쓰다듬기도 하고, 그저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언제 일주일이 이렇게 흘렀을까?'





조금씩 지난 봉사를 돌아보며 이별 준비를 했다.

그저 생각을 비우고 강아지들을 바라본 것만으로 내게 큰 휴식이 되었고,

그저 멍 때리며 강아지과 사랑을 나누고, 걷는 것만으로도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봉사를 하며 비건 피자와 소시지를 먹은 것도,

내가 지금 이 사람들과 이런 환경에서 영향을 받는다는 이 사실이 좋다.



'봉사를 통해 너무나도 많은 것을 받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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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보호소의 순간들


마지막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봉사하면서 들었던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떠올렸다.

강아지 공장을 없애는 것이 목표였던 시절.

중학교 진로발표 시간에 '동물보호사'가 될 거라고 나 자신을 소개했던 순간.



그때에서부터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진 걸까.

무슨 차이로 나는 더 이상 동물권리에 이전과 같은 관심을 갖지 않는 걸까.


한참을 생각하다보니 문득 웃음이 새어나왔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걸.

흔하게 관심사가 바뀌어가고

내가 몸 담그고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도 달라지기에

점차 관심을 갖게 되는 분야도 달라지는 것이 맞겠지.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으로

동물권 분야에 일하지 않더라도,

난 동물권을 외치는 이들의 생활양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일 아침 보호소를 떠나기 전,

강아지들에게 남은 내 사랑을 듬뿍 줄 생각으로

입꼬리가 올라간 채 눈을 감았다.




#8일 차. 너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따라가


마지막 날에도 아침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보호소로 왔다.


산책 가는 길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산책 전 잠시 쉬며 아이들을 예뻐해 주고,

휠체어 산책도 다녀왔다.


다 함께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보호소를 나오며 닐과 클레어는 여행의 건투를 빌었다.


“고난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Be positive in negatives)”



클레라는 언제나처럼 하마 같은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조언했다.




"실패로부터 배워. 돈에 대해서 생각하지 마. 돈은 너를 행복하게 하지 않아.

무엇이 너를 행복하게 하는지를 찾아.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 꿈을 따라가."



다시 여행을 시작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떨렸다.


'이때의 마음을 간직해야지.'


조금의 불안과 설렘이라는 도구는

나에게 여행길을 딛는 용기를 준다.

나아가게 하는 힘을 만든다.


이 여정 위에 미소를 짓게 한다.

앞으로 펼쳐질 유럽여행을 생각하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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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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