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③ⓞ 누드비치 가보기
민스트럴 카니발 버킷리스트를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찾았다.
데이지 버킷리스트 남아프리카 공화국 I 길거리에서 강도를 만났다고?
"뭐야! 누드비치에 가고 싶었어?"
"누드비치는 나의 버킷리스트인걸!"
민스트럴 카니발을 즐긴 뒤 만난 호스트 로버트.
함께 점심을 먹다가 누드비치 이야기가 나온다.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③ⓞ 누드비치 가보기
"그럼 주말에 누드비치 가보는거 어때?"
케이프타운에 누드비치가 있다는 소식에 흥미로워하는 나를 보며
로버트는 친구들을 모아 누드비치에 나를 데리고 간다.
오후에 비예보가 있기에
아침 5시에 출발해 바다에서 일출을 보기로 했지만,
오전부터 날씨가 좋지 않아 7시에 출발했다.
로버트는 친구 두 명을 태워 누드비치로 차를 몰았다.
보라색의 머리의 나톤도와 그의 남자친구 애론은 내게 인사한다.
"안녕!"
"셋은 서로 어떻게 아는 사이야?"
로버트와 나톤도는 10년 전 틴더에서 만난 사이이다.
연인 관계로 되지 않은 채, 친구로 남아 종종 놀러 다닌다고 한다.
우린 슈퍼에 들려 간식을 사고 해안가로 향했다.
해안가를 둘러싼 집은 으리으리하고
백인을 위한 개별 리조트 느낌을 물씬 풍겼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느낌과 알록달록한 촬영세트장 같은 건물들,
어느서나 잘 보이는 든든한 마운틴과 아름답게 펼쳐진 바닷길까지.
할리우드 배우들의 별장으로 쓰인다는데,
이와 반대로 흑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동네가 떠오른 나는
마음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과 경관을 가졌다고 한들,
차별과 빈부격차가 대놓고 보이는 이곳이
마음이 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케이프타운의 경관은
언제나처럼 아름다웠다.
해안가를 줄지어 늘어선 호리호리한 리조트,
시원한 바람과 푸르른 파도의 향기.
그리고, 함께하는 우리.
주차를 한 뒤, 우린 조금 걸어갔다.
누드비치이다 보니 숲 속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걷는 길도 참 아름다웠다.
마치 해안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해안보행로를 걷는 하나의 보행인이 되었다.
누드비치 가는 것을 버킷리스트로 두긴 했지만,
아프리카 대륙에서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역시, 인생은 예측할 수 없으며
그런 불예측성 속에서 즐기는 것도 하나의 매력이구나.
몇 분 안가 누드비치에 다다른다는 사실에
혼자서 신기해하며 계속해 걸었다.
풀 숲 위로 난 길을 30분가량 걸어가니
아름다운 경관의 돌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아름다운 바다가 나타났다.
아침 7시였기에,
강아지를 산책하는 사람이 전부였다.
'여기가.. 누드 비치라고..?'
로버트는 누드비치를 맞이할 준비를 완료한 듯
웃통을 벗었고,
애론도 이내 옷을 벗어던졌다.
나는 나톤도와 함께 '하나 둘 셋!'을 외치며
같이 웃통을 벗어던졌다.
지금 내가 케이프타운 어느 한 바닷가에서
옷을 벗어던지고 있다고?
스스로도 믿기지 않은 이 순간.
알몸이 된 채로 모래사장 위에 서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서로 알몸이 된 채로
나톤도와 나는 소리를 질렸다.
꺄!!!!!!!!!
누드로 있는 내내
나는 내가 누드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로버트가 쓴 선글라스에 비친
나의 모습이 누드이기에
내가 누드라는 사실을 실감할 뿐이었다.
우린 로버트가 가져온 디스크를 다 함께 주고받았다.
서로가 알몸인 채로 돌아가며 디스크를 주고받으면서도
나는 재차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지금
남아공 케이프타운 한 바닷가에서
알몸으로 디스크를 주고받고 있다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 사실을
계속해 자각하면서 믿게 만들어야 했다.
정말로??
우린 소리를 지르며 바다에 들어가기도 했다.
풍덩 소리와 함께 차디찬 바다를
알몸 살갗으로 느껴졌다.
해가 온전히 떠오르기 전이라
바다는 매우 차가웠다.
그러나, 나는 완전한 자유를 느꼈다.
큰 파도가 밀려올 때
알몸인 채로 물에 몸을 맡기면서
내가 온전히 자유가 되었음을 느꼈다.
'어릴 적에는 알몸으로 바다에 들어갔었던 느낌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케이프타운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둘러싸인 채,
온몸 살갗을 관통하는 모든 감정을 빨아들였다.
맨몸의 자유, 자연과 하나되어
사뭇 부끄러우면서도 쑥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동시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자유의 몸으로
어린아이의 순간을 만끽했다.
우린 다같이 누워 뜨거운 햇볕을 느끼기도,
사온 수박을 먹기도,
디스크를 주고받기도,
다시 크나큰 파도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
파도에 몸을 실어 수영하는 바디서핑을 한참 하는데,
그 촉감은
시원하고, 차갑고, 따뜻하고, 강렬했다.
한참 파도를 느끼고,
차가운 바닷속의 알몸을 느끼다가 돌아와 잠시 선텐을 했다.
서로 선크림을 바르고, 벌러덩 누워 펼쳐진 하늘을 바라봤다.
나톤도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파티에서 만난 남자인데,
틴더에서 프로필을 봤던 사람인 거야.
메시지를 보낸 뒤에 우린 데이트를 했어.
하루종일 데이트를 잘하고,
두 번째 데이트를 했을 때도 매우 낭만적이었지.
그런데, 키스 제안을 받았을 때 거절했어.
나는 아직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거든"
나는 들으며 귀를 의심했다.
"나톤도, 지금 애론이 남자친구라고 하지 않았어?"
"응! 그게 왜?"
알고 보니 그들은 다자사랑주의자였고,
서로 다른 짝꿍을 인정하고 있었다.
다자사랑주의자 개념을 알고 있었지만,
갑작스레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대화에
나는 잠시 준비가 필요했다.
그러는 중에 로버트도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며칠 전에 에이미랑 데이트를 했는데,
꽤나 귀여운 아이였어."
"로버트, 에이미랑 데이트를 했다니?
에이미는 너의 아내가 아니었어?"
신혼남편인 로버트는
아내 에이미와 함께 나를 호스트 하고 있었다.
로버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틴더에서 만난 다른 에이미말이야."
나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충격에 휩싸였다.
아직 연애 중인 마톤도 까지는 이해하는 척이라도 하지만,
신혼부부임에도 다자사랑을 추구하고 있다니.
에이미 역시 로버트의 다자사랑을 존중하고
로버트가 다른 여자와 데이트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누드비치에서 신혼남편이 아내 없이
다른 친구들과 알몸으로 수영을 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 그런 알몸 친구 중에 나도 한 명이라는 사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여러 사람과 동시에 관계를 맺는 게 옳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추구하는 사랑과 엄연히 다른 길이었다.
다자사랑주의자 추구하는 사랑은
급진적이고 어쩌면 비난의 손짓을 받을 수 있지만,
나는 그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하되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혼란을 마무리했다.
'그를 존중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야.'
나는 로버트에게 물었다.
"로버트, 다양한 이들과 관계 맺는 걸 좋아하는데,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뭐야?"
"내가 여러 사람을 좋아하지만,
그 속에서도 서로의 굳은 신뢰로 함께 고민을 털어놓을 관계를 원해서야.
서로에게 의지되고 도움 되는 관계가 있기를 원해."
그의 말을 듣고는 생각했다.
오로지 한 사람만 바라보는 사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 자연의 법칙에서 많은 종은 다자사랑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사람만 바라보며 서로를 둘러싼 단단한 관계로
안정감을 얻는 것도 사랑의 한 이유이다.
강한 결속력을 맺게 하는 것도 사랑의 기능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런 안정감을 원하는 때가 있다.
서로를 독점하지 않은 사랑을 지향하면서도
독점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우린 모두 불안정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도 결혼은 하고 싶은걸"
다자사랑주의자인 나톤도도 고개를 끄덕인다.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사회에서 한평생 살아온 나에게는
신혼부부까지 다자사랑을 하는 사례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로버트를 이해하는 게 시간이 걸렸다.
당황해하는 모습을 숨기지 못했지만,
친구들은 웃으며 편하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애런, 너도 그럼 세컨드 여자친구가 있어?"
"나는 없어. 그렇지만 나톤도가 남자친구가 여러 명인걸 인정해"
나누고 있는 대화는
지금 내가 누드비치에 왔다는 사실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든지 나는 그들을 비난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다.
다자사랑은 서로를 독점하지 않고,
투명하게 다자관계를 공유하면서
합의를 맺으며 이루어지는
하나의 신뢰관계인 것이다.
관계에 있어
다양한 형태로
감정과 신호를 공유하지만
그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라는 공통점이 있구나.
신뢰가 있는 관계는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고,
우리의 삶을 더욱 행복하게 하는구나.
낮이 되니,
더 많은 이들이 누드비치를 즐기고 있었다.
알몸인 사람들이 눈앞에 지나갈 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보고 있는 게 맞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처음 티브이에서 누드비치 봤을 때,
알몸으로 바다에 있다는 사실이 상상도 안되었는데,
그런 내가 알몸으로 바다에 누워 선탠도 하고,
친구들과 두 번째 애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지금 내 눈앞의 친구들이 다 나체라니.
다자사랑주의 친구들과 함께
여러 명의 애인을 이야기 하고 있다니.
보고 있는데도 믿기지 않는 상황에서
계속 믿으라고 상기해야 했지만,
성적인 불쾌감이 없다면,
무언가 구애받지 않는다는 감정을 아는 것이
꽤나 괜찮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12시 정오가 되어
우린 누드비치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물놀이를 하고 나서 인지
노곤노곤해진 마음으로 졸음이 몰려왔지만,
방금 느낀 감정과
충격적인 문화를 흡수하기 위해
계속해서 곱씹었다.
케이프타운의 자연은 언제나처럼 아름다웠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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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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