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버킷리스트 ②⑥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새해 카니발 경험하기
* 본 글은 버킷리스트 내용보다 버킷리스트 이전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일기 형식을 간략히 옮긴 글로 가볍게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매년 1월 1일이면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프타운에서 전통적인 축제가 열린다.
문화적 다양성과 역사적 의미를 가진 카니발은
민스트럴 카니발((Minstrel Carnival)이다.
민스트럴 카니발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가장 큰 거리 축제이기에
카니발이 진행되는 동안 온 거리는 다양한 음악, 춤, 다채로운 의상으로 가득 찬다.
데이지 버킷리스트 ②⑥ 남아프리카공화국 카니발 보내기
문화적, 인종적, 언어적 다양성을 대표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Rainbow Nation(무지개 나라)"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국가에서
나는 다양성을 외치며 사람들이 춤을 춘다는 소식을 어렴풋이 알았다.
매 새해마다 카니발을 열어 춤을 추며 새해를 맞이하다니!
민스트럴 카니발은 이번 세계일주 버킷리스트의 새해를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가기에 충분한 이유를 만들었다.
그러나,
카니발에 들떠있기만 할 수는 없었다.
보츠와나 가브로네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이동하는 길.
아침 4시 반 즈음 일어나,
보츠와나 호스트 부부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에 올랐다.
버킷리스트인 케이프타운에 가기 전,
요하네스버그에 경유하기 위해 요하네스로 향한다.
아프리카 횡단 여행의 끝을 달리며
아프리카의 마지막 국가인 남아공으로 향하는 길.
창문 너머의 거리를 바라보며 괜스레
이번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토록 바라던 버킷리스트의 순간들을 이뤄낸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동시에, 앞으로 이루어낼 버킷리스트의 순간을 떠올린다.
새해가 밝아오며 맞이하는 카니발은 어떤 모습일까,
아프리카 대륙에서 좋은 인프라를 가진 축에 속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어떤 모습일까,
조금씩 가까워오는 요하네스버그 모습이 보인다.
조금 후미지고 무서워 보이는 여러 마을사이로 매우 적은 백인의 모습, 많은 흑인들이 보였다.
마리화나(마약)와 총기소유가 합법인 남아공이기에 창문 너머 아이가 총장난감으로 도로를 향해 쏘려는 행위를 보고 지레 침을 삼킨다.
경유차 들리는 요하네스버그는 전 세계적으로 살인율 10위, 범죄율 5위인 나라라고 하니
이전부터 들어온 요하네스버그의 위험을 떠올리며 잔뜩 긴장 태세에 들어간다.
잠시동안의 걸음이지만, 걷는 내내
가시적으로 보이는 차별을 느꼈다.
가난한 이들은 오랫동안 백인으로부터 받은 차별에 대한 깊은 상처가 있고,
그들은 자기는 무엇을 해도 잃을 게 없다는 눈빛을 갖고 있었다.
나아지지 않는 가난은 그들이 무엇이든 하게 만드는 잔인함을 주었다
그런 우울이 가득 찬 거리는 걷는 것만으로도 삼엄함이 넘쳤다.
"나는 센터 쪽으로 가는데, 같이 갈래?"
케이프타운행 버스를 갈아타기까지 5시간가량 남았기에
요하네스버그를 한번 둘러볼까 고민하던 찰나
우연히 버스에서 말이 닿은 여성이 물었다.
"고마워. 그런데 나는 아파르트헤이트 박물관에 먼저 가보고 싶어."
그와 시간이 맞으면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고
우버를 불러 박물관에 가니, 연말로 휴장이었다.
이미 떠난 우버를 두고 고민을 하는 찰나,
나와 같은 상황을 맞은 사람을 발견했다.
우린 우버를 공유해 요하네스버그 거리로 돌아왔다.
핀란드에서 교사로 일한다는 그는
본인을 라이니라고 소개했다.
계약직 교사이기에 매 방학마다 여행을 다닌다고.
"아프리카 여행도 줄곧 했는데,
나는 가나가 가장 좋았어.
흑인들은 심지어 어린이도 백인어른보다 춤을 잘 추더라."
그의 말에 공감하며 아프리카 여행하며 느낀 소감을 더했다.
"맞아.
그들은 춤출 줄 알고, 노래할 줄 알고,
삶을 어떻게 즐기는지 알고 있는 거 같아."
짧은 만남으로 우린 햄버거 가게에서 이야기를 이어갔고,
배를 채운 뒤 나는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가야 했다.
'아까도 폭스스트리트를 조금 걸었고,
어차피 30분 거리니까, 빨리 걸어서 가자!'
요하네스버그에 처음 들어선 긴장은 온 데 간 데 없이
어느새 편해진 마음으로 거리를 걷는 내내
휴대폰으로 곳곳의 사진과 영상을 남겼다.
'에이, 이렇게나 거리에 사람이 많은데,
위험한 일이 생길까?'
나의 오만하고 무지했던 생각은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가 나를 둘러싼 두 남성에 의해 처참히 무너진다.
"겁먹지 마"
두 남자가 말하며 내게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하는 내게 말하며 팔을 잡았다.
나는 팔을 뿌리치고 가려고 하니 다시 팔을 잡으려고 하면서 말했다.
"폰 내놔"
바로 내 앞을 가로막은 그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내가 피하려고 뒤로 물러서니 그는 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남아공, 남아메리카 등 일부 위험지역에서
강도를 당하면 군말 없이 내놓아야 한다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그를 거부했다.
그는 즉시 무력으로 내 폰을 낚아채려고 했고,
나는 그와 짧은 몸싸움을 벌이다 바닥에 넘어졌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그와 몸싸움을 벌이며
우리를 지나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넘어지자마자 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주머니에 있는 두 번째 폰을 뺏어갔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옆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도와달라고 요청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멀뚱히 서서 나의 사투를 지켜볼 뿐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도시를 여자 혼자 걸어 다닌 것이 잘못이지만,
그렇게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범죄를 저지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행인은 아무렇지 않게 나를 지나쳤고,
도와달라는 내 목소리는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제발요. 저는 폰이 정말 중요해요.
제게 다시 돌려주세요. 제발이에요."
절절하게 소리치며 도망가려는 강도를 쫓아갔다.
내 절실함이 닿았는지 두 명의 강도 중 한 명은
돌아와 폰 하나를 돌려주었다.
"도망간 다른 강도를 잡아올게."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도
이를 끝으로 사라진 남자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방금 순식간에 벌어진 이 상황에 경악과 어리둥절한 채로 거리에 서있을 뿐이다.
"그 남자, 안 돌아올 거야."
지나가는 이들은 나를 보더니 말했다.
버스정류장까지 5분 남짓 남았지만,
떨리는 다리는 홀로 정류장까지 가지 못할 것 같았다.
"제가 방금 강도를 당했어요.
저는 저쪽 버스정류장까지 가야 하는데,
길이 무서워서, 괜찮으면 저를 데려다줄 수 있나요?"
마침 옆에서 내 상황을 보던 이에게 물었다.
그의 답변은 충격 그 이상이었다.
"얼마 줄 수 있는데?"
거리 한가운데에서 강도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것에서 모자라
무섭고 두려워하는 이에게 돈을 요구한다니.
끝까지 정 없는 요하네스버그가 참으로 충격적일 뿐이다.
사투를 벌이면서 옆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멀뚱히 지켜보거나 그냥 지나쳤다.
세계에서 위험하다는 도시를 여자 혼자 걸어 다닌 것이 잘못이지만,
그렇게나 수많은 사람 앞에서 대놓고 범죄를 저지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리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다.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말한 이유는,
단지 강도 자체가 위험하다는 뜻에서 나아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가방을 다시 돌려받으며 강도 이야기를 말하니
보관소 직원은 진심 어린 위로를 보내주었다.
"지금 전화할 곳은 있어?
부모님한테 전화해야 하는 거라면 내 폰을 빌려줄게."
그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웠다.
어리둥절하며 상황을 받아들이느라 잠시 로딩 중이던 뇌는
그의 위로에 버튼이 눌리듯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흘렀다.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자리에 앉아
방금 일어난 상황을 복기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안전한 정류장에 있으니
갑자기 다리가 풀리며 눈물이 나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렇게 살아있음이 정말 감사하다.'
생각해 보면, 지갑, 노트북 등의 다른 큰 사건이 아니며,
한 강도는 내게 다시 폰을 돌려주었다.
두 개의 폰 중에서 하나는 돌려받았다니,
이건 마치 새해 선물과 다름없는 거였다.
여전히 살아있음을 선물로 여기며 감사해하면서
한참을 눈물을 흘리다 케이프타운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올라 연락들을 확인했다.
한국은 이미 새해가 밝았는지 여러 메시지 창들이 가득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하는구나.
계속해서 케이프타운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
새해를 버스 안에서 맞이하며
12시가 되는 자정을 맞으며 소원을 빌었다.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남은 2개월의 여행도 안전하게 끝내게 해 주세요."
한해를 액땜하며 마무리해서,
새해를 좋은 에너지로 밝게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강도를 당하지 않았다면,
박물관이 닫혀서 택시비도 버리고 시간을 낭비했다며 짜증을 냈을 수도 있지만,
강도라는 더 위험한 상황을 겪었음에도
살아있음에 감사해하며
더 큰 감사함을 느낀다니.
참 모순적인 이 순간에 웃음이 나왔다.
버스는 다들 깊은 잠에 빠져
이번 년과의 작별을 꿈속에서 맞이하려는 듯 조용한 코골이를 내고 있다.
2층 창가로 보이는 모니터 같은 버스 풍경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껌껌한 풍경일 뿐이지만,
버스는 계속 달리고 있다.
잠에서 깨니 여전히 버스는 케이프타운을 향해 달리고 있다.
오늘, 2024년 1월 1일의 새해가 밝았다.
어제의 일이 꿈만 같다.
다만 나에게 두 개 중 하나의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이 꿈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어제를 복기할수록 이런저런 후회의 감정과 아쉬움의 감정이 들면서도
동시에 다친 거 없이 살아있는 게 정말 감사하다.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도로가 굉장히 예쁘다....
창 밖으로 일출이 올라오고 있다.
맑은 날씨로 아름다운 도로가 펼쳐지고 있었다.
다시 한번 나의 원래 계획이던 카니발을 떠올렸다.
우연히 말을 튼 옆 좌석 남성에서 민스트럴 카니발을 물어봤다.
"나는 처음 듣는 카니발인데?"
"엥? 유명한 카니발이라고 생가했는데!
모두가 원하는 새해 파티가 아니야?"
케이프타운에서 나고 자랐다는 남성임에도
카니발의 존재를 몰랐다.
퍼레이드가 케이프타운 전역의 큰 연례행사인 줄 알았는데,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인터넷에서도 많은 정보가 있지 않았다.
"남아공이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된 게 30년 전이기에
여전히 수많은 차별과 서로에 대한 혐오가 존재해.
해당 퍼레이드는 ‘컬러(흑인과 백인의 혼합을 지칭)’를 위한 퍼레이드이고
다른 집단의 일에 대해 남아공사람들은 관심이 없어."
남아공은 흑인, 컬러, 백인, 인도, 일부 아시아 인으로 인구 구성이 되어있는데
각자 남의 집단일에 관심이 없다고 덧붙인다.
그 사실은 내게 놀라웠다.
화합을 상징하는 남아공 국기가 무색하게도,
다양성을 의미하는 민스트럴 카니발의 축제가 무색하게도
남아공은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혐오가 있는 나라였다니.
'컬러'만을 위한 축제였다고 해도,
어릴 적 꿈꾼 민스트럴 카니발을 빠질 수 없다.
이른 아침부터 일부 거리는 카니발로 흥이 가득 차 있었다.
"와!! 내가 어릴 적 꿈꿨던 카니발이야!"
이틀 전 일어난 강도 사건은 툴툴 털어버리고,
새롭게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채로운 의상을 입은 군주 속으로 빠져든다.
2024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릴 적, 가슴 뛰어 잠들지 못한 순간부터 여행하는 내 모습은 수없이도 많이 그려왔지만,
여행 이후의 삶은 한 번도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여행 이후의 삶이 그려지고 있다.
어느덧 두 달 남짓 남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민스트럴 카니발이라는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박스에 체크를 하지만,
동시에 새로 생겨나는 새로운 모험을 꿈꾼다.
한 해동안 수고했다!
다음 년에도 삶이라는 여행을 재밌게 즐기자.
데이지 (신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