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버킷리스트 ②④ 네팔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등반하기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②④ 네팔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등반하기
히말라야(8,848m).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맥인 이곳은
오래전부터 나의 꿈이었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내 모습을 수없이도 상상했다.
하이얀 설산을 바라보는 내 모습을 상상할 때면
심장은 미치도록 쿵쾅거렸다.
입산 허가증(퍼밋)을 발급받자마자 가슴이 마구 요동쳤다.
홀로 히말라야에 오를 생각을 하니
울컥하고
걱정되고
떨리고
설렌다.
페와 호수에서 숙소로 걸어오면서 신께 기도했다.
제게 저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히말라야 산맥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해주세요.
히말라야를 통해 겸손함과 용기를 주세요.
무사히 산행을 다녀올 수 있게 해 주세요.
비상식량과 고산병약을 구비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호스텔에서 짐을 싸는 내게 한 여행객이 묻는다.
"세계 일주라니! 지금까지 어땠어?"
"음, 정말 행복했어.
매번 다른 생활과 삶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껴.
물론 실수도 많지.
의지하려고만 하는 내 모습,
부지런하지 못한 내 모습도 보고,
뜻대로 풀리지 않는 순간으로
슬프기도 하고,
짜증 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이없기도 하지만,
이건 지나가는 당연한 감정에 불과해."
"일상에서 해보지 못한 것을 하면서
살아있음을 느끼는구나."
"응. 정말 행복해.
여행이란 삶의 진리를 깨닫는 과정 같아."
내일이면 히말라야에 간다.
그토록 바라고
간절히 원하던 히말라야.
대학 산악부를 하면서도
산행 전날에 긴장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가만히 있어도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다.
루트가 잘 닦여 있고
쉬운 길이라고 다들 말하지만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간절함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라면
그 순간이 불확실로 가득 차있다면
지구상의 모든 진동을 가져와 내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걸까.
미치도록 뛰는 가슴을 붙잡았다.
그리고
조용히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이 떨림을 사랑해.'
아침 5시 30분.
눈을 뜨자마자 든 감정은
어젯밤 잠들기 전 요동치던 가슴이 멈추지 않았는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현지 친구 도움으로 그랩으로 버스정류장 이동했다.
"울렐리! 울렐리!"
"녀야풀! 녀야풀!"
목적지를 말하고 티켓을 끊고 30분 정도 기다리니 버스가 도착했다.
7시, 버스에 올라 한 시간 반 정도 기다리니
버스를 채운 사람들과 함께 출발했다.
버스는 정해진 역 없이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이 손을 흔들면 멈춘다.
중간중간 멈추고
잠시 멈추어 다 같이 밥을 먹는다.
마을 곳곳을 들리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연된 상황에서
여전히 도착까지 많이 남은 상황.
서울에서 2시간이 지연됐다면 화부터 냈을 텐데,
지연된 버스가 일상이 된 이 순간.
아무렇지 않은 나 자신을 발견한다.
참 신기하다.
시간에 인색하던 나 자신이
불규칙한 시간 앞에 아무렇지 않다니.
여행은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새롭게 발견한 내 모습이 좋다.
느리게 움직이는 버스 창 밖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사람들이 머리로 스며들었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여러 사람들 뒤로
보고 싶다는 감정이 피어오른다.
동시에, 여유를 빙자한 몽상이 시작됐다.
‘보고 싶다’의 의미가 뭘까.
지금 당장 네가 그립다.
너를 만나러 가고 싶다.라는 의미뿐인 걸까.
'누군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느낀 적이 없는데,
지금 그 사람이 그리운 게 아닌데 보고 싶은 이유가 뭘까.
어쩌면,
'보고 싶다'는
'너와의 추억을 좋게 생각하며 추억하며 웃음 짓고 있다'라는 표현도 되는구나.
내 머릿속을 스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다들 보고 싶다.
문득 보고 싶은 이에게
탈탈 거리는 버스를 변명삼아 편지를 쓴다.
안녕! 잘 지내지?
나는 지금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포인트로 향하는 버스에 있어.
저 멀리 히말라야의 설산이 보일 때면 가슴이 미치도록 뛰어.
가이드 고용이 의무인데, 정책 초기라 홀로 가는 이들도 있어.
나도 혼자 올라가기로 했어.
혹여 가이드 규제에 걸리지는 않을까,
루트를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나의 체력이 가능할까
다양한 걱정이 나를 긴장시키고 있어.
네팔에서는 6,000m 이하로 산을 오르는걸
산행이라 부르지 않고 트레킹이라 하더라.
나는 이제껏 인생에서 산행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거야!
여행하면서 여러 번 산에 갔는데, 갈 때마다 네 생각이 많이 났어.
같이 산에서 누워서 웃으며 나눈 이야기들이 생생해.
소중한 추억이 있어서,
함께 나누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해.
한국 가면 우리 더 많은 추억 나누자.
소중한 사람에게 2023.05.08
무사히 도착한 버스.
공사 중인지 돌로 막아놓아 버스는 모든 승객을 내리게 했다.
고레파니(2,860m)까지 도착하고자
함께 버스에 오른 이들과 함께 지프를 나눠 오르기로 했다.
카트만두에 사는 네팔인 부부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들은 체크포인트에서 가이드가 없는 나를 도와줬다.
조금씩 히말라야의 설산이 보일 때면
알 수 없는 떨림이 느껴졌다.
홀로 오르게 된 히말라야.
예측할 수 없는 앞날에
심장은 미치도록 쿵쾅거린다.
혹여 길을 잃지는 않을지,
체력이 받쳐주지는 않을지,
히말라야 규정에 걸리지는 않을지,
불확실성 앞에 펼쳐진 각종 걱정거리와 함께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길을 딛기 시작한다.
<2023.05.08>
히말라야 속에 있다니.
믿기지 않아!
아직 초반부여서 제대로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히말라야를 걷고 있다.
그 속은 아름답다.
네팔 국화도 종종 보이고,
멀리서 보이는 산의 장엄함,
가깝지만 멀리 있는 산의 표면을 볼 때면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가득해진다.
지프차를 빌려 쉽게 올라온 느낌이지만,
언제나 겸손하고 감사해하며 내일도 무사히 산행을 마치기를
코코넛 초코바를 선물하며 난로 옆에 앉은 밤.
따뜻한 난로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며
노곤노곤하게 잠에 취하며 밤을 맞았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첫째 날
6:00 버스정류장출발,
7:00 버스탑승.
8:30 출발 (중간중간 멈추고 밥 먹음)
10:30 나야풀(nayapul) 도착
19:25 고라파니(2,860m) 도착
20:30 취침
12시와 3시.
두 번의 새벽에 눈이 떠졌다.
잠결에 바라본 창문 사이로 달이 떠있다.
동그랗고 예쁜 달은 내게 말하고 있었다.
'잘할 거야'
새벽 4시 20분.
푼힐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이른 새벽에 준비를 시작했다.
쓸모없을 정도로 약한 빛을 내는 헤드랜턴이지만,
일출을 보려는 다른 등산객을 따라 이동했다.
한 시간 정도를 오르고 나니 전망대가 드러났다.
밀크티 한잔을 마시며 일출을 기다리고 있자니
지난날의 나의 어리석은,
동시에 어리석기에 빛나는 순간이 스쳐갔다.
내가 믿고 있는 걸 다른 이들이 믿어주기를 바라던 순간,
내가 알고 있는 걸 다른 이들도 알 거라고 생각한 순간,
나의 삶의 방식이 남들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한 순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른 이를 변화시키고, 바꿀 수 있다고 믿던 순간까지.
일련의 순간을 거치고 깨달았다.
바꾸지 못하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바뀌지 않더라도 꾸준히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물끄러미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니 눈물이 흘렀다.
감정을 통제하려고 생각하기도 전에 마구잡이로 흘렀다.
푼힐과 인사하는 히말라야 일출이 너무 환상적이어서,
그토록 꿈꾸던 히말라야 속에 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차가운 히말라야 공기가 내 뺨에 닿는 게 황홀해서,
주체할 수 없이 뺨을 타고 주룩주룩 흘렀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그대로 둔 채 두 손 모아 소원 빌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바꾸지 못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용기를,
두려움에 맞설 용기를 주세요."
이후 달밧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본격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의 목표는 타다 파니(2,630m).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타다 파니에,
다음 목적지까지 갈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한 무리의 친구들이 내게 인사했다.
"너도 오늘 타다 파니에서 머물 거야?"
히말라야에서 만난 친구들 이야기 다시 보기 ▶ 나의 첫 히말라야에서 만난
'내일 시누와에 함께 갈 친구가 생겼다!'
하루만 같이 묵게 될 줄 알았던 친구들은,
히말라야를 오르는 내내 함께했고,
내게 잊지 못할 히말라야를 만들어주었다.
<2023.05.09>
히말라야의 산속에 있다고,
그곳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걷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다.
히말라야와 완전히 사랑에 빠졌다!
정말 아름답다.
옆을 보면 설산이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
걸으면서도 아름다운 장관에 눈물이 울컥 나왔다.
눈이 마주치면 나마스테라고 말하며 웃는 사람들,
적당한 운동, 새로운 인연, 아름다운 자연,
따뜻한 난로로 모여드는 사람들,
조금씩 저무는 해까지.
이 순간이 사랑스럽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둘째 날
4:45 푼힐 전망대 출발
5:25 전망대 도착
7:00 숙소 다시 도착
[하산 후 아침 먹은 뒤]
8:30 준비 후 출발 (고레파니에서)
13:00 타다 파니 도착
아침에 마시는 밀크티.
히말라야에서 마시는 밀크티는 행복 그 자체이다.
언제 또다시 이런 기분을 느낄까!
너무 소중한 이 순간순간이 사랑스럽고 눈물이 날 정도로 벅차다.
어김없이 산의 절경을 바라보며 이동하다 보니
문득 카트만두에서 만난 네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기숙사에서 만난 친구와의 이야기 다시 보기 ▶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난 히말라야 마을에서 태어나 히말라야를 보며 지낼 수 있어 정말 행운아야."
히말라야 전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의 말이 온전히 이해됐다.
롯지에서 산행을 준비하는 사람들,
북적거리는 소리,
산속 깊은 수도원에서 나는 목탁소리,
말이 지나가면서 내는 방울소리.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
각자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가면서,
눈이 마주치면 친절하게 인사하는 사람들.
적당히 발걸음을 맞추며
적당한 한계에 도전하고
함께 웃음을 나누고
바람과 햇살을 공유하고
목표에 맞춰 조금씩 나아가는 트레킹.
히말라야를 본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구나.
점심을 먹고 출발하려는데 비가 내렸다.
빗소리에 질세라 천둥도 커다랗게 울렸다.
"우와 비다!"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비를 장착해 전진했다.
비가 내리니 기분이 최고로 좋아진다.
비가 후드득 떨어지는 순간에도 우린 함께 장난치고,
재밌게 이야기를 나눴다.
"잠잠(Let's go)!"
네팔어로 "가자!"를 의미하는 잠잠.
우린 한 몸이 되어 잠잠을 외쳤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잠잠을 외치는 우리는
영락없는 젖은 생쥐 꼴이지만,
비는 우리를 막는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비가 그치면 아름다운 설산의 풍채가 드러난다.
히말라야 설경을 배경으로 눈을 뜬 뒤
함께 아침과 점심, 저녁을 먹고
도착한 산장에서 이야기 나누며 휴식을 취했다.
함께 춤을 추기도,
블랙티 한잔의 여유를 느끼기도,
다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과자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동시에,
히말라야 산속에 있음을 느꼈다.
히말라야의 설산 추위 앞에서
우리의 온기는 따뜻하고도 온정적이다.
트레킹을 오르면서 생각한다.
'히말라야에 다시 오고 싶다.'
네팔에 있으면서도 네팔에 다시 오고 싶다.
히말라야에 있으면서도 히말라야에 다시 오고 싶다.
2023. 05.10
확실히 고도가 높아지면서
숙소의 식량과 전기시설이 부족해졌다.
셋째 날 롯지부터는 난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차가운 공기에 추위를 느끼지만,
괜스레 기분은 좋아진다.
'그만큼 히말라야에 더 가까워지고 있구나.'
지금 이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마음껏 사랑하고 느낀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셋째 날
7:40 출발
11:50 촘롱(2,170m) 도착
13:24 점심 이후 다시 출발
15:50 시누와(2,360m) 도착
어느덧 드러난 히말라야 설산.
설산을 바라보며 오늘의 트레킹을 시작한다.
사이사이 협곡으로 이루어진 산들과
그 산 위를 채운 눈들이 장관을 연출한다.
협곡 사이를 수영하는 상상을 하며 웃음 짓는다.
오늘 같이 발맞춰 걷게 된 리방.
리방은 히말라야의 설산처럼 하얀 순수함을 갖고 있었다.
"인생은 언덕과 같아.
하나의 언덕을 넘으면 다른 언덕이 존재하지.
언덕은 연속적으로 펼쳐질 거야.
그러니,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넘고 있는 이 언덕을 즐기는 거야.
현재를 즐겨."
숲 사이로 그 말을 하는 그의 모습이 굉장히 사랑스러워 보인다.
우린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삶은 무엇일까.
사랑은 무엇일까.
돈은 중요할까.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만 있으면 사랑은 가능해."
그와의 대화 덕분일까,
7시간이 가는 줄 모른 채 목적지인 데우랄리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서 창밖을 보며 산을 본다.
네팔 배경음악을 들으며 네팔 사람들,
그리고 옆에 있는 텐텐과 저녁시간을 보낸다.
텐텐은 아름다운 미소를 가졌다.
언제나 나를 보고 미소를 잃지 않았다.
트레킹을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텐텐은
도전을 위해 히말라야 트레킹에 오게 되었다.
그는 종종 내게 주옥같은 말로 조언해 주었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현재를 즐기고 결과는 미래로 넘기는 거야.
후회할 삶을 살지 마."
그의 말을 듣고
여전히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히말라아에서만큼은
내 감정에 솔직하기로 다짐했고,
난 여전히 히말라야에서의 내 솔직함을 잊지 못한다.
우린 어김없이 도착한 롯지에서 휴식을 취한 뒤,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있는 힘껏 춤을 췄다.
카드게임을 하며 시시콜콜한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우주를 공유했다.
함께한 시간 때문일까, 금방 흘러버린 시간에
어느덧 정상으로 가기 마지막 날이 되었다.
< 2023.05.11>
내일이 마지막 날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
내일이면 그토록 정상에 도착하다니.
아직 정상에 도착한 건 아니지만,
친구들과 함께 해서 좋다.
더욱 재미있는 추억을 남길 수 있어 좋다.
함께 춤을 추고
네팔 음악을 들으며
저녁을 먹는 이 순간이 사랑스럽다.
네팔음악을 들으며 산을 바라보는 이 순간이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소중한 순간이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네 넷째 날>
14:30 데우랄리 (3,230m) 도착
드디어 베이스캠프에 가는 날이다. 얏호!
걷는 순간마다
언제나처럼 내 옆에 머물러주는 설산을 바라본다.
오르는 모든 순간이 찬란하고, 빛나서일까,
설산을 마주하는 모든 순간에서 울컥함이 닥친다.
그 찬란함이 사무치게 그리운데,
빛나는 순간을 잡고 싶은데,
그리움 저편, 멀리서만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일까.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아니, 한탄이 아니야.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일어나지 못하는 사실에 대한 한탄이 아니다.
오로지 그 순간에 히말라야를 올랐기에,
오로지 그 순간에, 히말라야에 함께 올랐기에,
오로지 이제는 지나가 버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는 그 순간이기에만 가능했던 순간이기에.
소중하고 또 찬란하기에 눈물이 난다.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른 뒤,
홀로 히말라야와 인사를 하러 나왔다.
눈으로 가득 쌓인 설산에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마음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어린아이가 튀어나왔다.
그 어린아이는
오랫동안 간절히 원했던 히말라야를 마주했다.
히말라야는 어린아이 인생에서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다.
광활하고 수려한 아름다움 앞에서 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히말라야의 모습이 너무 찬란해서,
녹지 않는 설산의 모습이 경이로워서,
하얀 눈으로 가득한 모습이
내 안의 맑고 순수한 어린아이를 울렸다.
나는 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안나푸르나 앞에 홀로 앉아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울면서 나는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오래도록 기억하겠구나.
그리고 확신했다.
나는 산을 사랑해.
나는 히말라야를 사랑해.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해.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정상에서의 밤.
수없이 펼쳐진 별들은
하늘에 빼곡하게 가득 차있었다.
고산지대의 맑은 공기를 받아
별은 더욱이 선명하고 다채롭게 퍼져있었다.
어두운 히말라야의 실루엣 사이로
별들은 작은 보석처럼 반짝였다.
작은 보석은 히말라야의 높은 산맥과 닿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에 코끝을 훌쩍이며
고요한 히말라야에서 모든 순간이 멈춰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별빛의 달콤함으로 물들어
마치 그 별을 내 입 속에 넣는 듯했다.
고요한 히말라야의 밤은 오랫동안 내 혀를 달콤하게 녹았다.
<히말라야 다섯째 날_2023.05.12>
10:00 MBC(3,700m) 도착
다음날 아침, 한창 새벽인데도 날이 조금 밝았다.
약간의 어둠 속에서 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일출을 보러 갔다.
불과 몇 시간 차이로 하늘은 빠르게 변해 날이 밝아있었다.
언제 다시 또 히말라야에 올 수 있을까?
문득 해를 보면서
생각의 틈을 열어놓으니
울컥함이 비집고 들어선다.
오늘 머무를 촘롱(2,170m)으로 내려가는 길.
내려오는 길은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고 다양한 길들이 존재했다.
중간에 가던 중에 다리에 힘이 빠져 넘어지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나서 천천히 걸었다.
물끄러미 산을 바라봤다.
이 순간이 오지 않을까라는 걸 알고 있기에 더욱 소중하다.
언제나 머물러있는 산을 보고 있자니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또다시 울컥했다.
촘롱에 무사히 도착해
친구들과 마지막 저녁을 함께했다.
친구들은 마지막 순간을 즐기기 위해
양주와 과자를 잔뜩 가져와 파티의 장이 열렸다.
산에 들어올 때부터
이곳의 모든 게 일상같이 느껴졌다.
히말라야 자체가 준 편안함도 있지만,
친구들 덕분이란 걸 알고 있다.
우린 앞으로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훗날 다시 만나게 될 그날을 위해
우리의 삶이 서로를 다시 목격하는 날을 기약하며
마지막 파티를 즐겼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여섯째 날_2023.05.13>
7:00 하산 시작
17:30 촘롱 도착
아침에 일어나 롯지 밖으로 나오니
일출이 어슴푸레 뜨려는지 하늘이 주황과 연한 빨강으로 물들어 있다.
어느 때와 같이 밀크티를 마신다.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해서 눈물이 울컥한다.
히말라야의 이 순간. 너무 소중해.
다시는 오지 않을 거란 걸 알기 때문에 더 소중해.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저 순간을 즐기는 것 밖에 없다는 사실이 알기에,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갈 수밖에 없는 시간 앞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친구들 앞에서
아련해오는 마음을 남몰래 숨긴다.
"데이지, 무슨 일 있어?"
"밀크티가 너무 맛있어서 괜히 눈물이 나네"
아침에 내려오기 시작해 지프차를 탔다.
내려오는 길에 무릎이 망가진 것이 느껴진다.
다들 피곤했는지 차 안은 조용하고, 사람들은 잠에 들었다.
그 순간을 즐겼다.
지프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네팔 음악,
시원한 바람,
버스보다 훨씬 편안한 승차감.
그리고 모두 함께 소중한 인연이 되어 돌아온 모두와 공유하는 공기.
행복했다.
따뜻했고,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이란 걸 알기에
그래서 더 그 순간을 즐기려고 노력했다.
네팔이 너무 그리울 거 같아.
도로 위 먼지,
뜨거운 태양,
비효율적인 버스시스템까지도.
네팔에서의 추억이 너무 소중해서,
네팔과의 이별이 아쉬워서,
네팔에서 만난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마구마구 흘렀다.
네팔에 있으면서 네팔이 그립고,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서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난 떠나버릴 이 순간을 붙잡지 못해
조용히 순간을 음미할 수밖에 없었다.
창가 너머로 히말라야가 조금씩 멀어져 갔다.
히말라야를 보며 조용히 손을 흔들었다.
우리 다시 만나자.
안녕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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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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