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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 I 타자라 열차에서

데이지 버킷리스트 ②⑤ 크리스마스 여름에 보내기

by 여행가 데이지


언제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흰 수염의 산타할아버지를 떠올렸다.


눈이 소복이 내리고,

차가운 공기를 채운 입김으로

크리스마스의 아침을 맞이했다.


"여름에 크리스마스를 보낸다고?"


줄곧 내게 크리스마스는 겨울 이어왔기에

간편하게 입은 채 수영을 하는 산타할아버지를 비롯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바다에 있는 남반구 사람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여름에 크리스마스를 보내보고 싶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여름 크리스마스.

따뜻한 기운 속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여름 크리스마스는 어떤 모습일까.


데이지 버킷리스트 ②⑤ 크리스마스 여름에 보내기





#0. 크리스마스 어디서 보내려고?


2023.12.14 탄자니아 모시(Mo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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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모시의 위치 / 킬리만자로 산행 중

킬리만자로 산행을 마친 뒤,

오랫동안 자고 난 뒤 호텔 조식을 맞이했다.

우연히 호텔에 크리스마스 노래가 울렸다.


아, 곧 크리스마스이구나.


어느새 연말이 찾아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탄자니아의 여름과 함께 울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은 낯설다.


크리스마스를 아프리카에서 보내게 되었구나.

'아프리카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함이

벌써부터 나를 설레게 했다.


탄자니아 모시에서 친해진 친구들

"데이지, 우리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자!"


모시에서 친해진 현지 친구는

모시에서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자고 제안했다.



"데이지, 잔지바르(Zanzibar)는 이슬람이지만, 기독교인도 많기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특히나 해변에서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활발해."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 만난 사람들

모시를 떠나 도착한 잔지바르에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느라 들뜬 기분을 받았다.



모시, 잔지바르...


탄자니아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면 환상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무언가 새로운 곳에서 크리스마스를 맞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선택이 좋을까..'


어딜 가나 재밌는 크리스마스가 펼쳐질 것이기에

잔지바르에 머무는 내내 고민했다.


'잔지바르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다시 모시로 돌아가?

아니면.. 새로운 곳으로?'





#1. 우선 타자라 열차에 타보자!


2023.12.22.,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_정신없이 달리는 여행에도 머무름이 필요해




고민은 결국 *타자라 열차로 이어졌다.

탄자니아와 잠비아를 잇는 열차로

잠비아에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른다는 점이

예측 불가한 크리스마스를 만들거라 생각됐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 머물다 타자라 기차역으로 향했다.



* 타자라 열차: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과 잠비아의 카폰고(Kapiri Mposhi)를 연결하는 국제 철도 노선으로, 현지인뿐만 아니라 여행객들도 아프리카 기차 여행을 위해 이용해 왔다.


GOPR1377.JPG?type=w3840 탄자니아를 떠나기 전, 드레드락(아프리카 레게머리)으로 기분을 낸 뒤 타자라 열차를 타러 향했다.


하루를 꼬박 넘기며 기차 안에 머물러야 한다.

기차 여행을 함께할 과자를 사러 잠시 마을을 둘러봤다.


아시아인이 낯선 이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의 존재에 반응했다.



나를 보며 오라고 손짓하는 모습,

나를 보며 신기하게 쳐다보는 눈짓,

무어라 말하며 서로 낄낄대는 모습,

부끄럽게 다가와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

다양한 탄자니아 사람들의 모습을 담으며 거리를 걸었다



IMG_9164.jpg?type=w3840 얼굴은 킬리만자로에서 화상을 입었다


이 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

아프리카의 한 국가 거리를 걷는다는 상상을 내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아프리카에서 여름 날씨의 크리스마스를 경험할 것을 알고 있었을까.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바나나를 사들고 타자라 기차역으로 이동했다.

개인 업무를 보느라 어느새 보딩타임이 급박한 2시 30분이 되었다.

급하게 탑승구로 뛰어가 저 멀리 보이는 열차로 이동했다.


"기차는 저녁 8시에 출발해"


저 멀리 열차는 보이는데,

사람들은 그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안내방송도 없이

6시간 연착이 된 게 이해되지 않던 나는

매표소에 가서 재차 확인을 했다.



"응 맞아. 열차는 8시에 출발해."


지연이 아무렇지 않은 듯

사과하나 없는 매표소 직원에게서

시작부터 바로 연착한 열차에게서

괜히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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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밖에서 천 원짜리 밥을 먹으며

사람들 구경하고, 멍도 때렸다.


'6시간 동안 뭐 하지..'


무언가 정리해야 할 일들이 무수하지만,

제대로 잡히는 건 없고,

집중력도 오래가지 않으며,

그렇다고 무언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여러 가지 느낌이 나를 감싸 안았다.



문득 내가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데, 서둘렀던 순간들이 생각났다


더 머물러도 되는데도

계획했으니, 계획에 맞추어 이동하려고 했던 순간들.


나는 언제나처럼 계획대로 나아가고,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을 싫어했다.

무언가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시간이 낭비된다는 느낌을 언제나 받아왔다.



머물러도 되는데,

그저 잠시 쉬어도 좋은데,

여전히 나는 달리고 싶어 했고,

멈추지 않는 엔진을 보며 안심해 왔다.



그런 엔진이 가끔 내게 독이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히려 제대로 더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언제나 미지의 순간으로, 더 빠르게 나아가고 싶어 했다.


어쩌면, 이번 타자라 열차도 내가 모시에 더 머물 수도,

잔지바르에 더 머물 수도 있었으면서도 있었으면서도 서둘러서 타자라를 타려고 했던 건 아닐까?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빨리 가려고 하는 거지?



하루하루 정신없이 보내면서 여행하다 보니,

가만히 머무르는 법을 온전히 까먹고 있었다.


머무름의 여행이 장기 여행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그저 멍도 때리고 생각도 비우고,

지금 이 순간을 돌아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정리된 거 하나 없이

그저 눈앞에 있는 것만을 갉아먹으며

온전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해 왔구나.





빈 시간이 주는 가치를 느끼면서

우연히 말이 닿은 주변 인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해가 졌다.


저녁 8시가 되어 열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3등석 사람들은 좋은 좌석을 차지하기 위해

열차가 개방되자마자 달려 들어가는 모습은

마치 부산행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었다.



'타자라 연착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무사히 저녁에라도 타게 되어 다행이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전에는 도착하겠지....?'


무사히 방 안에 들어간 뒤

여러 피로가 쌓였는지 짐을 푼 뒤에 바로 잠들었다.





#2. 연착의 연착, 하지만 함께이니 추억이야


2023.12.23



잔지바르에 머물면서 만난 한국분에게

타자라 열차에 대해서 물었다.


"타자라 열차 안에는 와이파이가 터지나요?"


그분은 웃었다.


"푸핫. 타자라 열차야. 당연히 안터지지. 뭘 기대하는 거야?"

.


그렇다.

나는 무엇을 기대한 것인가.

시작부터 6시간이 연착된 이 열차에게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오빠의 말은 온데간데없이, 마땅한 샤워시설은 없다.


GOPR1457.JPG?type=w3840 타자라 열차 복도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아침에 일어나니 7시인가 8시 즈음이었다.

밤 사이에 기차는 열심히 달렸는지

출발지로부터 이미 멀리 떠나와있다.


아침 공기를 맞으며

조금 멍을 때리고

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다.



그저 달리는 기차 안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는 행복을 느낀다.


좋다.



우연히 기차를 함께 타게 된 한국분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린 함께 아침을 먹으며 서로의 우주를 공유했고,

타자라 열차의 시간을 함께했다.


덜컹거리는 타자라 열차 소리를 자장가 삼아

중간에 달달한 낮잠에 빠졌다.



나는 다시 스르륵 잠에 들었다.

피곤이 나도 모르게 쌓여있었었는지,

타자라 열차의 포근함과

기차여행의 진수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지,

눈을 감자마자 바로 다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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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라 열차에서 시간을 보내며


열차 안에서 그저 기차 소리를 들으며 창밖을 보고,

천장을 보며 멍 때리는 이 순간이 좋다.


기차의 덜컹거림을 몸으로 느끼며

흔들리는 방 안에서,

헤드셋으로 노래를 들으며

바깥 풍경을 감상하면서

그저 멍 때리며 누워있다가

책 소절 몇 개 읽다가 스르륵 다시 잠드는 순간들.


20231225_185711.jpg?type=w3840 밤이 되어서도 계속 창밖을 바라보며


기차는 지연을 반복하며

도착 시간은 어느새 하루가 지연되었지만

덜컹거리는 낡은 열차에 어느새 마음이 편안하다는 걸 깨닫는다.


어느새 새벽 12시가 지나 크리스마스이브가 찾아왔다.


움직일 기미가 없는 열차는 탄자니아의 조그만 역에 머무른다.


아침이 되어서야 이동한다는 소식에

저 멀리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20231223_203836.jpg?type=w3840 타자라 열차 식당칸에서 저녁을 먹으며


'이렇게, 탄자니아의 작은 기차역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하는구나.'


지연된 열차는

내일이 되어서 잠비아에 도착한다.

앞을 알 수 없는 순간들.


'내가 생각한 여름 크리스마스와 전혀 다른 모습인걸!'


예상치 못한 모습의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

재밌고, 웃긴 마음에 괜히 웃음을 짓는다.






#3. 크리스마스이브의 선물 (2023.12.24)



아침 7시.


분명 아침에 출발한다는 기차는 여전히 출발하지 않고 있다.


직감적으로 이상함을 감지한 나는 직원을 찾아갔다.


"오늘 기차 출발 안 해.

사무실 가서 환불받아."



기차선로 한 곳에서 화물차가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기차는 선로 하나밖에 없기에 기차가 지날 수 없는 게 이유이다.


지연을 거듭한 열차의 결말이

신기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다.



"사고 난 지점까지 버스로 이동한 뒤에 기차를 갈아탈 수 있어"


대안을 제시한 직원의 말에

아무것도 계획된 게 없어 지장이 없는 나와 한국 동행은

버스를 선택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아침을 먹었다.


"기억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뭐야?"


"우리는 불교 집안이라 크리스마스를 챙기지 않았어.

너는?"


나는 어릴 적 아빠에게서 받은 분홍색 기타 이야기를 했다.


"내가 잘 때까지 기다린 뒤,

내 머리맡에 기타를 놓으신 거야.

아침에 일어나니 그렇게 원하던 기타가 있었는데,

보자마자 산타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어."


"한 피아니스트도 그런 말을 했어.

자기가 받은 최고의 피아노는 값비싼 피아노도 아니라고.

어릴 적 골목너머로 트럭에 타고 넘어온 중고 피아노라고 말이야.

비싼 선물을 받아도

어릴 적 순수한 마음과 설레는 마음으로 받은 선물의 기억은 잊지 못하는 거 같아.

내 크리스마스 선물은 그래서 더욱 내게 값지게 다가오는 거 같아."


우린 열차 지연이 준 시간을 이용해

정류장 뒤 시장에서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고,

멍을 때리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차 주변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기에

마치 모든 순간은 크리스마스의 선물과 같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받은 잊지 못할 선물.


오랜 기다림 끝에 사람들을 태우러 온 버스가 도착했다.


15시간 넘게 머물렀던 기차역에서 탈출해 국경으로 향했다.


시장에서 산 수박 사탕의 달달함과

버스에 울려 퍼지는 탄자니아 노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잠비아로 향하는 이 순간.

나는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하고 있다.



중간중간 기차역마다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잠비아 국경을 넘은 뒤,

열차는 계속해서 달렸다.


달리다 중간에 역에 멈추면

잠시 역 주위로 형성된 시장을 구경하고


구운 옥수수,

망고, 바나나,

각종 과자들까지

시장에서 사 온 음식을 나눠 먹었다.





오후 4시에 출발예정이지만

30분이 지나도 출발하지 않는 기차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캐럴소리와,

삐걱거리며 움직였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열차와,

창가 너머로 들려오는 귀뚜라미소리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풀내음새까지.

크리스마스이브를 타자라에서 보내게 되어,

감사하고 평화롭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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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PR1604.JPG?type=w3840
잊지못할 타자라 열차의 일몰



다시 출발을 시작한 기차는 아름다운 지평선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노래를 들으면서 갔다.

저 멀리 일출이 보인다.


"왜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오는지 알겠어."


"나도 알 거 같아.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에서만 볼 수 있는 선물이 있잖아."


노래 들으면서 그저 멍 때리는 이 순간이 참 소중하고 행복하다.

끝없이 펼쳐진 아프리카 평원과 일몰을 바라보며 말했다.


'크리스마스의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용히 기도하는 나에게 상대는 말했다.



"기차가 곡선으로 휘는 모습이 참 예쁘다."


"우리는 기차를 직선으로 생각해 왔기에,

곡선을 보면 예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게. 우리가 사람들의 반전 매력을 봐도 예쁘다고 생각하잖아."


"아프리카가 가진 반전 매력처럼(웃음)?"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만의 매력이 있구나.



칙칙폭폭,

덜컹덜컹

우린 타자라 열차가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만끽했다.





#4. 여름과 함께한 크리스마스 (2023.12.25)



잠결에도 기차의 덜컹덜컹 소리와 감각이 느껴진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차가우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저 멀리 지평선들이 펼쳐지고, 여전히 구름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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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너머 풀숲으로 가득한 공간을 바라보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기차 여행을 해봤지만, 타자라 기차가 가장 마음에 든다.

첫날부터 시작된 연착은 모든 계획을 아수라장으로 바꿔놓았지만,

그런 타자라 역시 나는 포용하고 추억으로 남길 마음이 가득하다.


연착으로 인해 하루종일 기차와 버스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일지라도,

그마저도 특별하고 선물 같은 순간이었다.


하루종일 이동하며 도착한 잠비아 루사카.

기차에서 나와 버스에 올랐다.


잠비아 루사카 곳곳에 보이는 중국식 간판과 건물, 동상이 보인다.

버스 라디오에서는 찬양 노래가 울려 퍼졌다.



"할렐루야-. 메리크리스마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the_daisy_path : 인스타그램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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