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버킷리스트 ②⑦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2)
*본 글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작성한 일기입니다. 가볍게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지난 이야기 다시 보기 ▶ 걸으면서 생각해 볼게
2023.10.13.
5시 20분 기상.
7시 10분 출발.
팜플로나의 아침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함께 출근하는 팜플로나 사람들,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고 자신의 길을 다시 떠난다.
팜플로나의 새벽은 아름답다.
주황색 불빛이 향현이 도로와 공원을 메꾸고 향연 속에서
사람들은 조깅을 하고 산책을 하며 자신의 아침을 채우고 있다.
팜플로나의 공원 속 나무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다른 이와 적당한 거리를 두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는 걷는다.
걷다 보니 조금씩 아침 해가 떠오른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걸 배경으로 하늘이 분홍빛이 든다
.
"부엔까미노(Buen Camino)*!"
아름다운 하늘에 기분이 좋아져 함께 부엔까미노로 여정을 시작한다.
*부엔까미노는 스페인어로 "좋은 길" 또는 "행운을 빕니다"라는 의미로 순례를 시작하거나 진행 중인 사람에게 격려의 의미로 "부엔까미노!"라고 인사한다.
지나가는 이와 보폭을 맞추어 걷는다.
동일한 속도와 함께 지나온 삶을 공유한다.
서로의 삶을 한참을 나누고 나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먼저 와있던 기덕오빠와 셋이서 먼저 들어가 짐을 푸고, 점심을 빠르게 먹고 씻었다.
밖에 예쁜 잔디 야외공간이 있어
그곳에서 일기 쓰고 한참 여유를 부렸다.
잔디의 물이 졸졸 흐르는 게 참 마음 안정되고 좋다.
"예진아 ~ 저녁 먹어!"
함께 장을 보고 저녁을 준비해 준 언니 오빠들.
언니 오빠 부름에 저녁 식탁에 앉았는데,
'뭐야..?
어떻게 이렇게 맛있지..?'
스페인 작은 마을에서
닭 한 마리 칼국수를 먹게 될 줄이야!
시끌시끌한 식당가에서,
한국 전통의 맛을 느끼며
문득, 내가 순례길을 실감한다.
이야기하다가 중간에 밖에 비 오는 걸 알고
다 같이 뛰어가서 옷 걷어오고,
서로 잃어버린 거 찾아주는 이 순간.
다시 오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더욱 소중하고 값지다.
함께 재희언니의 검정 팬티를 찾으며 웃던 그 순간,
비를 피해 잔디밭을 뛰어가는 그 순간.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2023.10.14. [puente la reina -> estella (20km)]
순례길이라는 길이 가져다주는 마법 때문일까,
만나지 며칠 안된 언니 오빠들이지만,
다들 친근하고 함께하면 좋다.
함께 어디까지 걸을지 고민하고,
생각을 비우고,
혹은 생각을 갖고
걷고 나서 마을에 도착하면
오늘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함께 장 보고 와서 요리하고,
먹으면서 함께 웃고,
배부른 채로 산책하고, 와서 잠들고,
다음날 아침 다시 일어나서 함께 걷고....
아직,
혹은 벌써 5일 차이지만,
이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하다.
어제 새롭게 합류한 다현 언니와 한참을 이야기하다
걸음걸이에 맞추어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걷기도 했다.
홀로 걸으면서
자연히 스치는 생각의 공간을 마련해 둔다.
공간 속으로 들어오는 어떠한 생각도 막지 않는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살 끝을 잡는다.
저 멀리서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다.
쇳소리가 땅땅 울리며 실내를 감싸고,
그 감싸진 공기를 바탕으로 조그만 불빛이 모여있는 조그만 마을들이 보인다.
그 길 옆으로 조그만 나무들이 서로를 의지해 우뚝 서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알베르게에 도착.
아직 오픈되고 전이라 함께 요가를 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사 온 음식 꾸러미를 나눠먹는다.
오늘 묵게 된 기부제 알베르게는 프랑스 부부 봉사자들로 운영되고 있었다.
잠시 낮잠을 자고 나니 저녁 6시.
이미 저녁을 완성한 언니 오빠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우린 저녁을 나누면서 한바탕 같이 웃었다.
모두들 잠든 밤 12시.
잠에 빠지기 전, 천장을 바라보며 지난날을 떠올린다.
어느덧 5일 차, 순례길에서의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고 있다.
"우리가 분명 다른 날에 출발했다면 또 다른 인연을 만나 좋은 길을 걸었겠지만,
나는 우리가 이 날에 출발해 만나게 되어, 함께 추억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행복해."
재희 언니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나 역시도 그렇다.
함께하기에 행복하고, 더욱 소중한 이 순간들.
언제나 푸짐하고 맛있는 저녁과 이야기들까지.
내일은 또 어떤 길이 펼쳐질까?
2023.10.15.
스페인에서는 해가 늦게 뜨는지,
8시가 되어도 여전히 밖은 껌껌했다.
마을 밖을 빠져나가는 다리를 건너는데 분명하고 또렷한 별들이 반짝였다.
아름다웠다.
더 걷다가 마주한 일출의 분홍빛 구름들.
우리는 아름다움에 함께 웃음을 지었다.
"우와! 언니! 구름의 비행운들이 별 같아!
일출의 분홍빛과 어우러져서 파아란 도화지 위에 수채화를 새 놓은 것 같아!"
재희 언니와 나는 하루종일 길을 함께 했다.
언니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생각에 대해서 나눴다.
언니는 뉴질랜드에서 석사를 땄지만,
앞으로 유럽에서 석사를 더 따서 유럽에서 일을 해볼 거라고 말했다.
이후에 30살 즈음이 되어 박사를 할 생각이라고 한다.
23살이지만,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며 나아가는 언니가 참 멋졌다.
언니는 좋아한다는 짱구아빠 노래를 틀면서 말했다.
"아빠는 어릴 적 돌아가셨지만,
짱구아빠 노래를 들으면서 줄곧 생각했어.
우리 아빠도 살아계셨다면, 짱구 아빠와 같은 삶을 사셨겠지.
우리 엄마도 , 우리의 부모님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그들도 우리를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한 순간들이 많았겠지."
우린 서로의 시절을 공유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스페인 한 시골마을에서 부모님을 떠올리며,
소중한 이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눈앞에 있는 소중한 이와 순간을 공유하니
눈물이 흐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꼬리 안!!! 이라며 한국인인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프랑스 할아버지,
정기적으로 순례길을 걷는 오스트레일리아 할머니,
잠시 휴식을 취하러 온 아일랜드 영화감독 청년까지.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인연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진정한 친구란 뭐라고 생각해?"
"나는 모두와 친구라고 생각해.
그러나, 진정한 친구는 다르지.
진정한 친구는,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주며
슬픈 일이 있으면 함께 슬퍼해주는 사람이지.
그리고,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야.
서로에게 성장을 주는 그런 관계말이야."
우린 서로 가치관을 묻기도 하고
남모를 속사정을 공유학도 했다.
대화 말미에 재희 언니는 내게 말했다.
"우리 예진이. 너는 무엇을 하든 잘 될 거야."
그렇게 말해준 언니가 참 고마웠다.
작은 마을에 이르러서는 우린 성당을 둘러봤다.
성당 안에서는 한 할아버지 분께서 오르간을 연주하고 계셨다.
오르간 연주를 실제로 듣는 건 정말 오랜만인데,
오랫동안 걷고 난 뒤에 잠시 쉬면서의 배경음악으로 마음이 편해지고 좋았다.
저녁으로 다 같이 둘러앉아 빠에야를 먹었다.
지난 순례길 이야기도 나누며 소회를 풀었다.
순례길에서의 삶은 매우 단순하게 돌아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걷고,
도착하면 뭐 먹을지 생각한다.
먹고 나면 잠깐 산책하고,
그리고 다시 잔다.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 없이
하루하루 이 순간을 살아간다.
순례길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지는 법을 알려준다.
더욱이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라니.
순례길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순례길을 하면서,
함께 만난 사람들 덕분에,
내가 걸어오는 길 덕분에,
아름다운 스페인의 자연과 은은한 종소리,
옅은 불빛들 덕분에,
순간순간이 참으로 소중하고, 감사하다.
저마다 각자의 인생을 갖고 살아오다가,
삶에서 잠시 쉼을 주어 스페인까지 날아온 이 사람들.
이 사람들을 스페인 작은 산골에서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함께 저녁을 먹으며 웃고,
서로의 여정을 걱정해 주는 날의 확률이 얼마나 될까?
지금 아니면, 우리가 다시 이렇게 만나게 되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고 귀하고,
그렇기에 더욱 이 순간에 충실해진다.
순례길 6일 차,
또 이렇게 스페인 작은 마을에서 10월의 밤에 녹아든다.
데이지 (신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