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버킷리스트 ②⑦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3)
*본 글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작성한 일기입니다. 가볍게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지난 이야기 (1) 걸으면서 생각해 볼게
(2) 삶에서 쉼을 주어 만난 사람들
2023.10.16.
6시 40분 기상.
오빠들의 부름에 눈을 뜬다.
아침을 생략하고 바로 출발하는데,
기덕오빠가 알베르게 밑에서 빵을 사주어 줬다.
오빠는 언제나 자신의 돈을 아끼지 않고,
남들에게 베풀어준다.
별거 아닌 빵이라고 혹자는 말할 수 있지만,
조그만 빵은 오빠의 넓은 마음을 보여준다.
7시를 넘어도 여전히 스페인의 길들은 껌껌했다.
그러나, 그 껌껌함을 우리는 이야기 나누고 웃으면서 함께 시작했다.
이야기 나누며 길을 걷기도 하고,
혼자 걸으며 노래를 듣기도 하면서 한 마을에 도착했다.
각자 마을에서 자신의 것들을 사서 광장에 모여 다 같이 먹었다.
서로 산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면서 광장 한 구석 바닥에 앉아 함께 먹었다.
오늘 머무르는 마을은 로그로뇨라는 꽤나 큰 마을이다.
그곳에서 기부제 기반으로 운영되는 교회 알베르게에 묵었다.
오늘의 알베르게는 기부제기반 작은 교회이다.
한참 하루를 마무리할 즈음 진 언니가 말했다.
"로그로뇨 성당에
미켈란젤로가 그렸다는 그림이 있대"
진 언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린
마을 중심지로 향했다.
거리는 고았다.
노랑 빛의 가로등과 스페인 사람들의 말소리,
산뜻한 공기 냄새.
그리고 기뻐하는 우리들!
우리는 예쁜 거리를 걸으며 함께 기뻐하고 사진도 찍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 기부제 알베르게에서 특별하게 진행하는 기도를 하러 갔다.
교회 식당과 기도하는 부분의 통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비밀스러운 통로를 지나 기도하는 곳에 가서 다 같이 기도문을 읊었다.
저마다 각자의 언어로 돌아가면서 기도문을 읊는다.
각자 오늘 걸음은 어땠는지
저마다의 언어로 돌아가며 하루 소회를 푼다.
성당 내부에서 느껴지는 종교적 심오함에 더해
하루를 회고하고,
그저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사실 때문일까
우린 모두 울컥함에 벅차 코를 훌쩍였다.
길고 험난한 길 위에서
순례자 정신을 배운 밤이었다.
2023.10.17.
10시 소등. 알베르게의 모든 방에 불이 꺼진다.
조금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면,
삐걱삐걱 침대가 움직인다.
오늘 하루 무엇을 해야 하며,
나는 나아가 앞으로 여행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되뇌며 일어난다.
얼마나 소중한 순간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지도 되뇐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고자 한다.
"민성이가 오늘 2층침대에서 자다가 떨어졌대"
어이없는 소식에 한바탕 웃음으로 아침식사를 가득 채운다.
어느새 하나가 된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속도로 오늘 정해진 목적지를 나누고,
각자의 속도로 가기 위해 준비가 되면 떠난다.
어느덧 순례길 8일 차,
순례길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나 되었다는 생각과
일주일도 안되어 소중하고 사람들을 만났다는 생각,
나는 나의 여행 속도에 맞추어야 하기에
언제까지 이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생각 등
여러 가지가 공존한다.
그러나, 행복하다.
"잘 잤어?"
"오늘은 몇 시간 잤어?"
"언제 잠들었어?"
아침을 먹으며 서로 잠자리 안부를 묻는 게 좋다.
"물집 잡힌 곳은 없어?"
"오늘 걸음은 힘들지 않았어?"
"걸어오면서 무슨 일 있었어?"
걸음이 끝나고 나면,
하루 일어난 일에 대해 묻고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우리.
가족처럼 함께하는 이 길이 좋다.
저마다의 속도로 길을 걸으며 각자 자신의 우주를 확장해 가는 이 길이 좋다.
특히나 오늘은 수많은 포도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언니 오빠와 몰래 훔쳐 먹는 포도는 참 달고 맛있다.
아침은 구름이 가득 낀 하늘로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 역시 나름의 매력을 가졌다.
잔잔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게 하는 매력.
오늘은 다현 언니와 함께 발걸음을 맞추어 이동했다.
다현 언니와 각자 삶에 대한 고민,
혹은 진로,
삶에 대해 가진 생각을 나눴다.
"나는 빨리 이 분야세서 성공하고 싶어."
"'빨리'는 무슨 의미야?
지금 당장 성공 하고 싶은 거야?
왜 성공하고 싶은데?"
여성으로서 촬영감독이 되는 게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현 언니는 촬영감독으로 성공을 꿈꾼다.
모두가 다 함께 순례길을 걸으며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삶을 털어놓는 이 길이기에
또 다른 풍성한 의미가 보인다.
그렇게 12km 정도를 걸었나,
한 마을에 도착해 카페에 들러 잠시 휴식을 갖는다.
중간에 만난 사람들과도 인사하고,
서로의 걸음은 어떤지,
충전기가 필요하면 서로 빌려주고,
함께 쉰다.
참, 좋다.
서로의 길 위에서 동일한 방향을 향해가는 사람들과
사소한 안부에 공감하는 이 순간들이.
참 좋다.
알베르게 도착해서는 다현 언니와 돗자리를 챙겨
알베르게 앞 잔디밭에 벌러덩 누웠다.
잠시 엽서가 쓰고 싶어 져 엽서를 챙기러 나오는데,
재희 언니가 발이 퉁퉁 부은 채로 울고 있었다.
"언니, 무슨 일이야?"
언니는 무리하게 걸어 발이 부상을 입었고,
서러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내 순례자들과 알베르게 봉사자는
붕대와 약으로 도움을 주고
걱정하고, 위로해 주었다.
나도 다현 언니와 함께
재희 언니를 쓰다듬으며 이야기 나눴다.
재희 언니가 얼마나 대단한지,
아픔에도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말했다.
장보기를 마치고 돌아온 기덕 오빠는
병원에서 일한 지식을 동원해 얼음찜질을 올렸다.
재희언니를 둘러싼 사람들은
재희 언니의 안부를 위해 있는 힘껏 노력하고 있었다.
문득 그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참, 이게 좋다.
생전 모르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공유하고,
나누고 함께 걱정해 주는 것.
함께 이 길을 오르고 있다는 그 마음이,
우리의 시간을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
이전은 햇살이 내려 나무 그늘이 여러 개 펼쳐져 있었는데,
어느덧 해가 올라갔는지 그늘은 사라지고 없었다.
스페인 거리 곳곳의 주황빛의 가로등이
오늘도 거리 곳곳을 비추며 분위기를 더한다.
문 밖의 벤치에 앉아 그저 거리의 온기를 느낀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공기가 오늘 하루를 수고했다며,
조용한 거리의 스페인 마을을 조용하게 감싼다.
2023.10.18.
재희 언니는 발목 부상으로
결국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다.
재희 언니는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
"괜찮아,
원래 우리는 다 헤어지는 거야.
나중에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거야."
언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포옹을 하고 출발했다.
비가 내리는 것에 대항해 무장을 한 뒤 걷다 보니 비가 그쳤다.
포도를 따먹으며 신나게 걷는데
은의 길처럼 비가 온 뒤로 아스팔트가 온통 은으로 덮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와~ 비가 왔기에
이런 길이 더 은처럼 반짝이네~"
뒤를 바라봐도 노란색의 일출이 선명하고 뚜렷하며
광활한 구름을 덮고 있다.
참 아름다움.
다현언니와 헤어진 뒤에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호빈 님과
걸음 내내 이야기를 나눴다.
호빈:
"저는 ‘신’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아요.
지옥과 천국의 개념을 만들어
신을 너무 사람 형상화해서 싫어요."
예진:
"신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 공감해요.
규격화되고 사람들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관습 속의 신을 믿거든요."
호빈:
"내가 에너지를 어떻게 구상하고 생각하느냐에 대해서
뭔가를 얻는 것에서 만들어내는 힘.
신이 가진, 에너지가 가진 능력을 신으로 보는 건가요?
저는 그걸 창조하는 힘이라고 봐요.
‘creator’이라는 표현을 쓰죠.
인간도 무언가를 창조해 낼 때 가장 아름다운 인간으로서 살아간다고 하죠."
호빈 님은 걷고 있는 길을 바라보며
나직이 읊었다.
"자유로운 인간은 창조력이 많다.
자유로운 인간을 창조하는데 거침이 없다.
아 -
자유롭고 싶다.
신이 되고 싶다."
호빈:
"우리는 삶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죠.
예를 들어, 다음과 같아요.
지구는 4가지 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력 청력 중력 전기, 전자기력)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이야기해요.
봄은 살짝 떠오르고
여름은 떠올랐던 게 확 커지고
가을은 모으고
겨울은 꽁꽁 더 붓는다.
우리의 삶도 같아요.
아기였을 때는 봄,
청소년기의 여름,
40~50대의 가을,
6~70 80대의 겨울이 이루어진다.
지구도 마찬가지고
태양계도 마찬가지고
우주도 마찬가지예요."
한참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나는 지금까지 여행하면서의 깨달은 것을 말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에서
사람들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느낀 게 있어요.
결국
행복이란 건 내 안에서 찾는 거예요.
가난하거나, 불우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가엽다, 불쌍하다, 불평등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결국
다 우리 스스로의 판단에서 비롯된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함께 묵을 성당에 도착했고,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니
오늘의 걸음을 축하하며 콜라를 한 잔씩 했다.
성당알베르게 안에서는 프랑스 할아버지가
한국 노래를 기타로 연주하고 있었다.
짐을 풀고 우린
오랫동안 함께 노래를 불렀다.
바게트 위에 올리브오 일을 얹고
구운 파프리카와 요구르트로 저녁을 먹은 뒤
다 함께 촛불을 들고 순례길 소감을 나누었다.
저마다 자신의 언어로
오늘 하루를 반추하며
다른 이에게 공유하면서
다현언니는 자기 소감을 이야기하며
울컥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버킷리스트였던 순례길을 하게 되어 기뻐요.
사람들이 자신이 어린 시절에 꾼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린 매번 진행되던 종이에 순례자 스탬프를 찍기보다
서로 포옹을 하며
가슴으로 도장을 찍었다.
서로서로 눈을 바라보며 웃으며
고요하지만,
마음속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는 밤이었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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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