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버킷리스트 ②⑦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1)
알베르게 침대 옆 창가가 열려있고,
그 사이로 밤공기가 들어온다.
고양이가 길거리를 지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서술하는 것,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것.
내가 좋아하는 순간이자,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방법이다.
불이 다 꺼지고,
다른 순례자들의 코골이 소리가 들려오는 알베르게 안,
헤드셋을 끼고 노래를 듣는다.
노래에 맞추어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참으로,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고,
함께 해주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본 글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작성한 일기입니다. 가볍게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지난 이야기 (1) 걸으면서 생각해 볼게
(2) 삶에서 쉼을 주어 만난 사람들
(3)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라고
2023.10.19
부스럭부스럭
순례자들이 준비 소리에. 눈뜨니 7시.
이미 아침이 준비되었다는 듯
알베르게 봉사자가 순례자들을 깨운다.
비바람 예보에 맞추어
걷기도 전에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람막이로 꽁꽁 준비를 마친 뒤, 본격적으로 오늘 여정을 출발했다.
걷기 시작한 지 몇 분 안 되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거세지는 비는
바람과 함께 완전히 세게 내렸다.
우비로 비를 뚫고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간다.
헉 헉
생각보다 쉽지 않은 우중 순례길에 숨을 헐떡였다.
어느새 홀로 걷게 된 길.
하루종일 홀로 걸으며
가빠져오는 숨소리와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맞이하는데,
비가 개기 시작했다.
우와! 무지개다!
.
한참 맑은 하늘을 즐기며 걷다가
다시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기도 했다.
추억 속 노래를 들으면서 갑자기 울컥해서 엉엉 울기도 했다.
노래가 감동적 이어서일까.
혼자서 걷는 이 길이 갑자기 물밀 듯이 밀려와 나를 감싸서일까,
정말 서럽게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중간에 멈추었다.
이거.. 비가 꽤 많이 오는데..
운동화가 벌써 왕창 젖었다.
'오늘은 그냥 다음 알베르게에서 쉬어야겠는걸..'
이제는 언니 오빠들과 헤어져 원래 더 먼 알베르게에 가려고 했으나,
비로 인해 홀딱 젖은 운동화는 내게 쉬라고 말했다.
그건, '소중한 사람들과 더 시간을 보내도록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비를 뚫고 무사히 도착하니 언니오빠는 수고했다며 반겨주었다.
이후 따뜻한 물로 씻고, 빨래도 하고, 젖은 운동화도 말렸다.
점심으로 간단히 빵을 사 먹었다고 하니 다현언니는 놀라 했다.
예산을 줄여가며 순례길을 걷고 있기에,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 나를 걱정해 주었다.
오늘 찾아간 식당도 나에게 가격이 꽤 있었고,
언니들은 나를 배려해 슈퍼마켓에서 조리 음식을 사 왔다.
스파게티, 계란을 사서 호텔 유일하게 있던 전자레인지로 조리했다.
저녁을 만들면서 부엌 창가 너머로 일몰이 지고 있었다.
하늘은 매우 아름다웠다. 마치 미켈란젤로가 그려놓은 그림을 연상시켰다.
진 언니가 말했다.
"이렇게 하늘색다운 하늘은 처음 봐.
한 번도 보지 못한 하늘색이야."
나는 대답했다.
"오늘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쳤기에 이렇게 아름답고 오묘한 일몰을 볼 수 있는 걸까?
힘든 일을 겪고 나니, 더욱 아름다움이 펼쳐지다니."
우린 오늘 순례길의 여정을 다시 떠올렸다.
비를 쫄딱 맞으며 힘들게 걸어오고 나니,
이렇게 아름다운 색깔의 향연들을 볼 수 있던 걸까.
힘듦이 있으니, 행복이 찾아오고, 감사함을 마주하는 걸까.
"우리의 인스턴트, 조미료 저녁도 꽤나 값진걸!"
식당에서 차지 못한 배를
각종 인스턴트 슈퍼마켓 요리로 채우고,
다 함께 일몰이 가져온 밤의 고요함을 나누었다.
2023.10.20.
너무 추워서 잠에서 깼다. 일어나니 새벽 4시,
너무 추워서 몸을 오므리고 잤다.
그러니, 조금 쥐가 난 듯한 느낌이 든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거실에서 다시 잠을 청하고 일어나니 6시.
껌검한 창문 너머로 부슬부슬 비바람이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늘도 단단히 각오해야겠구나.'
아침을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오늘 아침은 어땠어?'
'오늘 우리가 걷게 되는 곳은 어디지?'
소박하지만, 조그만 일상의 온기들을 나눈다.
참 작고 소중한 온기들을.
만발의 준비 후 출발!
걸으면서 비는 안 오고, 생각보다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았다.
"우리가 숲 가운데를 걷고 있어서
나무가 우리를 감싸줘서 그런가 봐."
"나무야 고마워! 사랑해!"
있는 힘껏 나무들에게 감사를 전하면서
걷고 걸었다.
자연스레 함께 출발한 진 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언니는 23살부터 골프 분야에서 일을 시작해
중간 2년만 쉬고 쭉 일을 해왔다.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는데,
계속 쭉 해오던 일이 골프였어.
알게 모르게 조바심이 있었고,
쉬지 않고 일을 계속했던 거지."
언니는 그 중간에 순례길에 오게 되어 참 좋다고 말했다.
"한국에 계속 있으면 틀 밖에서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그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 같은데,
나와서 바라보니, 그 안에 있을 내가 너무 불쌍한 거야.
결국에 나오길 잘한 거 같아.
왜냐면, 인생은 소중하니까.
내 인생은 소중하니까."
바람을 좋아한다는 진 언니,
오늘따라 유난히 세차게 부는 바람을
두 팔을 벌려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차다. 그리고, 강하다.
민성 언니, 지영 언니, 경민 오빠,
뒤이어 온 매드와 다현 언니도 합류해
우린 다 같이 산을 올랐다.
노래도 부르고 사진도 찍고,
춤도 추며 함께 흥 있게 마저 순례길을 걸었다.
함께 걸으니, 이런 재미가 있구나.
참 소중하다!
수많은 풍력발전기가 언덕에서 바람을 타고 돌아간다.
언덕 너머로 오늘의 목적지인 부르고스가 보인다.
걸으면서 우연히 매드와 함께 걸음 속도를 맞췄다.
언제나 명랑하게 미소짓던 매드는 말했다.
"오늘 우리가 걸은 코스는
많은 사람들은 그 부분을 그냥 지나치는 길이야.
누군가에게 매우 지루하고 재미없을 길이지.
그렇지만, 카미노의 모든 길이 예쁜 건 아니야.
카미노는 삶과 같아.
삶의 모든 순간이 다 아름다운 건 아니지.
만약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다면,
그건 매우 지루한 삶이 될 거야."
매드는 밝게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걷는다.
그의 미소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참 좋다.
도착 후
씻고 나서 일기를 쓰는데 알베르게 창가 너머로 빛이 들어온다.
빛이 그림자가 지기도 하고,
그냥 사라지기도 하면서 아름다운 빛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매드가 말한 말을 곱씹었다.
삶의 모든 순간이 다 아름다운 건 아니다.
그 뒤에 문장을 추가했다.
그렇기에 더욱 찬란하다.
저녁 시간이 되었다.
"순례자 메뉴가 18유로!?
나는 차라리 굶을래.."
하루 예산을 3만 원으로 책정한 나는
슈퍼 빵으로 저녁을 갈음하려고 했다.
다현 언니는 내게 말했다.
"내가 사줄게"
"어째서?"
"너는 저녁을 받을 가치가 있으니까.
오늘이 바로 그 때야.
너에게 베푸는 날말이야."
나는 언니를 보며 괜찮다고 말하지만,
언니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너를 사주는 게 아니야.
지금까지 네가 해온 것이 지불하게 만든 거야."
비바람을 맞으며 걷고,
알베르게에서도 차가운 공기에 있다 보니
곧 감기에 걸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몸이 무겁고, 얼굴이 뜨거웠다.
그러나, 다현 언니가 베푸는 저녁의 수프를 먹는 순간
온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그날 먹은 수프의 따뜻함은
언니의 말과 함께 오래도록 따뜻하게 내 마음에 남았었다.
2023.10.21.
새벽 3시, 새벽 5시, 새벽 6시. 계속 눈이 떠졌다.
담요 두 개와, 따뜻한 물병을 껴안고 잠들어
춥지는 않았지만, 감기 몸살 초기 증상을 느꼈다..
몸이 무겁다.
따뜻한 물에 의지해서 우선 숨을 쉰다.
식당을 나와 침대실로 가는데, 별이 매우 예쁘고 또렷하며 많이 떠 있다.
준비 후 언니 오빠는 나가려는데,
나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조금 쉬었다가,
해가 뜬 뒤에 가는 게 나을까?'
몸무게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옆에 있는 진 언니에게 물었다.
"그래도 오늘 14km 밖에 안 걸으니까,
후딱 걷고 가서 쉬는 거 어때?
내가 플리스 빌려줄게."
그날 하루종일 걷는 내내 아파서
한 마디도 없이 걸었다.
진 언니는 그런 나를 이해해 주고, 옆에 발걸음을 맞춰 걸었다.
걷고 또 걸어 부르고스 한 카페에 도착.
따뜻한 실내에 몸을 녹이면서 겨우내 말을 열었다.
"언니, 오늘 말동무가 되지 못해서 미안해."
따뜻한 공기를 맞으니 눈물이 왈칵 나왔다.
언니는 괜찮다며 따뜻한 우유와 샌드위치를 나누었다.
알베르게에 무사히 체크인을 하고 바로 잠들었다.
푹 잠들고 일어나니 침낭이 몸 위에 덮여있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이불대용으로 덮어주었구나.'
다현 언니는 오늘 나를 위해 샀다며 목플러를 내게 건넸다.
"예진아, 몸 아픈 건 괜찮아?"
잠에서 깬 뒤, 침대에서 내려오니 언니 오빠들은 걱정 어린 질문을 하며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고마워.
언니 오빠들이 걱정해 줘서 지금 다 나은 거 같아!"
사실이었다.
하루종일 말 한마디도 못할 듯이 아파왔지만,
옆에서 걱정해 준 언니 오빠들 덕분에
몸살이 온전히 낫는 기분이었다.
다른 이들이 보인 따뜻한 마음은
몸살의 특효약이었다.
우린 부르고스 한 식당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샹그리아가 유명하다는 곳에서 처음 샹그리아도 먹고
요구르트가 유명한 가게에서 요구르트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대성당을 함께 구경하며 부르고스 곳곳을 구경했다.
"예진아, 이거 챙겨서 먹어."
잠들기 전, 진언니는 내게 에너지바를 주었다.
오늘 하루종일 끙끙대는 내 옆에서 챙겨준 진언니.
잠들기 전까지 나를 챙겨주고, 걱정해 주어서
언니에게 사무치게 고맙고 미안했다.
걱정해 준 언니 오빠들이 있기에
감기 몸살이 심하게 들이닥친 하루여도
무사히 잘 마무리할 수 있구나.
참,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이다.
10시가 되어 알베르게 불이 꺼진다.
천장을 바라보며 길다면 길었던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이 여행의 한가운데에서,
꿈을 노래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나는 어떻게 기억할까.
나는 훗날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이 소중한 인연들이 행복하길, 두 손 모아 기도했다.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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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