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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화 Aug 11. 2022

짙은 편지

이어지지 못하는 편지

 사람 사이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해맑고 항상 웃는 낯을 띄니 나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 모두와 사이가 좋으니 내가 하는 말은 그저 인사치레나 예의상 하는 빈 말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그래서 이별할 때는 편지를 쓴다. 편지는 진중하니까. 내가 하는 말이 진심으로 닿았으면 좋겠으니까.


 습관 같은 이 편지 쓰기는, 취미도, 습관도 아니다. 편지를 주고받는 건 좋아하지만 이별할 때 쓰는 편지는 뭔가 다르다. 이별을 한다고 항상 쓰는 것도, 모두에게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별 편지를 하나의 ‘의식’처럼 생각하고 있다.

 

 오늘 퇴원했다. 이혜언니한테 편지를 써주고 싶었다.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밥친구 없는 내게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밥을 같이 먹어준 언니였다. 우리 병원은 특이하게 흡연이 가능했는데, 담배 피우러 갈 때면 꼭 나를 챙겨줬다. 이런 사소하지만 고마운 일이 많았기에 언니와 헤어지는 게 특히 아쉬웠다.


 퇴원 날짜가 잡히고, 이별할 때가 다가오자 나는 이런 진심을 담고 싶어 편지를 써주었다. 거기에는 언니의 초상화도 그렸다.

 “나중에 너 나가면 읽어볼게. 고마워.”

 언니의 담담한 말에 잠시 무서웠다. 편지를 거절한 걸까? 내가 가고 나면 버리는 건 아닐까? 왜곡된 생각이 잠길 때였다. 언니가 답장이라며 노트 한 권을 건넸다.

 “앞에 적은 게 답장이고, 나머지 빈 종이에는 너 쓰고 싶은 거 써!”


 언니가 준 노트를 펼치고 나는 울 수밖에 없었다. 병원은 시설도, 의료진도, 환우들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유독 마음에 든 언니였다. 그런 언니 앞에서는 내 걱정 안 시키고 싶었는데, 언니는 다 알고 있었다.

‘힘든 때에 너무 밝은 척 안 해도 돼.’

답장에 적힌 이 한 마디를 보고 나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해맑게 지내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원치 않아도 나눠줘야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믿음이 깨어졌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확언이었다.


 애틋한 사람과의 편지는 상투적 표현이 줄어들고 솔직한 마음으로 꽉 찬다. 내가 곡해해서 상대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오해해서 상대방과 친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편지를 받으면, 곡해했던 상대의 행동의 정답 해설지가 주어진다. 사실은 내 생각이 틀렸어. 그게 왜 틀렸냐면, 구구절절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그림이 그려진 편지를 읽다 보면 울게 된다. 내가 오해했구나. 그 귀한 마음 몰라준 미안한 마음에 운다. 내가 당신을 좋아한 만큼이나 당신도 나를 좋아해 줬구나 싶어서 고마운 마음에 운다.


 내 편지에는 이기적인 소망을 담았다. 우리가 겪은 고난이 미화되게 해 달라는 소망. 그런 기억 속에 있는 우리를 떠올리면 언니는 나를 항상 좋게 그려줄 테니까. 그래서 굳이 언니를 스토킹 하던 환우의 이야기를 넣었다. 힘든 언니가 나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단둘이 자리를 만들어 언니의 얘기를 들었다. 그 누구도 개입하지 않는 스토킹에 시달리는 언니한테 나라도 버팀목이 되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를 굳이 집어넣어서 ‘우리 그랬었지?’ 하고 웃으며 기억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너무나 이기적이라서 부끄러운 편지다.


 그럼에도 편지는 각별하다. 어쩌면 날 잊지 말아 달라는, 세상에서 가장 애절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마음은 휘발되기 마련인데 마음을 정제시켜 활자로 꾸욱, 꾹 눌러쓰면 오래도록 그 마음이 남는다. 가장 마음이 농익은 때의 감정이 담긴 편지다. 이때 편지로 쓰지 않으면 이 마음은 날아가고 다른 마음이 자리잡기 마련이다. 함께 하고 싶다는 애절함은 편지에 있다. 이별하고도 연락할 수 있고, 이별할 때보다 더 가벼워진 마음이라고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별의 순간을 지나면 사라지는 그 마음을 담아낸 것은 희귀한 것이라 더 각별히 여기게 된다. 애틋할 수밖에 없다.


 이별하기에 쓰는 편지지만 우리의 관계는 지속될 것이므로 진중하게 편지를 쓴다. 가벼운 편지는 내 진심을 의심하게 하고 헷갈리게 만드니까. 그래. 항상 해맑은 어릿광대 같은 사람의 말은 가볍고, 편지는 진지하니까. 나는 언니랑 계속 함께이고 싶으니까, 잊히고 싶지 않으니까 편지를 쓴다.


 나는 오늘 퇴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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