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해맑고 항상 웃는 낯을 띄니 나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 모두와 사이가 좋으니 내가 하는 말은 그저 인사치레나 예의상 하는 빈 말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그래서 이별할 때는 편지를 쓴다. 편지는 진중하니까. 내가 하는 말이 진심으로 닿았으면 좋겠으니까.
습관 같은 이 편지 쓰기는, 취미도, 습관도 아니다. 편지를 주고받는 건 좋아하지만 이별할 때 쓰는 편지는 뭔가 다르다. 이별을 한다고 항상 쓰는 것도, 모두에게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별 편지를 하나의 ‘의식’처럼 생각하고 있다.
오늘 퇴원했다. 이혜언니한테 편지를 써주고 싶었다.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밥친구 없는 내게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밥을 같이 먹어준 언니였다. 우리 병원은 특이하게 흡연이 가능했는데, 담배 피우러 갈 때면 꼭 나를 챙겨줬다. 이런 사소하지만 고마운 일이 많았기에 언니와 헤어지는 게 특히 아쉬웠다.
퇴원 날짜가 잡히고, 이별할 때가 다가오자 나는 이런 진심을 담고 싶어 편지를 써주었다. 거기에는 언니의 초상화도 그렸다.
“나중에 너 나가면 읽어볼게. 고마워.”
언니의 담담한 말에 잠시 무서웠다. 편지를 거절한 걸까? 내가 가고 나면 버리는 건 아닐까? 왜곡된 생각이 잠길 때였다. 언니가 답장이라며 노트 한 권을 건넸다.
“앞에 적은 게 답장이고, 나머지 빈 종이에는 너 쓰고 싶은 거 써!”
언니가 준 노트를 펼치고 나는 울 수밖에 없었다. 병원은 시설도, 의료진도, 환우들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유독 마음에 든 언니였다. 그런 언니 앞에서는 내 걱정 안 시키고 싶었는데, 언니는 다 알고 있었다.
‘힘든 때에 너무 밝은 척 안 해도 돼.’
답장에 적힌 이 한 마디를 보고 나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해맑게 지내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원치 않아도 나눠줘야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믿음이 깨어졌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확언이었다.
애틋한 사람과의 편지는 상투적 표현이 줄어들고 솔직한 마음으로 꽉 찬다. 내가 곡해해서 상대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오해해서 상대방과 친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편지를 받으면, 곡해했던 상대의 행동의 정답 해설지가 주어진다. 사실은 내 생각이 틀렸어. 그게 왜 틀렸냐면, 구구절절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그림이 그려진 편지를 읽다 보면 울게 된다. 내가 오해했구나. 그 귀한 마음 몰라준 미안한 마음에 운다. 내가 당신을 좋아한 만큼이나 당신도 나를 좋아해 줬구나 싶어서 고마운 마음에 운다.
내 편지에는 이기적인 소망을 담았다. 우리가 겪은 고난이 미화되게 해 달라는 소망. 그런 기억 속에 있는 우리를 떠올리면 언니는 나를 항상 좋게 그려줄 테니까. 그래서 굳이 언니를 스토킹 하던 환우의 이야기를 넣었다. 힘든 언니가 나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단둘이 자리를 만들어 언니의 얘기를 들었다. 그 누구도 개입하지 않는 스토킹에 시달리는 언니한테 나라도 버팀목이 되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를 굳이 집어넣어서 ‘우리 그랬었지?’ 하고 웃으며 기억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너무나 이기적이라서 부끄러운 편지다.
그럼에도 편지는 각별하다. 어쩌면 날 잊지 말아 달라는, 세상에서 가장 애절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마음은 휘발되기 마련인데 마음을 정제시켜 활자로 꾸욱, 꾹 눌러쓰면 오래도록 그 마음이 남는다. 가장 마음이 농익은 때의 감정이 담긴 편지다. 이때 편지로 쓰지 않으면 이 마음은 날아가고 다른 마음이 자리잡기 마련이다. 함께 하고 싶다는 애절함은 편지에 있다. 이별하고도 연락할 수 있고, 이별할 때보다 더 가벼워진 마음이라고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별의 순간을 지나면 사라지는 그 마음을 담아낸 것은 희귀한 것이라 더 각별히 여기게 된다. 애틋할 수밖에 없다.
이별하기에 쓰는 편지지만 우리의 관계는 지속될 것이므로 진중하게 편지를 쓴다. 가벼운 편지는 내 진심을 의심하게 하고 헷갈리게 만드니까. 그래. 항상 해맑은 어릿광대 같은 사람의 말은 가볍고, 편지는 진지하니까. 나는 언니랑 계속 함께이고 싶으니까, 잊히고 싶지 않으니까 편지를 쓴다.
나는 오늘 퇴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