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의 밤은 어둡다. 반짝이는 것은 바깥에 있다. 짙은 어둠이 찾아오면 나는, 우리는 잠을 청해야 한다. 잠이 안 오는 밤이면 어김없이 간호사를 부른다. 그러면 약을 준다.
“왜 약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먹어도 충동은 계속되고 저는 힘들어요.”
웬만하면 얌전히 약을 먹고 잠드는 나였다. 약을 먹으면 누가 때린 듯 잠을 잘 수 있지만 충동은 계속되니 꿈에서 이상한 내용으로 나왔다. 누군가에게 쫓긴다든가,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낸다거나, 그러면 공포에 질려 깨기 마련이었다. 일종의 수면 발작이었다. 계속 그런 것에 시달렸으니 먹기 싫을 만도 했다. 그렇다고 먹기 싫어하진 않았는데 왜 유독 그날은 먹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책임 지기 싫으니까 약 주고 나보고 버티라고 하는 느낌이에요. 싫어요.”
그때 간호사의 얼굴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따스한 손길이 내 등을 조용히 토닥일 뿐이었다.
병동에서 한 번도 울지 않아 쟤는 왜 입원했는지 모르겠어, 같은 소리를 듣곤 했다. 그런데도 그날은 울고 싶었다. 전담병원의 주치의 선생님도, 입원한 이 병원의 주치의 선생님도 내가 힘들다는데 오지 않았다. 나를 제일 잘 알고 나를 제일 자주 보는 선생님들이 내가 힘들다는데 오지 않았다. 방치된 느낌에 외로웠다. 안 그래도 전담병원 주치의 선생님이 나에게 입원을 권유하지 않다가 권유한 게 나를 책임지기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연락할 수 없고, 이곳의 주치의 선생님은 오지 않고, 나는 힘든데. 누군가에게는 이 힘듦을 털어놓고 싶었다.
“저희도 약 밖에 드릴 수 없어서 너무 속상해요.”
내 고개가 푹 숙여진 탓에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간호사가 말을 건넸다. 간호사는 어떻게든 나와 눈을 맞추려 했다.
“평소에 환자분이 얼마나 잘 참고 계신지 저희 간호사들은 알고 있어요. 근데 그만큼 챙겨드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 한 마디에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조용히 넘어가는 눈물에 나는 흐느낌도 없이 무기력하게 앉아있었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충동에 잠들기 힘들다는데, 선생님들의 책임의식을 논하고 있는 내 앞에서 저렇게 말을 하는 간호사에게 내가 어떻게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의사를 대신해서 나에게 사과를 하는 간호사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어리광을 그만 부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약 주세요. 먹고 잘게요.”
“괜찮으시겠어요? 약 먹고도 진정 안 되면 여기에 더 앉아있다 가도 돼요.”
약을 받아먹고는 한참 반짝이는 바깥을 바라보다 자리에 들어갔다. 그날 반짝이는 바깥을 보며 처음으로 세상과의 단절감을 느꼈다. 아, 나 정말 여기에 갇혔구나. 낮에는 환우들과 어울려 노느라 바빠서 몰랐는데, 병동은 이토록 어둡고 바깥은 저렇게나 반짝이는구나. 정말로 이곳과 바깥은 동떨어져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주치의를 기다려봤다. 정말 끝까지 오지 않을 건가 싶어서 부린 오기이기도 하다. 주치의는 끝까지 오지 않았고, 그날 나는 꿈도 꾸지 않고 잘 잤다.
지금도 자취하는 집에 혼자 누워있으면 잠이 안 오곤 한다. 간호사실 앞에서 앉아있던 날처럼 외로워서. 하지만 집에는 더이상 간호사실이 없고 찾아올 주치의도 없다. 애인은 멀리 포항에 있고, 당장 달려와줄 동네 친구는 없다. 그런 날에는 다시 간호사실을 찾아가고 싶다. 누군가 나를 책임지고 재워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조용히 유튜브에 들어가 ASMR을 검색한다. 옛날에는 말소리가 없는 ASMR을 들었는데 요즘은 말소리가 주는 존재감이 좋아 그런 류의 영상을 찾아본다. 나의 머리를 빗어주는 사람, 나를 화장해주는 사람이 내 앞에 있다고 상상하며 소리에 집중하면 어느새 잠든다. 가끔은 말소리에 잠깐 깨기도 하지만, 그 순간조차 내 옆에 누군가 있다는 느낌에 다시 안심하게 된다. 수면제로도 깊게 잠들지 못하는 내가 누군가 곁에 존재한다는 느낌만으로 잠들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내 불면의 원인은 외로움이다. 누군가 곁에 없다는 공허함. 약이 채워줄 수 없는 인간의 온기. 간호사실 앞에서 울었던 그날, 나를 다독여준 간호사의 온기를 떠올리며 오늘도 약을 먹고 ASMR을 검색하며 잠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