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다. 어제 새벽에는 세차장 속에 있는 것처럼 비가 큰 소리로 내렸다. 그렇게 퍼붓듯 내려서일까, 오늘은 햇살이 맑다. 어제의 일은 비에 씻겨 내려간 것처럼 기분이 산뜻하다.
이불을 빨았다. 빨래를 널다 문득 창 밖에 네 모습이 보인다. 허상인 줄 알았는데 진짜 너였다. 빨래는 내 마음처럼 축축하게 젖어있다. 물방울이 빨랫감에 맺힌다. 창문 사이로 햇살이 내리쬐는데 나는 그 햇살을 가로질러 너에게 갈 수 없다. 너는 나를 못 본 채 지나간다.
내 생각은 습기를 먹고 곰팡이처럼 자라난다. 마음의 벽을 따라 물드는 우울한 곰팡이. 애틋한 너와의 눅눅한 이별, 너와 함께한 퀴퀴한 추억이 번진다.
다시 밤이다. 낮동안 따사로운 햇빛에 폭 말린 이불을 덮고 잠에 든다. 내일 아침에는 눅눅하고 퀴퀴한 생각이 날아갔으면 한다. 푸른 밤하늘이 창문을 밀고 들어온다.
나의 너. 나만의 너. 나도 너에게 너만의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