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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화 Oct 20. 2022

침대의 계절

"불안해"


"여기엔 너랑 나 밖에 없어"

  그러면 나는

"그저 침대 위에 있는 거야"

  눈을 떠서 확인했다


  진짜 침대 위에 그저 있는 것인지


  나는 종종 침대를 넘고 바닥을 뚫어 그 밑까지 내려가는 걸 상상한 적이 있다. 내 몸이 무겁다기보다 무언가 내 몸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뭐 이런 증상을 '납 마비'라고 부른다는 것 같지만 이 증상의 이름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저 내 몸을 끌어당기는 이 질척한 감각이 싫었다. 차라리 이대로 이불에 폭 싸여 침잠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을 것 같았다.


  이 증상의 원인이 우울증에 의한 무기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증상이 있은 후 시간이 꽤 흐른 뒤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잘 웃고 잘 놀았다. 무엇보다 가족들은 나에게 그런 무시무시한 큰 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웃으면서도 종종 울고 싶었고, 놀면서도 꽁꽁 숨어버려 아무도 찾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나를 이렇게 좀 먹고 있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가끔. 그럴 때면 목을 졸랐다. 누군가 내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아서, 이렇게 하면 내가 불쌍해보여서라도 풀어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면 한결 나았다. 진짜 누가 내 목을 조르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니지, 나는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콩쿠르와 내신 시험, 수행평가들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한 행동은 목을 조른 게 아니라 내가 조른 목을 스스로 풀기 위해 발버둥 친 것에 불과했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정말 가끔. 연습하던 곡은 정말 밝은 곡이었다. 그 곡을 듣고 있었는데 눈물이 났다. 그 곡에 슬픈 부분이 있어서도 아니었고, 그 연주에 감동을 받아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내가 슬픈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다. 다시 목이 졸려왔다. 아, 내가 이 곡을 듣는 게 압박이었구나. 그걸 몰랐다. 목이 너무 졸리면 침도 눈물도 줄줄 샌다고 했던가. 내가 흘린 눈물은 그런 의미였다. 그만큼 궁지에 몰려 있었다는 증거.

 

  목욕을 하다 쓰러졌다. 잘 버티다 드디어 쓰러졌다. 맨몸으로 나와 119를 불러달라 요청했는데 모두가 외면했다. 나의 양육권자들이 그랬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눈 앞이 깜깜해지고 있었다. 마침내 쓰러져 눕기 전, 전화기를 잡아 119에 전화를 했다.

저기요, 제가, 숨이 안쉬어, 져서요.”

나는 아직도 이 날을 잊지 못한다. 응급실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했고 할머니는 돈지랄을 한다고 했다. 맞지, 돈지랄. 처음부터 정신과를 보냈으면 내가 이 사달낼 이유가 없었는데.

 

  이 이야기는 모두 겨울에 일어난 일이다. 춥고 외로운 계절. 정말 그랬다. 혹독한 계절이라는 표현이 나에겐 딱 맞더라. 찬 바람에 춥고, 이파리가 무성하던 나뭇가지에는 앙상한 뼈만 남아있고. 나는 젖은 상태로 홀딱 벗어 추웠고, 도와줄 사람 없어 외로운 계절이었다. 그러니 진짜 침대 위에 누워만 있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은 내게 중요한 일이다. 아, 내가 아직 침대 속에 파묻히지 않았구나. 이 행성 내핵 속으로 떨어지지 않았구나. 그저 침대 위에서 부유하고 있구나. 그걸 안다는 것은 내 상태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찬 바람이 몰아친다.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발가락이 옴지락거린다. 그래,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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