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승주 작가 Jan 22. 2018

독서는 작가와 독자의 끊임없는 대화


독자의 야심


독서는 저자와 독자의 끊임없는 대화


책을 처음 읽을 때는 글쓴이의 깊은 성찰을 파악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계속 책을 읽고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글쓴이가 미처 성찰하지 못한 부분까지 알게 되니 안타까우면서 과제를 하나 받은 느낌이 듭니다. 결국 책을 읽는다는 것은 활자에 검게 찍힌 잉크를 딛고, 활자에 찍히지 않은 백지를 향해 날아가는 행위입니다. 백지에는 나의 생각을 씁니다. 나의 정신을 살찌워준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의 생각에 힘입어 드디어 나의 말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어떻게 하면 작가의 생각을 딛고 날아갈 수 있을까요? 얼핏 생각해도 한 번 보는 것만으로는 원소스를 넘지는 못할 것 같죠? 나의 것으로 만들 때까지 읽어야죠. 저는 저를 일깨워주는 반가운 작가를 만날 때면 작가가 이 책을 쓰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합니다. 예컨대 <에티카>는 글쓴이 스피노자가 평생 안경 렌즈를 만들고 다듬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 평생 동안 썼던 책입니다. 렌즈를 다듬는 일은 시간 대비 단가가 꽤 큰 노동이었습니다. 결코 천한 일이 아니었죠. 스피노자가 이 직업을 선택한 까닭은 반드시 노동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스스로에게 적용한 것과 '집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에티카>를 메모하면서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초조한 마음이 들 때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지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쏟았을 시간에 비하면 나는 '무임승차'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저는 초조해하는 스스로를 달래며 천천히 위대한 작가들의 책을 하나씩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작가를 내것으로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천천히'입니다. '천천히'를 구체화하는 방법은 누구나 다르지만, 이 원칙을 버리고 '빨리'를 선택하는 한 결코 작가의 영혼이 독자의 가슴에 닿지 않습니다.


당신은 빨리 읽고 있나요, 천천히 읽고 있나요?



나는 작가의 공동저자, 혹은 주석가다


작가의 생각을 내것으로 삼는 것만으로 나는 작가라는 '알'을 깨고 나올 수 없습니다. 작가와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나의 언어를 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처음 책을 읽을 때 나는 작가의 제자였지만, 책 읽기를 거듭하면서 나는 작가의 동료이거나 파트너, 그리고 든든한 후원자로 변신합니다.


독자가 작가와의 관계를 점점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작가의 말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끊임없이 댓글을 달아야 합니다. 물론 작가는 말이 없지만, 내가 작가의 역할을 대신해서 나에게 대답하고 질문하고 토론을 던질 수 있습니다. 마치 혼자 장기나 체스를 두는 것처럼.


예를 들어 요즘 재미 있게 읽고 있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읽으면서 제가 덧붙인 코멘트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리理와 기氣'로 한국 사회를 해석하고 있는 사회 분석서입니다. 한국 철학을 착실히 공부한 일본 학자 오구라 기조가 철학적으로 접근하였기에 매우 뛰어난 분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숨겨져 있던 맥락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은 분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국인이 고향처럼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의 공동체이다. 또한 그것은 한국의 내셔널리즘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우리' 속에 북한을 넣을지 말지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대립하는 중이다. '우리' 속에 북한을 넣지 않으면, 그 내셔널리즘은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에 대해서만 발양된다. '우리' 속에 북한을 넣으면, 그 내셔널리즘은 국가라기보다는 오히려 민족에 관한 것이 된다. '우리'의 지나친 강조가 배타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반성하는 '우리주의' 비판도 때때로 듣게 된다. 그러나 배타적인 '우리' 없이 '한국인'이 성립할 수 있는지 커다란 의문이다. - 오구라 기조, 《한국은 하나의 철학인다》


저는 이 구절에 대해서 짧게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셔널리즘과 우리, 우리 민족끼리


 '우리민족끼리'는 북한의 대외선전용 매체입니다. 그리고 최근 북한 지도자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을 사용했죠.


[김정은 신년사]김정은 “우리 민족끼리 북남관계 출로 과감하게 열어나가야”


내셔널리즘과 민족주의, 그리고 세계시민으로서의 보편주의. 이 세 가지는 저마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오구라 기조가 가지고 있는 '배타성'은 쉽게 비판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죠. 실제로 현실에서 끊임없이 사용되고 있기에 저는 북한이 자주 사용하는 개념을 덧붙여서 코멘트를 단 것입니다. 오구라 기조는 북한까지 염두에 두고 '우리'라는 개념을 사용했지만 저는 북한의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덧붙여 놓았습니다. 최근 우리은행 달력 사건에서 보듯 한국 내 극우세력은 내셔널리즘을 무기로 이 사건을 지지층 결합의 호기로 삼고 있죠. 북한은 남한을 잣대로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배타성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를 수단 또는 타자로 삼고 힘을 키우려는 의도도 담겨 있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구라 기조의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저의 생각을 덧붙이고 짧게 코멘트를 하면 '나의 언어'가 조금씩 기지개를 켤 수 있습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사상은 계승한 충실한 아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작가가 책을 쓰면서 독자에게 담고 싶은 마음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대를 진지하게 고찰한 이 책을 통해서 독자인 너는 너의 시대를 고찰하고, 우리 힘의 합으로 미래를 열어라!

저는 이것이 작가의 명령이자 독자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와 독자의 공동작업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