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은 논조와 맥락 없이 읽을 때 생긴다
안녕하세요. 난독증이 있는 회사원입니다. 한국 교육은 수능 언어영역 외에는 읽기능력을 엄청나게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학교에 와서 느끼게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성적 다 최상위인데(자랑이 아니라 심각성을 강조하고 싶어서입니다 ㅠㅠㅠ대학교 성적은 리딩이 많이 없는 과목들을 잘 한 것 같아요.. ) 저는 긴 글 읽기를 어려워합니다. 한마디로 독해력이 매우 떨어집니다.
믿기지 않으실 지 모르겠지만 저도 난독증이 심합니다. 챙길 책을 바꿔 가져가서 사용하지 못한 건 약과고요. 난독증 때문에 낭패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난독 증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좀 심한 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정말 중요한 내용을 난독해서 yes를 no로 만들어버리면 어쩌나 하고요. 결과적으로 말씀드리면 이제는 독서 난독증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메모 독서와 데이터 독서 덕분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진 않습니다. 제 독서 난독증을 줄여준 방법이긴 하지만 어떤 과정으로 난독을 이겨내는지 파악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그 과정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제주의 시골 지역 중학교 두 군데에서 1학년을 대상으로 2학기 동안 '그림책 리터러시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원래 문해력, 요약하기, 토론하기, 글쓰기를 다채롭게 하려고 계획했지만, 뜻 밖의 장벽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의 문해력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낮았습니다. 독해력이 약할 것이라 예상해 '그림책'으로 교재를 낮췄는데 초반에는 이조차도 소화가 잘 안 되었습니다.
그림책을 천천히 한 페이지씩 읽으면서 간간히 많은 질문들을 넣었습니다.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을 집중적으로 했습니다. 등장인물이 왜 이런 행동을 했고,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낱말은 무엇인지 등등 질문공세에 아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2~3개월 정도 이런 훈련을 했더니 그림책을 볼 때 어떤 장면에 집중해야 하고, 포인트를 어떻게 짚어야 하는지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질문을 던졌을 때 대답하는 비율이 꽤 늘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글쓰기 수업'을 몇 차례 하지 못헀다는 것입니다. 글쓰기를 많이 해야 중학생들의 생각을 모을 수 있고, 중학생다운 글쓰기를 위해서 분석작업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읽기'라는 기초 단계를 넘어갔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열쇳말 찾기 훈련과 열쇳말 연결해서 요약문 작성 훈련, 질문에 답하기 훈련 등을 반복해서 물었습니다. 양식을 채우게 하고, 큰 화면에서 함께 채우는 연습을 했더니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열쇳말을 제시할 때는 왜 그것이 열쇳말인지 근거를 대게 했습니다. 처음 아이들은 정답을 내야 한다고 착각했는지 답을 못하다가 한두 사람이 되도 않는 이유를 대고 제가 논리 근거를 보완해주니 감을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문장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단순히 찾기만 하는 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객관식 교육과 다를 바 없지만, '근거 대기' 훈련을 하면 그것은 문해력 훈련이자 리터러시 훈련이 됩니다. 자신이 적절한 근거를 대기만 하면 열쇳말로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신는 것처럼 중학생 문해력 훈련은 '메모 독서'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림책과 질문을 바꾼다고 하더라도 열쇳말을 찾는 훈련, 열쇳말을 연결해서 요약문을 작성하다 보면 어떤 글이든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건물의 골조는 비슷하되 외장재가 다를 뿐인 것처럼 어떤 글도 골조의 형태는 유사합니다. 만약 어떤 글을 읽으면서 골조를 찾아낼 수 있다면 난독이 상당히 억제될 수 있습니다. 신문으로 따지면 '논조'에 해당할 것입니다. 조선일보가 갑자기 진보적인 정책을 지지할 수 없을 것이고, 경향/한겨레/시사in 등이 갑자기 극우 보수적인 논조를 보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메모 독서가 어떻게 난독 증세를 억제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중요한 책을 읽을 때 메모를 합니다. 메모를 하면서도 난독증을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거의 대부분 잘못 읽은 부분을 찾아냅니다. 메모를 하면서 작가의 핵심 논리를 파악해 두었기 때문에 특정 문장이 핵심 구절과 정반대의 논졸를 보이면 해당 문장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사랑을 하는'을 '사랑을 받는'이라고 잘못 쓴 부분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만약 책 전체의 논리가 '사랑을 하는'을 지지하는 것이라면 이상하지 않지만, '사랑을 받는'을 지지하는데 반대로 쓴 경우라면 마치 알람이 울리듯 의아한 느낌이 듭니다.
드라마를 볼 때 다음 장면을 예상하면서 보고, 퀴즈처럼 주인공의 다음 대사를 예견하는 것은 한국 드라마의 구조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가 이럴 진대 글은 어떻겠습니까? 저는 난독이란 글의 전체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어휘에 의존해서 독서할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증상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니까 나의 독서가 특정 어휘에 의존해야 할 정도의 수준인지, 문맥과 전체 흐름을 고려하는 수준인지에 따라서 난독의 정도가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나의 독서력을 높이는 것이 난독을 자연스럽게 치유하는 지름길입니다.
마지막으로 '감각'도 난독과 연관돼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각 중에서 가장 사기를 잘 당하는 감각은 '시각'입니다. 시각보다는 청각이 더욱 스마트하고, 촉각은 모든 감각을 총괄하는 장군 감각입니다. 촉각과 청각을 활용하여 독서를 하면 난독을 상당히 억제할 수 있다는 말이 되죠. 뒤집어 이야기하면 '시각'에만 의존하는 독서는 난독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메모 독서는 '촉각'을 많이 사용합니다. 눈으로 읽는 것과 손으로 읽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메모 독서는 촉각과 시각을 모두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원 높은 독서 방법입니다.
글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어휘(열쇳말)를 찾고 근거 대기 훈련을 하면 난독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글의 핵심 논조(또는 골조)를 파악하면서 특정 어휘에 의존하는 경향을 줄이면 난독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시각에만 의존하는 독서 대신 메모 독서처럼 촉각과 시각을 동시에 쓰면 난독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 매거진 메모 독서 20년에 관심을 주시는 분들을 위해 조그만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엑셀에 하는 데이터 독서에 관심이 있거나, 샘플파일을 받고 싶은 분들은 댓글에 메일 주소를 입력해 주세요. 또는dajak97@hanmail.net 이메일로 문의 바랍니다. (사연을 함께 적어주시면 매거진 에 반영할게요. 함께 고민을 해결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