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과 무의식의 협업인 글쓰기, 그 한가운데 있는 메모
저도 선생님이 조언하신것처럼 엑셀에 매일 읽는 성경읽기와 관련해서 기록을 조금씩 하고 있는데요. 과연 독서의 질이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 경기도의 한 독자님
저도 이 분처럼 논어나 경서, 인문고전을 또박또박 메모하고 틈틈이 코멘트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장이나 생각에 대한 내 최초의 해석인 셈인데요. 놀라운 점은 해석도 하나의 생명이기에 성장한다는 점입니다. 메모를 다음에 보면 이전의 메모가 생각의 출발이 되고, 다음에 보면 또 그 지점이 생각의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양화> 편의 한 구절을 저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면 덕 있는 사람의 말을 버리는 것이다."(논어 양화편)
♡ 나의 해석 : 무비판적인 수용은 범죄다.
유명한 도청도설입니다. 이렇게 써두고 몇 번 읽으면 나의 무의식은 그 다음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물이 흘러가다가 파인 홈을 만나면 일사불란하게 흘러가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말을 들으면 퍼뜨리는 게 맞는데 왜 이 좋은 걸 하지 말라고 한 걸까요? 말한 사람이 고민 끝에 얻어낸 좋은 말은 당장 듣는 사람의 좋은 말이 될 수 없고, 듣는 사람 역시 자신의 좋은 말로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이것이 바로 좋은 말이 전해지는 방식이죠. 좋은 말이 나쁜 사람에게 가면 당장 나쁜 말로 둔갑합니다.
저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접했던 말을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반복하는 앵무새 같은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분들이 자신에 차서 신나게 이야기하면 주변에 있는 분들은 옳은 말로 착각합니다. 저도 모르게 좀비PC가 되어 여론조작의 디도스 공격에 이용되는 줄도 모르고. 주변에 있는 분들은 대개 순진한 분들이니까 퍼뜨리진 못하지만 동조합니다. 이렇게 여론이 가랑비이 옷 젖듯 조작됩니다.
방송사들에서 조잡한 내용을 가지고 동네 시장 양말장수 아저씨처럼 쉴틈없이 떠들면 지나가다 얼핏 들은 사람에게 쏙 박힙니다. 가끔 저런 황당한 이야기를 진짜 믿는 사람이 있을까 어이 없을 때가 있지만 그건 안일한 생각입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에게 그와 똑같은 이야기를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해서 들은 뒤에야 이게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메모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도청도설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저는 메모를 한 것 중에서 제가 글에 쓸 내용과 관련된 것은 빨간 볼펜으로 ○표시를 해둡니다. 그러고 한참 기다리죠. 성급히 쓰려고 하면 글을 망친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이 열심히 작업해서 숙성이 되면 그걸 가지고 요리를 하듯 글을 이어갑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글쓰기는 의식과 무의식의 협업이다
메모는 의식이 시작하지만, 마무리는 무의식이 관여합니다. 그러니까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메모가 있는 셈입니다. 메모를 생각의 계단으로 삼아서 자주 들여다보세요. 계단이 무르면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 매거진 메모 독서 20년에 관심을 주시는 분들을 위해 조그만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엑셀에 하는 데이터 독서에 관심이 있거나, 샘플파일을 받고 싶은 분들은 댓글에 메일 주소를 입력해 주세요. 또는dajak97@hanmail.net 이메일로 문의 바랍니다. (사연을 함께 적어주시면 매거진 에 반영할게요. 함께 고민을 해결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