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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Jan 25. 2018

20년 전의 독서 메모가 20년 후의 메모에게

오래 전 썼던 메모와 잡담하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났 것처럼 반갑죠.

최규석 만화 《대한민국 원주민》에서 화자가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도 오래된 메모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겨울이라서 노란색을 샀다"니요.


대학교 학과 홍보 전단이 철학적이죠?

메모는 대부분 인용문과 낱말 사전 같은 것들이지만 그 당시에 무엇에 관심이 있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20년 전에 저는 러시아 문학에 심취했어요. 권총대결로 죽은 뿌쉬낀의 이야기는 스무 살 문학청년에겐 충격적이었던 것 같아요. 뿌쉬낀이 오발탄에 맞아 죽다니. 당시 권총대결은 대부분 허세여서 실제 죽음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던데 뿌쉬낀은 로또 맞아 죽었다고 해야 할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손자병법을 부지런히 읽은 기억이 납니다. 대학생 남자들은 당시 세계대전사 등 전쟁사나 은하영웅전설 같은 전쟁 문학작품을 많이 읽었어요. 히틀러를 우상으로 여겨서 학자 수준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봤어요. 저는 클라우비츠 책에서 특히 전쟁이 정치의 일부라는 생각은 당시 큰 인상을  주었고, 정치가 무엇인지 관심을 갖게 되었죠.


당시 썼던 시도 있네요. 옛날 시인들처럼 한자를 섞어 썼네요. 기형도 느낌도 많이 나고. 지금 생각하면 겉멋 쩔어서 민망하지만 무슨 고민을 했는지 보이네요. 제주의 무거운 역사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래된 독서 메모는 두 가지 역사적 가치가 있다


제 메모를 보면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읽었던 책에 대한 코멘트가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 싶었어요. 당시 읽었던 책 자체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읽고 있는 책에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또래 집단의 생각, 그리고 그 사람의 감정을 말해줍니다. 제가 독서메모장에 반드시 읽은 날짜를 첫 번째로 쓰는 것도 이 때문이죠.


그리고 책에 대한 코멘트는 그 사람의 생각이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20년 후의 제가 다시 읽게 될 그 날을 위해서 책에 대한 저의 느낌들을 많이 써놓으려고 합니다. 20년 전의 아쉬움을 알았으니까요.


책에 대한 메모는 생각의 정류장입니다. 책의 어떤 부분을 메모하는 것은 독자의 생각이 작가의 생각과 같다는 동의의 표현이고, 거기 남기는 코멘트는 동의하는 이유 또는 배경을 설명해놓은 것이니까요. 이 생각의 정류장에 힘 입어 우리는 다른 동네로 갈 수도 있죠. 운이 좋으면 생각의 정류장은 버스터미널이 될 수도 있고, 공항이 될 수도 있고, 우주 정거장이 될 수도 있죠.


독서 메모는 10년이나 20년쯤 후에 다시 읽게 될 나에게 말걸기입니다.


 매거진 메모 독서 20년에 관심을 주시는 분들을 위해 조그만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엑셀에 하는 데이터 독서에 관심이 있거나, 샘플파일을 받고 싶은 분들은 댓글에 메일 주소를 입력해 주세요. 또는dajak97@hanmail.net 이메일로 문의 바랍니다. (사연을 함께 적어주시면 매거진 에 반영할게요. 함께 고민을 해결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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