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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Feb 01. 2018

나의 독서 파트너 엑셀을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데이터가 아니라 '자기화된 데이터'


마이크로소프트의 대표적인 오피스 프로그램 중 하나인 Excel은 표나 장부 정리, 수식 계산을 위해서 나온 프로그램이지만 뜻 밖에도 드로잉 기능이 제공되죠. 타츠오 호리우치(일본) 씨는 이 프로그램을 이용한 회화 작업을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돈도 없고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란 엑셀뿐이었다고 합니다. 독서메모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욕심이 생깁니다. 저의 경우 데이터 독서로 이어졌습니다. 인간의 독서 경험은 소중한 데이터이기에 분산시키기보다 살뜰히 모아야 가치가 있는 거니까요. 엑셀 데이터 독서의 장점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1. 한글은 흩어지지만 엑셀은 흩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한글로 독서 메모를 입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서대를 놓고 인상적인 부분을 보면서 치는 수준이었습니다. 아래 캡쳐가 한글 파일 모음입니다. 한글 파일도 여러 개여서 흩어지더군요. 흩어지지 않고 모을 수 있는 거 없을까 고민 끝에 엑셀이 떠올랐습니다.

독서 내용을 확인하려면 파일을 일일이 열어봐야 합니다. 요즘은 은근히 한글파일 없는 곳도 많아서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위 캡쳐처럼 엑셀은 새로운 시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시트를 무한대로 만들 수 있고 이동할 수도 복사할 수도 있죠. 파일을 오래 다루다 보면 가장 많이 쓰는 파일을 맨 왼쪽에 밀어넣고 사용 빈도수에 따라 왼쪽에 가깝게 만들어놓으면 다른 파일 만들 것 없이 엑셀파일 하나만 가지고 독서 데이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엑셀의 장점은 이것뿐 아닙니다.


2. 엑셀 검색은 보통 검색과 다르다


보통 검색이라고 하면 구글 검색이나 네이버 검색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엑셀에서 사용하는 검색은 그런 검색과는 다릅니다. 엑셀에 입력된 데이터는 모두 생체 데이터(Biometric data)에 속합니다. 개인의 성별과 인종, 건강에 관한 세부 정보 등을 생체정보라고 하는데 책을 읽고 메모를 한 것 역시 생체정보라고 할 수 있고,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했기 때문에 생체데이터입니다. 그러니까 생체데이터 내에서 내가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는 것이죠. 이 과정을 반복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져요. 내가 읽었던 독서 경험을 매일 매일 새롭게 만날 수 있습니다. 검색을 하다 보면 어제 읽었던 책, 지난 달에 읽었던 책, 5년 전에 읽었던 책들의 문장이 떠오릅니다. 이 문장을 보면 머리에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이게 그 때 그 노래라도 그렇지.  
달랑 한 곡 들었을 뿐인데도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 장기하, <그 때 그 노래> 가사


기억과 느낌, 감정이라는 건 신기한 물건입니다. 마치 벌꿀처럼 영원히 사라지지 않죠. 잠시 보자기에 덮여 있다가 펼치는 순간 생생한 모습을 드러내죠. 이것이 바로 생체 데이터가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책을 읽었던 내용을 엑셀파일에 마구 집어넣고 싶어져요. 사람은 좀더 완벽하고 수준 높은 정보를 만들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거든요. 나아지고 싶은 욕구를 마구 자극했기에 데이터 독서 파일의 용량은 점점 커지고, 나의 독서 경험은 저수지에 오롯이 모입니다. 짤막하게 요약하면 이와 같습니다.


포털 검색은 할수록 내가 작아지지만, 엑셀 검색은 할수록 내가 커진다. 검색 과정에서 '남의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3. 엑셀 데이터는 글을 쓸 때 위력을 드러낸다


맨 위의 사진은 독서메모에 표시해둔 모습입니다. 두 번째 사진은 엑셀에 내용을 입력한 '전체본'입니다. 세 번째는 코멘트만 따로 표시해둔 '간편본'입니다. 책만 읽을 때는 '간편본'은 불필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마 글을 쓸 때는 간편본을 많이 보게 됩니다. 어떤 문헌을 인용해야 하고 글감으로 사용해야 하는지 검토하기 위해서는 저 긴 인용문이 가독성을 방해하거든요.


오늘 저의 '영업 비밀'을 다 공개하는 셈인데요. 위의 그림처럼 "공자는 동양사람만 존경했나요?"라는 글감에 760, 780, 781, 782번이 표시돼 있고, "정치개혁가"에는 788, 790, 791, 786번이 표시돼 있습니다. 이 번호는 인용 항목의 번호입니다. 전체본이든 간편본이든 이 번호는 절대 바꾸지 않습니다. 실제 글을 쓸 때 번호를 찾아가면 수월하게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책 제목과 글쓴이, 발행년도 등 간단한 서지정보를 표시한 것 역시 문헌근거를 분명하게 만들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 3번 주제는 독서를 시작하시는 분께는 어려울 수 있어서 집어넣을까 말까 하다가 논문이나 책을 집필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포함시켰습니다.



4. 엑셀로 할 수 있는 독서의 다양한 활동들



엑셀 검색은 '텍스트 필터' 기능으로 표현됩니다. 텍스트 필터만 잘 써도 독서와 글쓰기가 훨씬 나아질 수 있습니다. 맨 위 항목 표시 부분을 블럭 지정한 후 오른쪽 상단 필터를 지정하면 텍스트 필터 가능해집니다. 검색을 할 때는 필터를 지정했던 인용문 항목에 커서를 대고 Alt 키를 누른 상태에서 ↓를 누르면 텍스트 필터 명령키가 보입니다.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실제 해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작성의 번거로움은 있지만 일단 독서 히스토리를 작성해 두면 나의 지나온 시간들이 자랑스럽게 느껴져서 자존감 또한 올라갑니다. 


끝으로 독서 히스토리와 나만의 낱말사전을 소개합니다. 그 사람이 무슨 책을 읽었는가는 인간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정보입니다. 혹시 자신이 위대한 인물이 되어 후세의 학자들이 나를 연구할 때 무슨 책을 읽었는지를 표시해 둔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국어국문학과 수업받을 때 '작가론'을 배웠어요. 작품론은 작품만 분석하지만 작가론은 작가에 대한 아주 잡다한 정보까지 다루는 분야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해서 독서 히스토리를 잘 정리해두세요. 저도 최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만의 낱말사전은 낱말의 뜻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에 그 낱말이 나왔고 어떤 예문 속에서 나왔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떤 문맥에서 이 낱말을 사용하는지를 알아야 제가 실생활에서 써먹을 수 있더라고요. 나만의 낱말사전을 만든 후로는 사전 찾는 습관이 잡혔습니다. 지갑에 돈이 쌓이듯 낱말사전에 낱말이 쌓이는 모습이 참 뿌듯하거든요. 


작고한 소설가 김소진은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실 엑셀 데이터 아이디어는 김소진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든 경험은 '자기화'한 것에 한해서 재창조될 수 있는 거니까요. 엑셀을 당신의 독서 파트너로 두면 어떨까요? 엑셀과 함께 나이를 먹고 내면이 성장한다는 이 좋은 기분을 당신도 맛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세히 소개하다 보니 긴글이 되어 버렸네요. 최근 제 브런치에 댓글 많이 달아주시고, 메일로 독서파일 요청해주신 분들께 이 글을 빌려 깊은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 매거진 메모 독서 20년에 관심을 주시는 분들을 위해 조그만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엑셀에 하는 데이터 독서에 관심이 있거나, 샘플파일을 받고 싶은 분들은 댓글에 메일 주소를 입력해 주세요. 또는dajak97@hanmail.net 이메일로 문의 바랍니다. (사연을 함께 적어주시면 매거진 에 반영할게요. 함께 고민을 해결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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