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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논어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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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Nov 16. 2018

빨래 때문에 생긴 일

빨래와 설거지는 내 생각의 밑천이다

오늘 밤 밀린 종이덩어리를 버리며

약간 축축한 빨래를 만져보며 약간 찡그렸다

일단 걷자!

아침 이슬을 한 번 더 맞아도 햇볕으로 말리면 되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새벽 빗소리를 들으니 내 마음에 해가 하나 떴다.

빨래가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어제도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빨래를 걷지 않았다. 

'피일시 차일시'가 생각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걸까?




맹자가 제나라를 떠났다. 충우는 맹자의 행렬을 길에서 붙잡고 물었다. 선생께서는 표정이 몹시 불쾌해 보이십니다. 예전에는 저에게 '군자는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을 허물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彼一時, 此一時也) 『맹자』「공손추 하」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면서 치밀었던 울화가 표정에 드러난 것은 분명 예전의 입장과는 다르다. 제나라는 거의 통일 직전에 와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하학궁'이라는 말로 알 있듯 전국시대 당시 제나라는 모든 나라의 희망이었다. 직하학궁은 제나라가 중국 전역의 학자들을 초청해서 매일같이 학술대회를 열던 중국판 아카데미의 이름이다. 유학의 대학자 순자는 직하학궁에서 두 번이나 대표 격인 '죄주'를 지냈다. 진나라와 맞설 수 있는 가장 중국적인 국가라는 믿음이 있었다. 맹자는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제나라를 떠나며 표정이 아주 안 좋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양 최고(最古)의 유물론자 순자


어제 빨래를 걷지 않고 오늘은 비 오기 직전에 빨래를 걷은 이유는 내 의지 너머의 안 좋았던 감정이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마치 별빛을 보고 배를 움직이는 것처럼. 빨래를 걷지 않고 비가 와서 세탁기를 다시 돌려야 하는 상황을 몇 번 맞은 적이 있다. 그때 나의 표정은 아마 맹자의 표정이었을 것이다. 그 경험과 기분이 비 올 낌새를 알려준 것이 아닐까? 


빨래와 설거지는 내 생각의 밑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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