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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Nov 26. 2018

수능 끝난 수험생에게 추천하는 책 7권

객관식의 세계에서 진짜 세상으로

왜 미혹인가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객관식 훈련입니다. 세상은 객관식이 될 수 없죠. 이제까지는 답이 하나여야 하는 세계를 보았다면, 이제부터는 답이 여러 개이거나 아예 답이 없는 미혹의 세계를 구경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미혹의 책 7권을 정했습니다.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집 <라쇼몬>


라쇼몬은 에도 시대 수도의 대문, 우리나라로 따지면 '남대문' 정도 되는 문입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과 제목이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스토리는 <덤불 속>이라는 단편소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살인사건의 용의자들의 증언이 저마다 다르고 진실은 미궁속으로 빠지며 독자는 미혹에 빠집니다. 만약 미혹이라는 대문을 활짝 열어보고 싶다면 인생의 미혹을 탐구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집을 권합니다. 일본에서는 유명한 순수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이 있는데, 그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암흑과 감춰진 암흑이라는 두 개의 암흑은 잔인한 거울처럼 나를 비춥니다. 온갖 편견을 볼 수 있는 마법의 거울이 <암흑의 핵심>입니다.


유럽 제국주의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작품 <암흑의 핵심>을 보면 문명을 가장한 착취와 빛을 가장한 어둠의 핵심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해를 정면으로 응시하다가 눈이 멀 뻔했습니다. 5분 동안 주변이 까맣게 타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그 때의 경험이 갑자기 떠오른 작품입니다. 아프리카의 미개한 인간들을 문명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귀부인의 연설은 부르카로부터 중동 여성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며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미국의 페미니스트를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가 안일하게 믿고 있었던 상식을 모조리 부서버리는 작품입니다.



영화 <몬스터콜>에서 주인공을 괴롭히던 친구는 '이제야 너란 놈을 알겠어. 오늘부터 투명인간으로 대해주지'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진 주인공의 폭풍 주먹 공격. 투명인간은 분노입니다


왜 이 사람은 투명인간이 되었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의 이름은 아닙니다. 욕하고 부수고 난동 피우다가 결국 맞아서 죽는 허무한 투명인간 이야기. 책을 읽고 나면 세상으로부터 투명인간이 된 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나는 투명인간이 아닐까요? 나를 투명인간으로 취급하는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서 복수의 폭풍 주먹을 휘두르고 싶을 때 <투명인간>을 읽어보세요. 그 기분을 알아주는 책이거든요.



책을 펼쳤을 때 다 읽을 때까지 멈출 수 없었습니다. 내 생전 이렇게 몰입도가 강한 책은 처음 봤어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인간의 선과 악을 스위치처럼 제어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 해 본 적 있나요? 기분 나쁜 사람을 만나면 악마 스위치를 눌러서 놀라게 해주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천사 스위치를 100번 눌러서 사랑받고 싶은 마음. 지킬 박사는 사회적 명성과 권위, 부를 모두 이룬 사람이지만 내면의 악을 맘대로 조종하고 싶은 욕망을 과학 연구에 적용하는 파격적인 캐릭터입니다. 선과 악, 인간의 욕망을 이보다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소설이 또 있을까요? 결론은 이제까지 하던 대로 하라는 거죠. 하지만 선을 넘는 인간의 욕망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매혹적이고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관광 열차에 올라타고 싶은 사람은 <파우스트>를 읽을 것!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의 지킬 박사처럼 파우스트 박사도 모든 걸 이룬 교수입니다. 말년에 매너리즘과 우울증에 빠져서 허무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찰나 하느님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약이 성사됩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악마이지만 마치 하느님에게 고용된 악마처럼 단순한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평소에는 너무나 예의바르고 친절한 변호사가 기업을 위해서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방법을 조언하고, 죽음의 수용소에서 효율적으로 수용자를 학살하는 방법을 연구하거나 실무를 맡는 아이히만 같은 사람도 집에서는 좋은 아빠로 살아갑니다. 악마가 디테일에 있다는 말은 메피스토펠레스를 두고 하는 말이겠죠. 흑백논리와 이분법, 객관식의 세계가 지겹다면 <파우스트>로 디테일을 경험하세요.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왠지 친숙해지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소설 <돈키호테 1>. 2권은 더 재밌다던데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돈키호테는 왜 구닥다리 기사도 소설에 미쳐서 자신만의 세계를 여행하게 되는 걸까요? 하지만 돈키호테의 모험은 현실과 묘하게 연결되고, 돈키호테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수호천사처럼 그를 지켜줍니다. 버려진 것들, 옛것들, 옛이야기에 대해서 궁금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돈키호테는 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돈키호테가 풍차로 뛰어드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죠. 돈키호테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돈키호테가 활동하는 시간 속으로 발을 디뎌보세요. 시간이란 건 무지개처럼 여러 가지 색깔과 여러 가지 시대, 공간, 사람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성은 어떻게 사치품이 되었나' 하는 뜻밖의 질문과 답을 얻은 책이었습니다. <유한계급론>은 '과시욕'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인류의 시간을 날카롭게 분석했습니다.


학사모라든지 졸업장이라든지, 우리가 좋은 교육 기관을 이수하고 나서 몸에 새기거나 붙이는 모든 장식품들이 사실은 과시욕구를 표현하는 일종의 주술적인 방법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수능 공부에 몰입하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위해서 몰입하면 소는 누가 기르고 밥은 누가 하고 집안일은 누가 할까요?

<유한계급론>은 앞서 언급한 여섯 권의 책과 달리 비문학입니다. 저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은 '기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집에 틀어박혀 수년 동안 세상의 모든 역사서와 경제학서, 인류학 서적들을 연구하다가 모든 저서를 하나의 키워드로 관통한 책을 내놓아 세상을 경악시켰습니다. 생산적인 일을 하는 존재를 낮추어 보고, 자신은 물론 배우자나 가족들에게 생산이 불가능한 화려한 옷을 입히고 화려한 보석을 매달아서 과시를 하는 남자들의 욕망은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현재에도 영원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모든 현상에 대한 이해가 한낱 미혹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괴감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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