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남학생의 어두운 표정을 따라서
중학교 2학년 학생이 몹시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선생님께 허락을 받아 걔를 데리고 야외수업에 갔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글쓰기를 했다. 나는 그 학생에게 간단한 사항을 물어보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손바닥 소설을 썼다. 중2 여학생들도 참 좋다고 칭찬했다. 그 친구가 밝게 끝내고 싶다고 해서 서둘러 마무리했다.
제목 : 김OO (학생 이름)
1. 김OO에게 차디찬 가을이었다. 태양은 얼음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차가웠고 오히려 그늘진 곳이 더 따뜻했다. 남자애들이 농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축구하던 시절이 그리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2. 여친(여자친구)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전화를 받을 때가 더 최악이었다. OO중학교 스탠드에 앉아서 하염없이 하얀 종이를 바라보았다. 의미없는 낙서라도 하고 싶었다. 내 마음은 하얀 종이가 아니었으니까. 종이가 지저분해질 때까지 의미 없는 글과 그림을 휘갈겼다. 그러나 무슨 내용을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3.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이 글감이 떠올랐는지 종이에 뭔가를 열심히 써댔다. 침묵이 우주처럼 낯설고 두려웠다. 선생님이 읽어주는 친구들의 글은 너무 밝았다. 마치 다른 별에 사는 사람들과 우연히 섞인 것 같았다. 내 별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까부터 속이 더부룩하다. 급식시간에 밥맛이 없었지만 친구들과 급식선생님이 코치코치 캐물어볼까봐 평소처럼 밥을 먹었다. 손가락을 집어넣어 다 토해내고 싶었다. 너와 함께 했던 시간들도.
4. 여친이 전화가 왔다. 두려웠다. 난 받지 않았다. 다시 전화가 왔다. 부재중이 세 번 뜨면 여친은 폭발한다. 감정을 다잡고 전화를 받았다.
너 왜 안 왔니? 넌 거기 왜 갔어? 너 보려고 왔는데 선생님이 글 쓰고 가라고 해서. 그 선생님은 동아리도 아니면서 왜 그러니. 별꼴이다.
선생님 뒷담화를 하고 있자니 문득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여친이 하는 남 욕을 들으니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금 더 친해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