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과 실체가 엇갈리는 합주의 소설 쓰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지옥변>은 죄인들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그린 그림 지옥변상의 준말이다. 어머니가 독실한 불교도여서 나는 어린 시절에 절에 자주 다녔다. 특히 일출봉 아래 있는 동암사에서는 일요일마다 만화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가면을 쓴 프로레슬러들이 싸우는 만화가 인기 있었다. 절 주변에 다니다 보면 지옥도가 그려져 있는데 어린 시절의 상상력을 집어삼키고도 남았다.
죄를 짓지 말라는 뜻이겠지만 사람을 톱으로 자르고 펄펄 끓는 물에 빠뜨리고 날카로운 바늘 위로 걸어다니는 온갖 형벌이 가득했다. 그래도 형벌 중에는 주왕이 했다던 포락지형에는 따라가지 못했다. 포락지형은 불구덩이 위에 기름을 잔뜩 바른 쇠기둥을 눕혀서 지나가게 했다. 쇠기둥을 통과하면 살려준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아무도 살아남은 적이 없어서 가장 악명높은 형벌인 것으로 기억한다.
<지옥도>는 에도 시대의 대신 호리카와에게 석연치 않은 이유로 딸을 하녀로 내준 궁중화가(환쟁이) 요시히데의 이야기다. 요시히데는 원숭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무시당하는 인물인데, 그림으로 대신에게 상 받을 기회가 있을 때 딸을 돌려달라고 했다가 "그건 곤란하지"라는 거절을 들은 후부터 대신과 틀어지고 광기가 불타오른다. 요시히데는 대신의 의뢰로 지옥도를 그리다가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 대신이 타고 다니는 우마차에 귀족 여인을 싣고 통째로 불태우는 장면을 그리고 싶다고 제안한다. 대신은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대신 요시히데의 딸을 우마차에 태워 죽게 만들고 그림을 완성한 요시히데는 목을 매 자살한다.
단편소설을 쓸 때 <지옥도>에서 배울 수 있는 건 평판과 실체의 묘한 합주다. 에도 시대의 대신 호리카와는 화가 요시히데의 딸을 하녀로 받아들이는데 욕정을 풀기 위해서라는 소문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소문도 난무하다. 요시히데가 대신이 타고 다니는 우마차에 귀부인을 실은 채로 불로 태워 죽이는 모습을 그리고 싶다는 광기어린 제안을 했을 때 요시히데의 딸에게 귀족 옷을 입혀서 우마차에 태운 행동도 복수를 위해서라는 평판과 요시히데의 광기를 벌주기 위한 정당한 대신의 행동이었다는 평판이 엇갈리고 있다. 화자를 호리카와 대신의 별볼일 없는 하인으로 설정한 것도 엇갈리는 평판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나는 단편소설을 쓸 때 인물을 평면적이고 단순하게 그리는 한계를 넘지 못했는데, 류노스케의 <지옥도>에서 그 어떤 사람이나 사건도 단순하지 않다는 진리를 소설로 표현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