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질문은 어른을 점검한다

100만 번 산 고양이가 임금님을 싫어한 까닭

by 오승주 작가

책상 위에는 몇 주 동안 그림책 한 권이 놓여져 있었다. 수업 갈 때마다 책의 놓여진 위치가 조금씩 달랐다. 책의 제목은 <100만 번 산 고양이>


선생님, 100만 번 산 고양이 읽어봤어요?

- 100만 스물 한 번 읽어봤지.


나는 호기롭게 대답했다.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인 그 아이가 카운터편치 같은 질문을 던졌다.


100만 번 산 고양이는 왜 임금님을 싫어했나요?


무슨 면접 문제처럼 멍해졌다. 왜 그렇게 싫어했지? 다행히 이 질문은 평소에 조금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 딴곳을 보고 있어서 그렇지. 그러다가 고양이가 죽으니 세상 다 잃은 듯했지만 때는 늦었고 그것도 지겨운 일일 거야. 고양이에게는.


이 말을 하면서 나는 부끄러웠다. 바로 임금의 자리에 내가 있는 것 같았다. 임금과 나의 차이라면 큰 걸 아직 잃지 않았다는 점. 그마저도 위태롭다. 나는 마치 소음 측정기처럼 아이들의 소음에만 집착했다.


제주 서귀포 지역의 한 시골 중학교. 3학년 친구들의 정서는 아직도 연구 중이다. 한 학생이 갑자기 울면서 들어왔다가 몇 분 후에 또 키득키득 웃는다. 조금 무서웠다. 이 아이의 모습은 무엇이 반영됀 된 것일까? 시골 중학교라는 지역성도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를 나가기가 두려웠던 것이 아닐까. 점점 운명의 시간은 가까워지고 중3이라는 중학교의 마지막 칸으로 갔을 때 문득 상기가 되는 것 말이다. 중2 여학생과 중3 여학생의 정서는 하늘과 땅이다. 이 문제를 처음 알았다.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아이의 질문은 한 걸음 도 내게 걸어왔다. 무시무시하지만 그나마 중학생들을 만나 말을 섞지 않았다면 전혀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당신은 어리석은 임금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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