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 시절의 기억 중에 심장에 해당하는 '제1기억'은 내가 힘들 때마다 꺼내 보는 '바닷가 점심식사'다. 초3 방학때였나? 아침 먹고 엄마는 일찍 물질 나가고 아빠는 원양어선 타러 간지 며칠째다. 누나들도 흩어져서 나 혼자만 남았다. 나는 수메밑 바다에 가서 작은 물고기랑 새우를 잡으면서 놀았다. 배가 고프면 손에 맞는 몽돌을 구해다가 따개비를 따먹기도 했고 관광객 아저씨 소주 심부름(그땐 미성년자 주류 판매금지가 없었다)하고 심부름값으로 군것질했다. 바다에만 가면 하루가 '순삭'됐다. 해질녘까지 그렇게 놀다가 해녀들이 뭍으로 와서 퇴근 준비를 하면 나도 집으로 갔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이 기억은 여러 시간들이 한 점에 결합된 추억일 뿐이다. 그마저도 편집되었다.
테드 창의 소설집 《숨》에는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기술발전의 수준이 소재로 등장하지만 그런 현란한 상황들이 비추는 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나 자신이다.
나의 인생을 여러 인물로 나눠 늙은 나가 젊은 나와 협력해서 인생의 위기를 돌파한다는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왜 첫머리에 위치해야 하는지 증명하는 작품이었다.
테드 창의 소설 이야기를 꺼내자 지인이 가장 먼저 언급한 작품이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디지언트라는 인간 또는 생물에 가까운 미래의 애완 기계를 성장시키는 과정을 다룬다. 내 아이들이 어린이고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이 많아서 특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중편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은 끝내 글을 쓰게 만들었다. 매혹적인 제목만큼이나 논쟁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개인의 모든 순간은 라이프로그로 남고 리멤이라는 장치로 확인할 수 있다. 1초도 기록되지 않는 시간은 없으며 '아동기 기억상실'은 역사가의 전문용어일 뿐이다. 이 괴물 같은 장치의 개발로 인간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지는데 그 초기의 혼란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다.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아버지들의 아버지》라는 작품처럼 두 개의 이야기가 핑퐁 식으로 갈마드는 구조다.
어쨌든<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은 나에게 기억과 추억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해주었다.
내 생애 모든 순간이 영상기록으로 남았더라면 그저 그런 날에 불과했을 것이다. 소중한 추억은 정확한 측정장치로 기록되는 것과는 다른 것이고 현재 나의 감정에 맞게 여러 시간들이 그럴듯하게 편집된 픽션 또는 논픽션에 불과하다.
그러고 보니 테드 창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