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내내 자라고 2014년 연말에 10년간의 육지생활을 마치고 귀향한 후 나는 '제주에 말 걸기'를 계속 하고 있다. 주로 사람과 지면을 통해서였는데 처음엔 대화가 잘 안 됐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했기 때문이다.
제주작가라는 계간 문예지 읽기 모임을 한지도 1년이 넘어가고 있다. '제주에 말 듣기'쯤 될까? 제주신문을 찾아서 성실하게 볼 여건도 안 되는 상황에서 지역 문예지는 나에게 신문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고, 특히 같은 땅을 밟고 같은 것을 보고 같은 문제로 마음이 무거운 이야기를 문학작품과 문장을 통해 들을 수 있었기에 나는 이제야 제주에 사는 느낌이고 제주와 대화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간혹 제주가 나에게 말을 걸어 오기도 한다. 오늘 모임 전에 안 읽은 부분을 마저 읽어야겠다.
지역 문예지는 사랑과 아픔과 정성이 가득 담긴 보물창고
당신이 만약 전라도에 산다면 전라도의 지역 문예니, 경상도에 산다면 경상도 문예지, 또는 서울에 산다면 서울의 문예지를 찾아봐야 한다. 서울도 완장을 벗은 지역의 모습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그 지역을 곧 떠날 것이라면 또 몰라도.
나는 제주에 뼈를 묻으러 왔고 이곳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이 사회적인 일이건 비즈니스적인 일이건 그 지역에 사는 친구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 친구의 생각은 단지 자신의 단편적 인상일 뿐 그 자체로 유용한 정보로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왜냐하면 그건 정제돼 있는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 문예지는 작가가 사랑의 눈으로 지역을 살펴보고 정성스레 문장을 고르고 여러 사람이 돌려 읽으며 비평도 하고 편집자가 다시 정성스레 다듬었기에 정제된 지역의 언어이다. 이런 정도의 퀄리티는 쉽지 않다.
사실 처음 제주작가 읽기모임을 제안받았을 때 기대보다 부담이 컸다. 대학원 과정 중이었고 책도 써야 하고 읽어야 할 책도 많았기 때문이다. 대답을 해줘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읽고 배우고 쓰는 것들은 나의 취향에 근거한 것이니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로 수렴되지 않겠느냐고.
다시 돌아가기 싫었다. 그래서 파도에 몸을 맡기듯 수락했다. 지금 그 선택은 잘 한 것 같다. 최소한 내가 제주와 대화하면서 불가피하게 만나게 될 낭비를 많이 줄인 것 같다. 어디에 집중을 해야 하는지 좀더 분명해진 까닭은 정제된 언어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앙 문예지가 지역인들에게 절대로 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