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하루에 한 건 정도 메모 독서 파일을 요청하는 문의를 받습니다. 책을 잘 읽고 싶다는 소망이 대부분입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독서에 대한 열정을 보게 되어 반갑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책을 잘 읽는다는 건 독서를 통해 내 삶을 살찍우고 싶고 성장하고 싶다는 뜻도 있지만 기능적으로 잘 읽는다는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능적으로 잘 읽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책이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버린다는 의미이며,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책의 노예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떄문입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차이는 일상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기능적으로 잘 읽는다는 마음을 포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괜찮은 독서법의 아류가 되는 것입니다. 독서는 공적인 행위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인 행위이기 떄문에 100명의 독서방법은 100가지입니다. 하지만 기능적 독서의 경우는 100명의 독서법이 1가지로 획일화됩니다. 요컨대 독서법을 자기화하지 않으면 기능적 독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고, 독서가 더 이상 자신을 성장시킬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기능적 독서'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능적 독서'에 빠지지 않는 세 가지 방법
1. 책의 어떤 점이 가장 즐거웠나요?
독서에도 초심이 있습니다. 나는 왜 책을 읽고,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자 당장 답이 떠오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하던 대로 일상을 지내면 언젠가는 무의식에서 계속 고민하다가 알람이 울립니다. 나는 책보다 이야기가 좋았던 겁니다. 책을 읽고 나서 다양한 서평을 읽으면 나의 생각과 비교할 수 있으니 좋았고, 서로 정해진 책을 읽고 토론할 때 즐거웠습니다. 제(책)보다 젯밥(이야기)이 더 좋았던 거죠.
성인 대상 또는 어린이, 청소년 대상 문학 강의를 할 때도 책은 그저 불쏘시개일 뿐 이야기가 주된 밥상이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책보다 책을 통한 이야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여러분은 책을 읽을 때 가장 큰 즐거움이 뭔가요?
2. 나만의 독서방법을 성장시키기
한 인간의 독서 역사는 독서 방법의 역사와 같습니다. 책을 사랑하고 책을 통해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면 독서를 자신에 맞게 디자인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독서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기능적 독서는 삶의 독서로 전환됩니다.
좋은 독서법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독서법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 역시 독서의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입니다. 메모 독서법과 데이터 독서법 같은 독서 방법을 알게 되었는데 기존의 포맷과 동일한 방식으로 독서를 하고 있다면 한 번쯤은 기능적 독서가 아닌지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3. 짧은 메모로 책과 지속적으로 대화하기
저는 책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도 책과 대화하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는 이 증상이 더 심해서 소설 속 인물과 격한 토론을 할 때도 있었죠. 책과 대화를 하면서 '짧은 메모'라는 방식을 만들었습니다. 이 방법은 간단합니다. 인상적인 구절을 표시해 놓고 빨간 색 펜으로 간단한 요약이나 나의 생각을 써넣는 것입니다.
이 방법으로 메모 독서를 하면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백 가지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파란 색 영역과 붉은 색 영역으로 나눠서 독서 메모를 작성합니다. 파란 색 영역은 인상적인 구절을 담는 부분이고, 붉은 색 영역은 나의 생각과 코멘트를 담는 부분입니다. 처음에는 파란 색 영역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붉은 색 부분이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붉은 색 영역이 많아질수록 짧은 독후감과 긴 독후감을 쓸 정도의 소스도 생기고 독서력 자체가 도약하는 지름길이 되기도 합니다.
짧은 메모(붉은 색 표시 부분)만 잘 해도 책 한 권에 100가지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기능적 독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는 만큼이나 독서가 차지하는 가치는 다양할 테니까요. 하지만 기능적 독서가 아니라 삶의 독서를 원하는 분들까지 기능적 독서에 머물러 있다면 그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독서를 통해 삶을 가꾸고 성장하고 싶은 분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