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승주 작가 Apr 08. 2020

아베 일본 총리가 쫓겨나지 않는 진짜 이유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으로 일본 자민당 영구 독재를 꼬집다

불사조 아베에게는 믿는 구석이 다 있다


일본 정치는 현재 영화 <신문기자>를 리메이킹하고 있다. 총리 관저에서 토지를 불법매입하라고 지시하고 생화학 무기 대학원을 건립할 계획을 세우다가 발각되자 공무원에게 서류 조작을 지시했고 결국 공무원이 자살하고 만다. 이게 영화 스토리다. 국유지를 헐값에 사들여 '아베 기념 초등학교'를 지으려고 했으나 발각되자 54세 재무성 공무원에게 문서 조작을 지시했고 결국 그는 자살하고 만다. 이게 바로 현재 진행중인 모리모토 스캔들이다. 아베는  “나와 아내가 (스캔들에) 관계가 있다면 총리도 국회의원도 그만두겠다”며 시미치를 뗐으나 거짓이 밝혀졌고 고이즈미 전 총리가 사퇴하라고 저격했으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부하 공무원에게 문서 조작을 지시하고 자살에 이르게 한 재무성 전 국장 사가와는 정직 3개월 처분에 그쳤으며 일본 검찰이 사가와 전 국장 등 38명을 조사했으나 역시 불기소 처리로 끝났다.

현재 진행중인 모리모토 스캔들을 모티브로 만든 일본 영화 <신문기자>. 일본이 아직도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괜한 안도감이 든다.


아베는 불사신인가? 왜 죽지 않는가? 어떤 비리를 저질러도 죄가 밝혀져도 끄떡없다. 하지만 궁금한 건 이것뿐만이 아니다.


일본은 왜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는가? 자민당의 영구독재는 언제 끝나는 건가? 하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일본은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나?


바로 이 질문 안에 아베가 불사조처럼 죽지 않는 비밀이 담겨 있다.


이번 주에 읽은 책은 비교역사사회학자 베링턴 무어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이다.

지난 번 글(코로나19와 세계 방어시스템)에서는 투쟁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는 책의 내용 때문에 울적했다. 나는 평화주의자인데 투쟁이 숙명이라니! 그런데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은 더 가관이다.


대가 없는 근대 민주주의는 없다


근대화 과정이라는 것은 폭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인데 그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나마 가장 젠틀하게 폭력적이었던 나라가 젠틀맨의 나라 영국이다. 영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 책을 영화에 비유하면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 영국은 금발의 잘 생긴 주인공 찜이다. 프랑스와 미국은 어딘가 모자라고 덜떨어져 보이는 조연급니다. 나머지는 기타등등인데. 러시아, 일본, 독일, 인도, 중국이 등장한다. 영국이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까닭은 저자 베링턴 무어가 정의한 민주주의의 명제 때문이다.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 없다

그러니까 영국이 부르주아 혁명을 가장 모범적으로 수행해 근대 민주주의의 표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주 읽었던 <시민권과 자본주의> 저자 터너는 "농업자본가와 도시 상인계급 간의 동맹으로 위계적이고 전통적인 문화가 존속되면서도 자유주의와 시민권이 확대되었으므로 영국은 근대사회가 아니"(터너1997 : 109-110)라고 하지 않았던가? 터너는 심지어 일본과 영국을 같은 사례로 평가한다.


<시민권과 자본주의> VS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의 대립구도로 책을 읽으니 잔재미와 읽는 맛이 난다. 이 두 저자가 공통적으로 놓고 있는 '상수'는 집단이다.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터너는 '대중'을 역사의 주체로 놓은 반면, 베링턴 무어는 '부르주아'를 역사의 주체로 놓았다는 점이 다르다.


무어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영국은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근대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이룩하게 되었을까? 1455~1485년에 걸친 장미 전쟁으로 영주의 대부분은 몰락하고 튜더 왕조는 왕권 강화의 꽃길을 걷는다. '영주-소작인' 관계가 깨지고 16-17세기 동안 농촌의 상업 세력이 왕실과 대립하면서 성장한다. 도시에는 도시 상인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싸움은 농촌 상업 세력, 도시 상인(부르주아 세력) VS 왕, 영주, 판사들, 교회 성직자들의 패싸움 구도였는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영주가 비틀거리고 교회도 공격당하며 세력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판사들은 나으리 대접을 받으려고 소작농들의 이사를 제한하는 정주법을 엄격히 집행했는데 부르주아 세력이 이를 깨뜨려 농민들이 자유롭게 도시로 이사해 노동자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농민의 엄청난 고통이 있었으나 무어는 이 정도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좋은 값에 쳐준 거라며 영국 편을 든다.


이제 일본 이야기를 해보자. 일본에서는 영국에는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시민권과 자본주의>의 저자 터너가 일본, 영국을 같은 선상에 놓았다면 무어는 양 극단에 배치했다.



"참깨씨는 짓밟아야 제맛"
 


도쿠가와 시절, 아니 그 이전부터 일본의 권력자들에게 농민들은 도구, 정확히 말하면 현금인출기에 불과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안타깝지만 미래에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당시의 농민이 오늘날의 일본 국민으로 바뀐 것뿐이다.


농민은 참깨씨와 같다. 밟으면 밟을수록 더 많이 나온다.


듣기만 해도 화가 나는 이 말은 도쿠가와 시절 당시 사무라이와 농민의 관계를 풍자한 시 구절의 일부로 자주 인용되어 왔다. 이 말 안에는 전근대 일본의 농민, 근대 일본의 국민들의 안타까운 처지가 다 들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조선의 도자기와 유학자를 많이 훔쳐갔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유학자들을 데려가서 성리학을 부흥시킨 까닭을 알고서 나는 소름이 끼쳤다. 이 사실은 나비 효과를 일으켜 최근에 폐지된 '호주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일제 시대 일본은 호주를 정하고 나머지 가족 구성원은 민원의 대상으로 쳐주지도 않았는데 이런 체제는 우리나라의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사회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유학을 그렇게 미친 듯이 흡입한 것은 농민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다.


메이지 유신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친 오규 소라이의 <논어징>. 일본의 성리학 열풍은 상상 이상이다.

너희 부모에게 효도하라, 효도의 첩경은 네 몸을 온전히 보존하는 일이니라. 만약 너희가 음주와 싸움을 삼가고 동생을 사랑하며 형님을 공경하면, 부모님들은 특히 기뻐하실 것이니라. (중략) 그렇지 않고 방탕하고 게으르면, 너희는 패가망신할 것임은 물론 마침내는 도둑질도 서슴지않게 될 것이로다. 그러면 국법이 너희를 잡아 오라로 묶어 옥에 가둘 것이며 또 목매달아 처형할 것이니라. 만에 하나라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너희 부모의 마음인들 오죽 쓰리겠느냐! 더구나 너희들의 처 자식과 형제들도 모두 너희들 죄로 인하여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니라. 진실로, 농민들은 제때에 세금만 낸다면 가장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위에서 말한 바를 항상 명심할지어다. - 17세기 어느 방에 붙여 있던 글


한마디로 '우리가 해먹든 부정부패하든 너희들은 까불지 말고 세금이나 잘 내라'는 이다. 관리의 일본은 일본 농민이 시민으로 성장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무슨 짓이든 했다. 메이지 유신은 권력 분산을 거부하는 보수 세력이 신분제 철폐, 징병제, 보통교육을 통해 납세자, 근대 산업 노동자, 군인을 양성하며 근대적인 형식을 갖추었지만 사실은 권력 재창출 꼼수에 불과하다.


일본의 마을에서는 이제까지 계급 투쟁이 벌어진 적이 한 번도 없다. 일본의 마을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나는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일본의 한 마을에 이주한 사람이 거기서 오랫동안 머무르며 자식을 낳고, 자식도 결혼을 했다. 최소 30년 넘게 살았지만 마을 사람들로부터 마을 구성원으로 인정 받지 못했다. 일본의 지배계급은 농민을 너무 잘 이해했고, 농민의 위험성도 너무 잘 알았다. 농민에게 필요한 떡꼬물을 살살 던져주면서 투쟁의 의지를 꺾으면서도 치안유지법을 제정해 정부 개혁을 요구하는 자들을 대량으로 검거하는 시스템을 확립했다. 거기다가 천황에 대한 신격화를 끊임없이 세뇌시켜 애국적인 극단주의를 심어놓았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벌어졌을 때 수천명의 사회주의자들이 투옥되었다. 한 헌병대장은 자신의 손으로 노동 운동 지도자와 그의 아내, 일곱살 난 여조카를 목졸라 살해했다. 헌병대장은 1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극우적인 신문은 그를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메이지 정권과 대기업은 농민과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국내시장을 창출하는 위험스러운 일을 피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고 팽창 전략을 통해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이 당시 산업노동계급과 농민계급은 정부의 계획에 저항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고 그 후로 성장이 멈춰버렸다. 이 결과 일본은 위로부터의 혁명이라는 보수적 반동적 피시즘으로 근대화를 이뤘다. 이 구도를 깨뜨릴 주체를 성장시키기는커녕 억압했고, 스스로 성장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일본은 영원히 찻잔속의 태풍이라는 저주에 빠지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 사람들의 지나친 예의범절이 어디에서 기원했는가를 알았다. 그것은 지주와 소작인의 관계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소작인은 지주에게 엄청난 착취를 당했지만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안봐도 비디오이므로 항상 예의범절 가득한 얼굴로 지주를 대했다. 미국이 일본을 점령했을 때 미국인들은 일본인의 지나친 예의범절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인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증오와 분노는 볼 수 없었다. 그러니까 지주-소작인의 예의범절 관계는 점령 미국-항복 일본의 예의범절로 옮겨졌고, 지금은 외부인을 향해서 일관되고 지나친 예의범절로 대한다. 그러면서도 수십 년 동안 지낸 마을 이웃을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베링턴 무어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은 구멍이 워낙 많아서 비판은 생략한다. 역사사회학과 비교역사사회학의 문을 활짝 열었다는 것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근대 민주주의를 위한 세 가지 길'이라는 수사 속에 감춰진 메시지는 파시즘적인 방법으로도 충분히 근대 산업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가지 방법으로 근대 민주주의가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민주주의에 대한 독단의 잠을 깨우기 충분한 주장이다. 나는 우리나라에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등장인물의 성격이 모두 섞여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베링턴 무어의 분석틀을 가지고 한국 사회를 뜯어봐도 재밌을 것 같다.


요컨대 일본 아베 총리가 쫓겨나지 않는 진짜 이유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베를 내쫓아낼 세력들을 아주 섬세하게 하나 하나 제거한 결과 무슨 짓을 하더라도 압력을 행사할 세력도 이를 대체할 세력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원숭이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오죽했으면 일본인도 원숭이 얘기를 했을까? 마인드를 좀 인간화할 수는 없을까? 호연지기는 바라지도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19와 세계 방어시스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