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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May 04. 2020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으세요?

<앵무새 죽이기>에서 선을 넘는 사람들과 선을 지키는 사람들

상식이 통하는 세상과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세상은 누구나 바란다. 하지만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은 어떨까? 겉으로 볼 떄는 '아 다르고 어 다른' 말 같지만 두 세상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은 몰상식한 생각 그 자체에 맞서지만,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은 상식 자체가 대상이 된다. <앵무새 죽이기>는 인종차별이 상식이었던 미국 남부 앨리배마, 그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시골 마을 메이콤에서 벌어진 인종차별적인 성폭행 모함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다. 인종차별적인 성폭행 모함 사건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평생 아버지에게 폭력과 학대를 당한 유얼 집안의 딸 메이엘라가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톰 로빈슨에게 연정을 품었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니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발했기 때문이다. 메이엘라가 로빈슨을 껴안았을 때 아버지가 총을 들고 달려오고 있었고 사실대로 말하면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로빈슨을 팔아먹은 것이다.


이 핵심 사건의 모티브는 1931년에 앨리배마 주에서 벌어졌던 스코츠보로 재판 사건이다. 테네시 주에서 앨리배마 주로 가는 화물차를 얻어 탄 흑인 청년들과 백인 청년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백인 청년들은 중과부적으로 밀려났다. 앨리배마에 도착하자마자 흑인 청년들은 체포되었지만 경찰의 사주를 받은 백인 여성은 흑인 청년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허위 주장을 한다. 재판 기간 20년 동안 흑인 청년들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받았다. 소설 속 톰 로빈슨은 자살하고 만다.


이 이야기는 모두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벌어진 일이다. 인종차별이 상식이었던 것처럼 시대에 따라 상식이었던 것 중에서는 끔찍한 것이 많다. 산업혁명 전후 영국에서는 아동노동이 상식이었던 걸 아는가?


우리는 새로 태어나는 세대마다 모두 말 못하는 영아 시절부터 범죄를 배우도록 하고 있으며, 그렇게 배워 범죄자가 된 이들을 마치 수풀 속의 짐승처럼 사냥하여 도망가지 못하게 법망으로 꽁꽁 묶어 강제 노역을 시킨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상태를 방치할 것인가?


협동조합의 창시자이자 세계 최초의 유치원 설립자이며 ‘사회 혁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로버트 오언이 1814년 영국의 공장을 둘러보며 외친 절규다. 당시에는 여섯 살짜리 심지어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을 공장에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단 한 번의 휴식시간만 허용하는 14시간 노동이 관습이자 상식이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상식과 싸운 이후에야 영국에는 유치원이 생기고 아동교육이 강화되었다. 노동시간 역시 성인과 청소년 모두 10시간으로 줄었지만 그 과정은 무척 험난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상식의 지배에 맞선 역사다.

인권이란 상식과의 끊임없는 긴장관계다.



선을 넘는 쪽은 매우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앵무새 죽이기>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선 넘기'다. 요즘 '선 넘지 마세요'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앵무새 죽이기>의 선은 매우 엄격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소설 속 유얼 집안의 밥 유얼은 인종차별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고 하였고 주인공 소녀 스카웃의 아버지인 변호사 에티커스에게 침까지 뱉었다. 그는 재판을 통해 모욕을 당하고 복수를 위해 젬과 스카웃을 살해하려다 '기이한 이웃' 부 래들리에게 죽임을 당한다. 부는 마치 수호천사처럼 아이들 주변을 계속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백인들 역시 인종차별의 선을 계속 넘나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마음대로 인종차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세월호' 역시 '선 넘기'의 대표적인 사건이다. 세월호를 모욕한 국회의원 후보는 낙선되고, 세월호 조사 활동을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방해한 자들에 대한 검찰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언론은 뒤늦게 사과를 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세월호 사건 당시 선을 넘은 사람이 한둘이었던가?


<앵무새 죽이기>에는 선을 지키는 파수꾼이 여럿 등장한다. 이들은 경계에서 마치 작두를 타듯 위험천만한 모험을 견딘다. <앵무새 죽이기>의 뜻이 '선 넘기'라면 선을 넘었는지 알려주는 인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나는 가장 중요한 파수꾼은 '부 래들리'라고 평가한다. 부 래들리는 스카웃의 기이한 이웃으로서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못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심지어 소설의 말미에 악당을 죽임으로써 새로운 논쟁을 촉발하기도 한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 <나홀로 집에>의 기이한 이웃 할아버지 로버트 블러섬은 <앵무새 죽이기>의 부 래들리와 판박이 캐릭터다


부 래들리가 얼마나 위태로운 모험을 견디느냐 하면 젬과 스카웃을 살해하려는 밥 유얼을 죽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진상을 알았던 에티커스 핀치 변호사와 헥 테이트, 모디 앳킨스 보안관이 격렬한 논쟁 끝에 밥 유얼의 자살로 사건을 종결시키지 않았다면 부 래들리는 제2의 톰 로빈슨이 되었을 것이다. 부 래들리는 아버지와 가족을 죽였다는 소문이 마을에는 이미 상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 명의 어른들이 부 래들리를 보호해준 까닭은 톰 로빈슨이 감옥에서 자살한 일과 관련이 있다. 에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마을의 인종차별주의자들로부터 테러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톰 로빈슨을 변호했고 거의 성공할 뻔했지만 상식의 벽을 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지켜본 톰 로빈슨은 마치 하늘의 재판관처럼 판결을 내렸다. 부 래들리를 인종차별의 재판으로 소환하지 않기 위해서 세 사람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했다.


<앵무새 죽이기>가 소설로 쓰인 인권 교과서라고 평가 받는 까닭은 상식과의 긴장관계를 팽팽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선을 지키는 사람들은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매우 위험한 상태에 빠지며, 그 중 일부는 죽고 말았다. 인권이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싸워서 획득하는 것이다. 그 위험한 여정을 <앵무새 죽이기>만큼 처절하게 형상화한 작품을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선을 넘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 위험을 무릅쓰고 선을 지켜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소설로 된 인권 교과서 <앵무새 죽이기>


매주  수요일 오전10시30분(3부) JIBS FM<김민경의 NOW JEJU> (제주시 101.5MHz, 서귀포시 98.5MHz)'탐나는 문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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