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승주 작가 May 14. 2020

스승의 날에 생각나는 세 분의 선생님

공자,  <마음>의 학교 밖 선생님 , <빌리 엘리어트> 윌킨스 선생님


나는 학창시절에 선생님은 절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생각했다. 지금은 글쓰기,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부모들이 나의 학생이니 거의 모든 세대와 교실에서 소통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학창시절의 생각과 모순된 것이기도 하지만, 학창시절 생각의 연장이기도 하다. 나는 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작가, 또는 인문학 강사, 글쓰기 강사로서 그들과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도달하기까지 세 명의 선생님이 영향을 주었다.


학교 밖 선생님


공자의 <논어>와 공자를 스승처럼 존경한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논어징>의 저자 오규 소라이의 이 책은 일본 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공자는 세상의 모든 사람과 모든 자연, 모든 물건을 스승으로 삼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공자에게 배운 이후로 내 주변에는 스승으로 가득 차게 되었고, 나는 학생처럼 일상생활을 하게 되었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더라도 반드시 스승으로 삼을 사람이 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보면 최선을 다해서 그와 같아지려고 노력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은 반면교사로 삼아서 나에게도 그런 점이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 방법을 학생들을 가르칠 때마다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실천이 잘 되지는 않지만 그런 시도들이 학생들에게 전달된다. 학생을 선생님처럼 바라보는 태도 말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마음>이라는 소설에서 '학교 밖 선생님'이라는 개념을 가르쳐 주었다. 인간이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학교 안에서뿐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선생님이 있어야 한다. 학교 안팎의 가르침이 하나가 될 때 한 사람의 건강한 인간으로 태어난다.


내게는 학교 강의보다도 선생님의 말이 더 유익했다. 교수의 생각보다도 선생님의 사상이 더 의미 있었다. 결국에는, 강단에 서서 나를 지도해주는 훌륭한 사람들보다 오직 혼자만의 세계에 살며 많은 말을 하지 않는 선생님이 더 훌륭해 보이게 된 것이다.


나는 공자와 나쓰메 소세키가 제안한 선생님의 일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 일을 내가 하고 싶었다.


가족과 부모로부터 학생을 지킨 윌킨스 선생님




선생님, 혹시 절 좋아하세요?
- 아니, 이상한 질문이지만 대답해 줄게. 난 널 안 좋아해, 됐니? 자, 썩 꺼져.


훌륭한 재능을 발견했을 때 그 재능만을 보고 키워줄 수 있을까? 아무도 그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고 격렬한 비난과 오해와 반대를 한다면 이것을 무릅쓰고 지켜낼 수 있을까? 나는 자신 없다. 내 일도 아닌데, 그 많은 시간과 노동과 맘고생을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그래서 <빌리 엘리어트>의 윌킨스 선생님이 존경스럽다.


사실 빌리조차도 발레 선생님이 왜 이렇게 열정적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나름 이해하려고 노력한 게 자기를 좋아하지 않나 하는 도끼병 같은 생각이다. '도끼병'은 오래된 말이지만 누군가 나를 콕 찍었다고 착각하는 병이다. 빌리마저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발레하는 빌리가 탐탁지 않은 가족은 어떨까?


난 내 동생이 댁 같은 인간을 만족시키려고 계집애처럼 뛰어다니게 놔두진 않을 거야!
어쨌든 당신이 발레에 대해 잘 알기나 하쇼? 자격증은 갖고 있소?

나도 공부방을 하면서 부모로부터 모욕을 들은 적이 있다. 한 학생이 친구에게 용서 받지 못할 잘못을 저질렀을 때 나는 그 상황을 '시'로 써서 10번 쓰고 오라고 과제를 주었다. 그 과정을 지켜본 한 부모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가 잘못한 건 알겠지만 '그것도 시냐?'며 모욕을 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만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이 일은 지금도 나의 상처로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학생이 용서 받지 못할 행동에 대해서 최선의 대응을 했다고 생각한다. 시는 잘 못썼을지 모르겠지만.


윌킨스 선생님은 이 시대 스승의 책임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중대한 질문을 던진다. 책 놀이를 주로 하던 내가 부모 교육으로 전환한 것도 이 질문과 관련이 있다. 아무리 책 놀이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과 재미를 선사해도 집에 가면 도로아미타불이라면 결국 그 원인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모 교육에 공을 들인다.


학교 밖에서 가르치는 사람으로 가장 안타까운 일은 천재들이 점점 죽어간다는 것이다. 열매는커녕 새싹도 맺지 못하고 죽는 재능이 너무 많다. 그 앞에서 항상 무력감을 느낀다.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윌킨스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되묻곤 한다. 윌킨스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 같다.


승주야, 네가 스스로 훌륭한 스승이 되는 것에 집중해. 때가 되면 훌륭한 제자가 찾아올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