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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May 04. 2020

미래는 인간이 점점 싫증난다

<타임머신>, 장밋빛 미래에 경종을 울리다

이 글은 2020.5.6 (수요일) 오전10시30분(3부) 방송 예정인 JIBS FM<김민경의 NOW JEJU> (제주시 101.5MHz, 서귀포시 98.5MHz) '탐나는 문학'의 프리뷰입니다.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노동을 안 하는 사람들의 통장에는 점점 돈이 쌓이고 매일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들의 통장 잔고는 0원의 위협에 시달리는 시간이 반복된다면 그 끝은 어떤 모습일까?


<타임머신>의 저자 허버트 조지 웰스도 같은 고민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오싹할 만큼 두 계급은 잔혹한 운명에 직면하며, 더 먼 미래에는 그런 구분마저 의미 없는 무생물 지구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타임머신> 이야기를 하고 다니면서 무척 흥미롭고 역설적인 상황을 경험한다. <타임머신>의 내용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 같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였어요?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웰스가 <타임머신>을 쓴 까닭은 사람들이 시간 여행을 더 이상 환상이나 미신, 마술, 기적과 결부시켜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시간 여행에 과학적 이론을 부여했고 사람들이 알고 있던 미래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타임머신>을 읽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타임머신>의 내용이 환상이나 미신, 마술, 기적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고 단정한다. 웰스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얼마나 기가 찰 것인가?


진화론은 우리의 지적 기대를 촉구한다. 하지만 수백만 년 동안 지구가 진화 과정을 밟아 가면 이윽고 정점에 다다를 테고, 그다음은 하강 일로를 걷지 않을까?


<멋진 신세계>의 작가인 올더스 헉슬리의 할아버지 토머스 헉슬리는 <진화와 윤리>라는 책에서 비관적 우주론을 역설했고, 웰스는 헉슬리의 이론을 받아들여 <타임머신>에 '진화의 역전 현상'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반영했다. 그리고 웰스 이후의 SF 작가들은 웰스의 세계관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나는 <타임머신>을 읽으면서 '미래란 두려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 미리 겁을 집어먹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미래에 대해서 뒤통수를 맞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미래는 두려움이라는 사실을 배운 건 <타임머신>이 최초는 아니다. <춘추좌전>이라는 책에서였다.


춘추시대 역사를 담은 춘추좌전에서는 공자의 조국인 노나라와 가까운 오나라가 강성해지면서 이웃나라 담나라를 정벌했다. 다음 차례가 노나라가 될 수 있는 상태에서 노나라에 미래는 없었다. 당시 노나라의 실권자였던 계문자는 춘추시대의 시스템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이제는 망할 길밖에 남지 않았다고 걱정한다. 이를 두고 군자(후세의 지식인)는 한줄평을 남겼다.


이렇게 경계하여 두려워할 줄 안다면 결코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망한 것은 노나라가 아니라 오나라였다. 오나라는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 나머지 월나라를 정벌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국 통일의 꿈을 가지고 제나라 정벌에 나섰다가 안에서부터 무너져 버렸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잃어버린 순간 미래는 끔찍한 괴물로 바뀝니다. 그것이 바로 <타임머신>이 준 교훈이다.



갑질을 하던 사람들은 가축처럼 사육되고 잡아먹혔다


달이 뜨면 몰록은 먹음직스러운 엘로이들을 잡아간다. 그래서 엘로이들은 어둠을 무척이나 두려워한다


엘로이족은 지배계급의 후손이었지만 지배계급이 미래에 대해서 전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퇴화에 퇴화를 거듭해 가축의 신세로 전락한다. 이와 반대로 몰록족은 지배계급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열악한 대접과 착취에 시달렸지만 오랜 세월 후에 지배계급의 후손들을 사육하고 잡아먹을 정도로 관계가 역전된다.


시간여행자는 엘로이족, 특히 위나를 사랑하며 몰록족과 전투를 벌이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제 한몸을 구출하는 것뿐이었다. 웰스의 잔혹하고 지독한 질문은 정신을 얼얼하게 만든다. 항상 약자들의 등골을 뽑아먹으면서 자신은 지배계급으로서 아무런 책임도 성찰도 하지 않는 세상의 기득권들이 처할 운명은 뻔하지 않은가?


처음에 '시간여행자'가 신문사 편집장과 신문기자, 의사 등을 초대했을 때 나는 비즈니스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역시 시간여행자의 진심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책을 덮고 한참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시간여행자는 경고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 안에 담긴 메시지라도 대중에게 알려지기를 바랐지만 신문사 편집장은 한낱 소설의 이야기로 평가절하해버렸다. 시간여행자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버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시간여행자의 친구인 화자만이 쓸쓸한 독백을 남길 뿐이었다.


축적된 문명은 결국에는 필연적으로 그 축적을 이룩한 사람들의 머리 위로 무너져 그들을 파괴할 게 분명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는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


대개 선구자들과 선각자들은 무시와 조롱에 시달린다. 이들을 무시한 세상은 처참한 대가를 치르고 자신의 잘못을 개선한다. 하지만 웰스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그러니까 처참한 대가를 치르고 잘못을 되돌릴 기회조차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만약 미래에 대해서 인간이 생각을 고쳐먹기 전에 미래가 먼저 인간을 싫증낸다면 어떻게 될까?


<타임머신>은 단순한 미래 여행이 아니라 시간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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