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1학년에게 장자, 계급, 자본주의를 말해준 그림책

《넉 점 반》의 세계관을 계승한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by 오승주 작가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을 중1들과 읽으면서 원래는 전체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다. 자로 잰 듯한 수박밭에서 사라진 수박 한 개의 빈자리는 딱 봐도 전체주의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1들은 이보다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1. 계급과 자본주의

앙통이 서 있는 수박밭의 한 쪽에 트럭이 서 있다. 앙통은 판매하기 위해서 수박을 재배한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앙통의 지위는 어떻게 될까? 편의점으로 친다면 점장 혹은 알바다. 프렌차이즈 본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기에 없어진 수박만큼 자신의 월급이나 매출에서 차감해야 하기 때문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중1들과 이야기하면서 계급과 자본주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2. 미스디렉션Misdirection


앙통은 꿈에서 수박 하나가 목화밭으로 굴러가는 것을 보곤 잠이 확 깨서 목화밭으로 달려간다. 사라진 수박을 찾는 미스터리 장르에다 목화밭이라는 엉뚱한 단서를 더하며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그림책으로서는 매우 영악하고 드문 서술이었다.


3. 장자의 연속적인 세계관


학교-집-학원에 익숙한 학생들, 게다가 버스를 타지 않고 부모의 픽업차량에 의존하는 중학생이라면 이미 비연속적인 세계관에 지배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문제가 정말 고통스럽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올 때까지 수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학교-학원이라는 비연속적 세상 속에서 사고의 틀은 한없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장자는 인간이 자연과 하나이며 인간이 곧 자연이라는 사고를 집요하게 파고들기 때문에 연속적인 세계관의 고향과도 같다. 그림책 《넉 점 반》에는 넉 점 반까지 오라는 엄마의 비연속적인 세계관과 결코 넉 점 반까지 갈 수 없을 뿐더러 넉 점이라는 조건이 사실은 사고의 한 조각일 뿐이라는 올바른 배치를 보여주는 놀라운 그림책이었는데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은 고양이가 수박밭에서 밤샘 파티를 열어 엉망진창으로 만듦으로써 공장 같은 비연속적인 수박밭을 자연의(자연스러운) 연속적인 수박밭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엄마와 아이, 그리고 넉 점 반의 올바른 배치처럼 공장 식 수박밭, 고양이, 자연스런 수박밭이 충실히 계승했다. 중1들은 연속적인 수박밭을 보며 자유롭다고 말했는데 내가 자연스럽다고 한마디를 보태자 동공지진이 발생했다. 중학생들과 이 정도까지 기분좋은 대화를 할 수 있을지는 기대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중학생에 대한 나의 이해도를 좀더 가다듬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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