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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논어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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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Nov 07. 2017

[논어산문] 1.인문학병(人文學病)

논어 산문집



▲ 인문학 산문쓰기의 첫 번째 주인공은 『논어』



간만에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을 방문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과 차를 맛나게 대접받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은사님이 배웅까지 해주셨다. 작별하려는 순간 멀리서부터 청소년으로 보이는 사람이 자전거를 몰고 오는 게 보였다. 운동복 차림으로 보아 졸업생인 듯했다. 은사님은 놀라셨다. “아니, 네가 이 시간에 여기 왜 있니?” 알고 보니 은사님이 담임을 맡고 있는 학생이었다. 한 중소기업에 실습생으로 갔다가 사장에게 인격 모독과 부당한 처우를 받고 일을 그만두었던 터였다. “좀 참아보지 그랬니? 세상이 원래 만만치 않은 법이니까.” 나를 놀라게 한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은사님은 내게 학생에게 한 말씀이 괜찮았는지 여쭤보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였다는 난감함과 부끄러움이 얼굴에 가득했다. 나는 좋은 말로 선생님을 위로해드리느라 진땀을 뺐다. 수십 년 경력의 선생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아찔했다. 나는 매일 매일 무너질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가장 난감한 점은 나를 부수고 찢어서 집어던지는 것이다. 내가 이제까지 쌓았던 지식과 자부심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충격은 당혹스럽다. 세상에서 가장 적응이 안 되는 일은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일과 글 쓰는 일과 사랑을 잃는 것이다. 특히 무너지는 일은 힘들다. 하루에 100번을 무너져도 모두 낯설다. 그런데 왜 자꾸 무너뜨리느냐?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그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것이 그대로 실행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은 다음 과연 그 말대로 실행하고 있는지 관찰하기로 했다. 재여가 나를 바꾼 것이다. - 논어, 공야장
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 


민서가 사촌형과 다퉜다. 둘 다 하지 않기로 한 행동을 하나씩 했다. 민서는 세 살 위의 사촌형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기로 했고, 사촌형은 습관적인 손찌검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민서를 조용히 방으로 불렀다. 민서는 “혼낼 거잖아요.”라고 말했다. 순간 좀 멍해졌다. 소소한 일상에서 혼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방으로 부르는 경우 혼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나에 대한 이미지를 조정해야 했다. 나는 생각보다 잘 혼내는 아빠였다. 내가 아이들에게 비친다고 생각했던 모습을 다 부숴버리고 잘 혼내는 아빠에서부터 출발했다. 인문학은 강박에 가까운 도덕적 용기를 준다. 그래서 인문학을 일상으로 하는 사람은 사회 부적응자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선생님처럼 오랜 세월 인문학에 몸담을 수 있을까?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일을 매일 매일 기꺼이 할 수 있을까?


도덕을 몸에 익히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학문이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올바른 것을 알면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쁜 줄 알면서도 고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것을 나는 늘 내심 경계하고 있다. - 논어, 술이 편
子曰:  「德之不脩,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


아이들은 불필요한 껍데기가 거의 없고 순수하고 맑은 욕망이 대부분이다. 나의 상태를 그 수준에 맞추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나는 한 번도 무너져보지 않은 사람과는 말을 잘 섞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껍데기가 몸이 된다는 건 슬픈 일이며, 사방이 온통 그런 모습이라면 그건 질식할 만한 일이다. 어린이들은 어떻게 숨 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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