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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Nov 21. 2017

[논어산문] 나를 충격에 빠뜨린 글

수업을 하다 보면 때로는 한 시간의 수업에 완전히 각성될 때가 있다. 얼마 전에 인생의 목표를 완전히 새롭게 하고 좀더 완전한 비전을 발견한 수업 경험을 했다. 그야말로 인생 수업이었다. 그저 평범한 아주머니들의 글쓰기 강의였다. 숙제로 논어에 관한 산문을 각자 가져왔고 그 중 하나의 글이 나에게 굉장한 충격을 주었다. 


A라는 수강생은 글이 유려하고 자신의 문체가 있었다. 실제로 그는 책을 낼 욕심이 있어서 왕성한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었다. 욕망이 자유롭게 숨쉬고 있으니 글에도 힘이 있었다. 모든 수강생들이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런 수강생이었다. 하지만 나를 충격에 빠뜨린 글은 따로 있었다. 수강생 B는 대도시에서 광고업을 수년간 하다가 새벽 출퇴근을 반복적으로 하며 지쳐버렸던 영혼이었다. 지금도 얼굴에 '고난의 행군'이 선명히 남아 있을 정도였다. 글쓴이는 얼굴에 억눌렸던 경험이 아직 남아 있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노라고 고백했다. 


글은 전형적인 파노라마 방식이었다. 솔직히 잘 쓴 글은 아니었다. 마치 연대기를 하듯이 있었던 일을 나열했다. 함께 합평했던 수강생들은 하나의 글이 아니라 대여섯 개의 글을 종이에 옮겨 놓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지적하려면 지적할 내용이 너무 많았던 구멍이 많은 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나를 충격에 빠뜨렸고, 한눈에 반하게 만든 것은 두 가이 이유 때문이었다. 


글에는 고통이 보였다. 좋은 솜씨 때문이 아니라 실제 그가 아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없는 한 가지가 있었다. 보편성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마치 돌연변이처럼 보통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다. 내 경험과 나의 생각은 그래서 보편적이지 않다. 누군가를 대표할 정도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세상 어디에나 있는 사람이고, 그의 고통은 누구나 공감할 만큼 보편성이 있었다. 내가 그의 글을 보고 반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 바로 이것이다. 


노(魯)나라를 모국으로 하는 공자는 조상 대에는 송(宋)나라 왕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가문이 몰락하면서 어렸을 적부터 비천한 일을 많이 했던 사실상 소년가장이었다. 20대에는 노나라 유력 가문인 계손씨의 일가에서 회계와 목장 관리 같은 하위급을 전전하다가 30대에 이르러서야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자수성가했던 경험은 공자에게는 자부심의 원천이자 동시에 열등감의 저수지였다. 



나는 어렸을 적에는 집안이 변변치 못해서 하찮은 직무에 다재다능했다. 군자는 이처럼 다재다능해야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 - 『논어』, 「자한」


논어에는 공자의 열등감과 초조함 등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비교적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 공자도 하나의 불안정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제나라의 안자(안영)나 정나라의 자산처럼 유력한 가문에서 나고 자라서 오로지 국가경영에 관해서만 수업을 쌓았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공자가 주요 지위에 발탁되지 못한 것도, 노나라를 개혁하지 못한 것도 출신성분의 한계에 있다는 것을 두고두고 안타까워했다는 사실이 논어 곳곳에 암시돼 있다. 본인 스스로가 '군자'에 어울리는 대표성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서 그는 위대한 단념을 한다. 정치개혁의 주인공을 자임하지 않고 한 발 물러나 주인공들을 키운 것이다. 


공자는 귀족과 비천한 신분의 중간쯤 되는 인물이지만, 공자의 제자들은 비천한 신분에서 정치개혁세력으로 성장했다. 

비천한 출신의 제자들은 공자에게 자극을 받아 신분상승을 이뤄냈고 중국 전체를 대상으로 개혁작업을 하고 군주를 설득하는 유세가를 배출했다. 주유천하(周遊天下)는 공자 이후에 나타난 흐름이었다. 공자는 범죄 전과가 있는 공야장에게 "그의 죄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일 뿐"(「공야장」)이라며 사위로 삼았고, 신분이 낮아서 좀처럼 벼슬 기회를 얻을 수 없었던 중궁에게는 "얼룩소의 새끼라도 털빛과 뿔이 아름답다면 산천의 신이 버리지 않을 것"(「옹야」)이라고 응원했다. 


나는 수강생B 같은 사람이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를 위해서 힘을 보태고 작가로 태어나 자기와 비슷한 고통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응원할 수 있다면 내가 작가로서 주는 울림보다 수십 배의 울림과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다. 2018년에는 "작가되기 프로젝트"의 첫삽을 뜬다. 좋은 인연을 만나 아름다우 꽃을 피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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