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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Nov 22. 2017

[논어산문] 나를 충격에 빠뜨린 아이

사람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어제는 슬픈 하루였다. 수업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번의 수업에서 인생경험을 할 수도 있지만, 다음 번의 수업에서 인생파괴를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이 사람이 주는 힘이자 압력이다. 한 중학교 1학년 세 개 반 아이들에게 그림책 리터러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림책을 읽으며 문학텍스트를 이해하고 요약과 토론, 간단한 글쓰기 능력을 키우려는 취지로 진행된 귀중한 수업이다. 후반부에는 글쓰기 수업을 계획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시키고 있다. 눈여겨본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눈빛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초점 없는 눈빛. 슬픔은 예견된 것이었다. 


어제는 "시간을 되돌리거나 시간을 점프하거나 하는 여러 가지 초능력이 있다면 간절히 쓰고 싶었던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세요"라는 주제였다. 그 아이는 "실수를 하거나 후회한 일을 되돌리고 싶다"고 한마디 쓰고 말았다. 나는 어떤 실수 또는 후회한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써줄 것을 요청했다. 그 아이는 단연코 거부하는 것이었다. 왜 그것을 밝혀야 하느냐는 것이다. 글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쓰는 것이고, 만약 민감한 내용이라면 비밀에 부칠 것이라고 보장했다. 그런데도 거부했다. 내 마음을 글에 쓰고 싶지 않다고. 원래 글에 마음을 담지 않느냐고 물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글을 쓰고 싶었고, 글에 맘껏 마음을 담았다고 대답했다. 그 사이에 내가 모르는 상처가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말했다. 


마음을 보이면 상처를 받을 텐데, 왜 그래야 하는데요?


평생 공자를 속상하게 했던 제자는 염구였다. 염구는 자공 다음으로 공자를 지원한 제2의 후원 제자다. 공자가 60세 되던 애공3년(기원전 452년) 공자를 내쳤던 노나라의 실력자 계환자가 임종하며 아들이자 후계자인 계강자에게 반드시 공자를 등용시키라는 유언을 남긴다. 계강자가 유언을 실행하려고 했을 때 대부 공지어(公之魚)가 극력 반대했고, 대타로 염구가 등용된다. 자공은 노나라로 갈 차비를 하는 염구에게 “노나라에 가서 등용되면 꼭 스승을 모셔가 주시오.”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염구는 경영능력과 전쟁 수행능력으로 군주를 만족시키며 공자를 조국으로 복귀시키는데 성공한다. 이 사례만 보아도 염구가 얼마나 수완이 좋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염구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도덕적 용기와 근성이 부족했다. 도덕적 용기의 부족은 상급자에게 대놓고 반대를 하지 못하는 폐단을 불러와 노나라의 정치를 정체하게 만들었다. 근성의 부족은 공자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쓰기를 거부하는 아이를 보면서 염구가 생각났다. 염구가 공자의 수업을 받다가 힘들어하는 장면이 논어에 나온다. 염구는 "저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좋아하지만 제가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공자는 안타까워하며 충고했다. 


정말 힘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이미 하다가 퍼졌겠지. 너는 하지도 않고 단념부터 하는구나. 『논어』「옹야」


『논어』에 등장하는 염구와 공자의 논쟁을 보면 자기계발서와 인문학의 차이점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단념하거나 단정하는 것을 한자로 '획劃'이라고 한다.(『논어』는 지금보다 덜 발달한 한문을 사용했기에 '화畵'를 썼다)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을 현장에서 만날 때 가장 빈번히 듣는 반응도 역시 '획'이다. '획하는 아이'들과 '교만한 아이'가 지나치게 많다. 이것은 물론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어른들의 잘못이다. 이미 상처받고 마음이 돌아선 아이들을 다시 출발선에 세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생각하면 까마득하기만 하다. 나에게 닫힌 마음을 보여줬던 아이의 구조적 문제는 빨리 해결된다고 해도 한 세대는 필요할 것이다. 당장 그 아이를 흔들어서 해결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빅또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에서 판결한 그 죄를 나는 안다. 


진정한 죄인은 그 어둠 속에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영혼 속에 어둠을 만들어놓은 사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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