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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Nov 23. 2017

[논어산문] 글쓰기, 책쓰기 강읠 덜컥 맡아버렸다

[논어산문] 글쓰기도 글쓰기 강의도 술이부작일 뿐

글쓰기 강의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한 편집자 선배의 한탄이 생각났다. 


매년 특정 시기만 되면 많은 출판사로 출판기획안이 날라 와. OOO글쓰기 연구소 같은 곳에서 수업을 받았던 수강생들이 보내는 것 같은데. 물론 거절률 백프로지.


세상을 진지하게 보려는 시선과는 거리가 먼 이른바 ‘자기계발’ 열풍이 출판의 현장에도 불어닥친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종종 보게 되는 출판사 관계자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책을 내는 도전을 해보았다는 사실증명에 위안 받는 게 목적이 아니라, 진짜 책을 내고 싶었다면 자신이 내고자 하는 책과 성격이 비슷한 출판사를 찾아보는 정도의 노력은 했을 것이지만 자기계발 사고방식은 그것에 관심이 없다. 나의 관심도 여기까지였다. 그런데 글쓰기 강의 제안에 당혹했던 까닭은 내가 닫은 문을 다시 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막상 생각의 문을 열자 책 쓰기 열풍에서 내가 읽지 못했던 흐름이 잡혔다. 꾸준히 성장한 독자라는 존재가 드디어 작가와 구분이 없어질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 나도 독자였고,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선량한 독자와 책을 쓰고자 하는 그들의 정당한 욕구에 정당한 대답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뜻밖의 글쓰기 강의 제안은 지금까지 내가 저질렀던 직무유기를 면할 기회를 준 것이었다. 


공자는 나를 작가로 키워준 사람이나 진배없다. 밀레니엄 즈음에 읽기 시작해 지금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논어』는 글쓰기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정리할 수 있게 해줬다. 공자는 가장 정직한 작가다. 그가 남긴 저작은 대부분 ‘편찬’이므로, 공자의 정식 직함은 ‘글쓴이’가 아니라 ‘엮은이’다. 그리고 사람의 감정과 자연의 모습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번역한 ‘번역가’이기도 했다. 강의의 제목이 ‘논어 글쓰기 수업’이 된 것은 당연했다. 요즘 유행에 맞게 ‘미친 강의’를 짰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수업 서두에서 수강생들에게 제시한 원칙은 두 가지였다. 


본 강의는 논어 강의가 아니라 글쓰기 강의니 ‘논어’는 알아서 읽으십시오. 
매주 과제가 나갈 텐데 과제를 내지 않으면 출석할 수 없습니다. 


물론 두 번째 원칙은 블러핑(Bluffing, 일명 ‘뻥카’)이었다. 그런데도 상대방들은 겜블러의 수에 완전히 놀아났다. 심지어 시와 산문을 써서 낭독하는 시간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한 수강생이 울먹이며 낸 한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이 강의 이상해!


술이부작은 "믿고 쓰는 옛것"을 뜻하는 신이호고를 수식한다.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옛것과 옛사람의 행적을 신뢰하는 입장은 상당히 영리한 방법이다.


공자는 철저히 술이부작(述而不作)을 일삼았다. 전달할 뿐 새로 창조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좋은 작가란 글을 뱉어내는 에너지 변환장치일 뿐이다. 에너지 변환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글이 독자의 손에 손을 거쳐 오랜 세월 살아남을 때 ‘시대정신’이라는 동력이 그 존재를 고한다. 나는 글을 쓸 때 종이만 보는 작가와 회견할 때 컴퓨터 화면만 보는 기자야말로 구태라고 생각한다. 컴퓨터 화면이나 하얀 종이는 ‘출력’의 대상이지 ‘입력’의 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여전히 작가에게는 ‘읽는’ 능력이 ‘쓰는’ 능력보다 요구된다. 다만 ‘읽는’ 범위와 성격의 다양성이 일반 독자보다 넓을 뿐이다. 자연을 읽고 시로 옮기는 시인들도 사실상 넓은 의미의 번역가들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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