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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Dec 13. 2017

'몇 권' 대신 '몇 분, 몇 번' 책 읽으면 좋은 점

메모 독서를 위한 새로운 독서 척도

'연말 독서결산'에서 놓치기 쉬운 독서 개념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행간에 머무르고 거주하는 것이다.
ㅡ 발터 벤야민


해마다 연말만 되면 '독서결산'이라는 제목의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2017년에는 100권 중 몇 권 읽었고, 2018년에는 인문교양 50권 도전, 100권 도전 따위의 제목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몇 권 읽었다는 말 자체가 무상하게 느껴진다. 만약 2017년에 55권의 책을 읽었다면 55라는 숫자가 나의 독서를 설명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특히 '메모 독서'를 할 때 '권 수'를 생각하면 그만두고 싶어질 것이다.


건강하고 지혜로운 독서 생활을 위해서 새로운 개념 도입이 필요하다. ‘접속 시간’ 또는 ‘회수’ 단위로 접근해보자. 책을 즐겨 찾는 웹 사이트라고 생각하면 쉽다. '권 수'로 독서를 생각하면 한 권 읽기도 전에 다음 책을 의식하지만 접속 시간이나 접속 회수로 생각하면 한결 여유롭게 독서를 할 수 있다. 예컨대 페이스북에서 페이스를 빼고 "북"에 접속한다면?


이 새로운 개념은 독서를 하는 목적에도 부합한다. 우리가 독서를 하는 목적은 많이 읽기 위해서인가? 자기 키만큼 많은 책들을 읽으면 내면이 풍요로워질 것인가? 그보다 현실적인 목표는 '내 마음의 한 줄'을 찾는 것 아닐까? 책을 읽다가 가슴을 울리는 한 줄의 문장을 만나면 책을 잠시 덮고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그 문장에 대해서 생각하고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본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독서의 모습 아닐까?


예전에 책 좋아하는 친구들을 따라 100권 읽기 도전 비슷한 걸 해봤다. 책을 읽는 내내 100이라는 숫자가 따라다녀서 독서에 집중할 수 없었던 조바심. 이렇게 다가 잃을 수도 있겠구나. 독서를. 마음이 조급해지고 권 수에 집착하게 되고, 정해진 기한이 다가오면 책을 읽는 건지 숫자를 읽는 건지 모르겠다. 만화책이나 얇은 책을 슬쩍 집어넣어서 억지로 권수를 맞추면 왠지 쓰라린 패배감이 들고 스스로 우습다는 생각에 슬펐다. 다시는 책의 권 수로 나의 독서를 재단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권 수를 가지고 독서를 하는 폐해는 이처럼 크다.



몇 권 대신 '몇 분, 몇 번'을 쓰면 달라지는 점


예전에 독서 취미를 갖고 싶어 하는 지인을 도와준 적이 있다. 독서를 하고 싶은데 바빠서 읽을 시간이 없는 일반적인 경우였다. 나는 이른바 '전투 독서' 또는 '틈새 독서'를 권했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 안,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이나 각종 짜투리 시간을 대비해서 뻗으면 닿을 거리에 책을 두고 틈틈히 읽으라고 했다. 만약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10분의 책을 읽었다면 10분이라는 독서시간이 내 생활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신기한 것은 독서시간이 점점 늘어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10분으로 출발하지만, 20분이 되고 30분이 되고 1시간이 된다. 어느새 독서가 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몇 분 동안 책에 접속했는지를 헤아리는 것은 독서 습관을 강화시키는 데 유용한 방법이다.


'몇 번'은 '몇 분'을 보완해준다. 오늘 나는 몇 번 책을 잡았는지 물어볼 때는 '혹시 한 번도 책을 안 잡은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유도한다. 이 척도는 독서가 0으로 빠지지 않게 하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책을 붙잡아 한 줄이라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루에 책을 10번 정도 보아야 한다는 기준은 물론 없다. 0이 아니기만 하면 된다.


위 척도에 따라서 독서가의 기본 독서량을 정리해 보았다.


독서가는 매일 0분, 0번에 빠지지 않는다.


메모를 하며 독서를 하다 보면 한 권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접속 시간으로 따지면 오히려 마음이 여유롭다. 메모를 하는 동안은 독서에 접속해 있기 때문이다.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메모를 할 수 있어서 독서 척도를 바꾼 셈이다. 굳이 메모 독서를 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몇 권 읽은 것이 자랑이 되지 않는 독서 생활을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에 내가 쓰는 독서 척도를 제안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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