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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Dec 14. 2017

독서의 다른 세상 '메모 독서'

경험자에게 듣는 '메모 독서'를 하게 된 까닭


선생님 따라서 초록/초서 12월부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독서의 다른 형태라 시간 낭비 아닐까 우려했는데  이건 정말 다른 세상이네요. 샘의 메모 독서 지지해요♡♡♡


나는 메모 독서에 관해서 별도의 책을 쓰지 않았다. 이것이 널리 알려야 할 방법인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내 주변의 친구들이나 SNS 이웃들에게 귀띔을 해준 적은 있다. 메모 독서의 개념과 방법을 자세히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기에 정수만을 남기려고 한다.한 지지자가 격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괜히 우쭐해진 나는 좀더 구체적으로 느낀 점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착한' 메모 독서 지지자는 정말 상세히 반응을 알려주었다. 그의 말 속에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다 담겨 있으니 그의 발언을 중심으로 삼고, 주석을 달아보겠다.


작가님 부탁에 부끄럽지만 그럼.. 짧게 피드백 남깁니다.
나이가 들어 독서를 하니 좋아하는 책을 신이 나게 고개까지 끄덕여 가며 읽습니다. 그런데 막상 책을 덮으면 방금 읽은 책의 일부분이나 두어 문장 정도만 머릿속에 남더라구요.
줄거리를 설명하려고 해도 기억 나는 몇 장면을 떠올려 제 언어로 살을 붙이는 정도가 다 였어요. 내가 작가의 의도를 잘 이해한게 맞는지 의심도 하기도 했구요.


책을 읽을 때의 기쁨은 책을 덮는 순간 사라져야 할까? 그 기쁨을 좀더 오래, 좀더 강하게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아쉬움이다. 다시 보기를 하려면 처음부터 읽어야 하니 시간도 아깝고 책을 다시 펼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다음에 읽을 책이 독촉을 해오기 때문이다.



메모하며 읽으니 장면 하나 하나가 머릿 속으로 그려지고 상상력은 배가 됐어요. 물론 기억은 더  오래가구요.



요즘은 '야동'을 많이 보지만, 예전에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야소설' 또는 '야설'을 많이 봤다. PC통신으로 한글 파일을 다운받으면 프린터 있는 아이의 집에서 출력해서 반 아이들이 돌려보는 식이다. 물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포르노' 같은 것도 안 본 것은 아니지만, 야소설이 야동이나 포르노를 압도했다. 텍스트에 비하면 영상은 밋밋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이 텍스트의 힘이다. 메모의 힘은 배가된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메모는 텍스트에 텍스트를 더한 것이기에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 예를 들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을 때마다 옮겨 적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처음 읽을 때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우리 엄마 생각도 나고. 이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거나 읽었던 사람이라면 한번 다음 구절을 손으로 옮겨 적어 보자.


엄마가 몹시 불쌍해 보였다. 엄마는 태어나면서부터 일만 했다. 공장이 들어서던 여섯 살 때부터 일을 했다. 사람들이 엄마를 작업대 위에 올려놓으면 엄마는 쇠붙이를 닦고 훔쳐야만 했다. 너무 어려서 혼자 내려올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위에서 소변을 보았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너무 마음이 아파서 내가 커서 시인이 되고 만물박사가 되면 꼭 내 시를 읽어드리겠다고 맹세했다.
ㅡ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본문


눈으로만 읽었을 때와 메모를 했을 때는 감동의 크기가 다르다. 감동적이거나 슬픈 구절을 메모할 때는 마치 심장 노트에 펜으로 힘주어 또박또박 글을 적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 갈매기의 꿈을 다시 읽었는데 한 두 문장으로만 기억하던 책이 끝까지 읽고, 기록하고, 내가 쓴 걸 다시 읽어보고 책의 처음으로 돌아가  첫 문장"우리 모두 속에 살고 있는 진정한 조나단 갈매기들에게..."을 만났을 때의 감동은 그 어떤  영화보다 진하게 남을 것 같습니다.


메모 독서를 하고 나서 숨막히는 반전과 감동은 메모를 다시 읽을 때 찾아온다. 이미 읽었던 글을 읽는 게 얼마나 감동이 있느냐고? 메모를 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메모는 두꺼운 책 가운데 선택된 구절에 보낸 독자의 찬사라는 사실을. 만약 메모한 부분을 당장 찾으라고 한다면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메모한 부분을 다시 읽었을 때 깊은 감동이 다시 한번 재현된다.


저는 다독이 정말 필요한 사람인지라 다독에만 혈안이 되었었는데 좋은 책을 만났을 때는 잠시 멈춰서 책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글자를 통해 작가와,인물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 그들이 내 안에 더 오래 머물게 해야겠구나 싶었어요. 그것이  제가 메모독서를 따라하는 이유랍니다^^;


메모 독서의 지지자는 다독에서 '지독(遲讀 : 슬로 리딩(slow reading)이라는 개념으로 『일식』의 작가인 히라노 게이치로가 『책을 읽는 방법』(원제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에서 제안한 개념)'으로 넘어갔다. 현대의 독서가 도시를 걸어가는 느낌이라면 메모 독서는 오솔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느낌이다. 독서를 하면서 좋은 것이 내 안으로 들어오면 잠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기듯, 좋은 구절을 찾으면 메모장에 베낀다. 묵상은 느낌만 남지만, 메모는 생생한 느낌과 기록이라는 보너스가 하나 더 남는다. 독서를 했던 메모의 경험은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는 나만의 소중한 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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