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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Dec 15. 2017

나도 메모 독서를 한번 시작해볼까?

메모 독서를 처음 하는 독자를 위한 첫 번째 안내서

A3/A4용지의 변신


메모 독서 20년. 하지만 누구든 만약 나처럼 메모 독서를 한다면 1년은커녕 한 달도 못 버티고 그만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나는 수도승처럼 메모했으니까. 그건 고행이지 메모가 아니었다. 이 글은 독서를 어느 정도는 하는 사람 중에서 독서 방법을 좀 바꿔보려 하거나, 새로운 독서 방법에 흥미있는 이들을 위한 작은 선물이다.


20년 동안 별의별 메모 도구를 다 써봤는데 지금은 A4나 A3를 접어서 사용하고 있다. 이 방법의 강점은 첫째, 책갈피 대용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은근히 책갈피가 없어서 명함이나 영수증 같은 것으로 책갈피를 삼고 있지 않은가? 메모지는 전광판 겸 책갈피이므로 한동안 독서가 끊겨 있었다면 전광판을 미리 보는 것으로 놓친 진도를 바로잡을 수 있다. 일거양득 아닌가?


두 번째 강점은 보관의 용이함이다. 메모를 어디에 둘 것인가는 은근히 고민거리다. 노트에 메모하다가 메모장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메모와 책이 분리되기 때문에 앞뒤 문맥을 살피고 싶을 때 아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메모를 접어 책에 꽂아두고, 책장의 일정한 공간에 보관하면 생각날 때마다 책을 펼치고 메모를 확인할 수 있다. <글쓰기의 최전선>을 쓴 은유 작가는 문장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좋은 문장의 저수지로 삼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글에 주옥 같은 문장과 작가들의 말이 능숙하게 소환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글쓰기를 위한 '문장 은행'처럼 사용하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독서'를 위한 방법이니까 관점의 차이가 있다.



처음부터 다 메모하지 말고 좌표만 표시하라


메모의 꽃이 좋은 문장 베껴쓰기인 것은 맞지만 처음부터 덤비다간 제 풀에 지칠 수 있다. 처음에는 '좌표'만 적는 것으로도 메모 노트는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예컨대 아래의 문장을 다 쓴다고 생각해 보자.


"관념적이고 모호한 표현을 피하세요." 글쓰기 수업에서 학인들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중략) 그렇게 몇 편 써보면 스스로 안다. 자기 글이 남들에게 안 통한다는 사실을. - 『글쓰기의 최전선』, 160쪽


나는 메모에 이렇게 쓴다.


160("관념적이고~사실을.)


위 말은 <글쓰기의 최전선> 160쪽에 있는 글 중에서 "관념적이고"에서부터 시작해 '사실을.'로 끝나는 부분이라는 뜻이다. 이 정도만 표시해도 충분하다. 이 표시의 진가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빛난다. 책을 다 읽고 표시해둔 좌표를 '다시 읽기'한다. 그 중에서 아직도 가슴을 뜨겁게 하는 문장들을 선별적으로 베껴쓰기한다. 이렇게 하면 베껴쓰기 때문에 지치는 일은 없다.


"평양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속담처럼, 아무리 가치 있고 훌륭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동기'를 다치게 하면 지속성이 떨어진다. 메모 독서를 처음 시작하는 이들은 좌표를 표시함으로써 가독성을 잃지 않고 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책을 보면서 메모를 할 수 있다.


처음 메모 독서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한 가지 덧붙여둘 것이 있다. 메모가 언제 어떤 동기로 작성되었는지를 간단히 적어둘 필요가 있다. 나는 메모의 처음에 반드시 읽은 날짜를 쓴다. 그리고 읽다가 한 달 넘게 지났다면, 다시 읽기 시작한 날의 날짜를 적어둔다. 그리고 작가 이름, 제목, 출판사, 출간년도를 쓰고, 맨 마지막에는 완독한 날을 써둔다. 메모가 책과 분리되면 책에 대한 정보를 보면서 내용 파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필이지만 독서 메모장의 앞면을 공개한다. 맨 윗부분에 책에 대한 정보와 독서 시점을 표시했다. 중간에 좌표만 표시한 부분도 있고, 짧은 문장은 통째로 베껴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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