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승주 작가 Apr 18. 2017

한국 유권자에 대한 정치인들의 인식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올림피아 경기에서 승리의 월계관을 쓰는 사람은 가장 멋있고 힘이 센 사람이 아니라 경기에 직접 참가한 사람들인 것처럼, 올바르게 행위하는 사람이 삶에서 고귀하고 좋은 것들을 실제로 성취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한국에서 '정치'라는 상품이 구매되는 패턴


한 사람에게 인생이 있듯, 민족과 인류와 지구에도 나이가 있다. 나는 한국의 유권자를 한 사람으로 치면 몇 살쯤 되었을까 상상한다. 이제 사춘기에 들어갈 나이 정도 되지 않았을까 한다. 변덕이 심하니까. 만약 대선이 임박한 지금 이 순간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다면 당신은 정치적으로 사춘기 소년소녀 정도의 정신연령인 셈이다. 정치환경은 유권자가 끝내 만드는 것이다. 5년에 집착하면 50년을 잃을 것이다. 뉴타운 총선 공약, 4대강과 성공한 CEO, 전설적인 전임 대통령의 후광을 입은 여성 대통령. 표심이 왜곡되었다 싶을 때가 있지만 그거야 야권이 지리멸렬해졌기에 작용 반작용의 영향도 적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쏠림'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양보할 수 없는 신념이나 취향이 있기 마련이다. 당연히 선거 결과에서도 고유하고 독특한 영역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는 그런 게 없다. 녹색당과 각종 진보 정당들은 마치 정치 세미나 동호회 정도로 취급돼 버린다. 사회적 화두는 존중하고 의존하면서 정작 정치 행위의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겠는가. 유권자 마음속에 자기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 대신 허위와 가식, 위선이라는 틈새가 있기 때문에 보수 정당들이 비집고 들어가 정치를 왜곡한다. 이런 행태가 여러 차례 반복되면 그만 질려버린다.

 

'공정무역'이라는 개념이 점점 부각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쇼윈도에 멋지게 진열된 상품이라면 살인자가 만들었든 조폭이 만들었든 지옥 같은 착취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소비자의 선택과 무관하게 상품이 만들어진 과정은 시장경제 전체와 소비자의 일상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우리가 생각 없이 상품을 구매하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부당한 생산 과정'까지도 구매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 관행도 이런 식이다. 정치인들이 유권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는가? 나는 뉴스를 보면서 매일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껴서 뉴스를 거의 끊어버렸다.



순간의 고통과 즐거움을 끊어라!


행복을 최고의 목표로 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우리가 얕게 생각하는 행복과는 다른 진정한 행복의 진수를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으며 비교적 맑아진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유권자의 문제를 정치인에게 묻고, 언론의 문제를 유권자에게 묻고 있었다. 주소가 틀려도 제대로 틀린 것이다. 유권자가 정치인 눈치를 보는 것도 괴이하다. 정치인은 유권자 자신이다. 유권자가 정치인 눈치를 보면 정치인은 교만해지고 유권자를 노예 다루듯 한다. 유권자가 자기의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했다.


우리 시대의 최대의 적은 '즐거움'이다. 독재 시대에 싸웠던 분노와는 차원이 다른 적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즐거움과 싸우는 것이 분노(thymos)와 싸우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전두환은 즐거움의 힘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일찍이 3S(Screen, Sports, Sex) 정책을 한 걸 보면.


즐거움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들 모두와 더불어 자라 왔다. 이런 까닭에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든 이 감성을 떨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나쁜 일을 행하는 것은 즐거움 때문이며, 고귀한 일을 멀리하는 것은 고통 때문이다. 한국 유권자가 취약한 것은 고통과 즐거움이다. 유권자의 정신 연령이 사춘기를 넘지 않았다는 게 단숨에 증명된다. 다르게 말하면 한국에서 정치하는 자들은 고통과 즐거움으로 유권자를 조종해 왔다는 말이다.


모든 유권자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유권자와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싶다면 필독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철학자다. 그가 말하는 행복 역시 중용과 절제의 행복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매력적인 이유는 단순하고 상식적이라는 점이다. 일상생활과 제법 어울려서 반감도 압박감도 적다. 중용을 인간생활 모든 차원에서 적용하는 묘미가 있다. 예컨대 잘 자라서 가족을 이루고 애 키우면서 사는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독자다.


고대 그리스의 가장 모욕적인 말은  "친족도 없고 법률도 없고 가정도 없는 자"(호메로스가 한 말)일 것이다. 국가가 없는 자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으니까. 인간은 사회적 본능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다. 하지만 인간의 사회적 본능이 꽃핀 적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사회적 본능의 실현은 오늘날의 핵심 과제다. 시대정신에 민감한 눈 밝은 독자는 《나코마코스 윤리학》으로 스스로의 영혼을 정화해봄직하다. 아리스토텔레스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논어가 말하는 정치는 우리 생각과는 다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