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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Apr 17. 2017

논어가 말하는 정치는 우리 생각과는 다르다

<논어> '위정 편'으로 한국정치 기본 마인드를 이해할 수 있다

논어에서 말하는 '정치'는 우리 같은 흙수저에게는 해당사항 없으며, 우리가 논어를 읽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훔쳐보기'에 불과하다


공자의 정치적 위상


성균관대학교 학내에는 대성전(大成殿)이라는 전각이 있다. 공자를 중앙에 모시고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5성과 공자의 지혜로운 10명의 제자들과 한중 양국 111명의 현인()들, 그리고 한국의 18현인(설총(薛聰) ·최치원(崔致遠) ·안유(安裕) ·정몽주(鄭夢周)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이이(李珥)·성혼(成渾)·김장생(金長生)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박세채(朴世采) ·조헌(趙憲) ·김집(金集) ·김인후(金麟厚)를 모셨다.


공자에 대한 시호는 왕조가 거듭되면서 늘어났는데 '왕'까지 추존될 정도였다. 당나라 현종이 문선왕(文宣王)으로 추증하였고, 원(元) 성종(成宗) 때인 1307년 대성(大成)이라는 두 글자를 덧붙여 오늘날의 시호인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이 확정됐다. 청나라 옹정제는 공자의 별칭인 '생민미유(生民未有)'를 현판에 새겨 대성전에 걸었다. <맹자>에 나오는 원문은 "사람이 이 땅에 난 이래 공자 같은 이는 없다."(自有生民而來, 未有孔子也)인데 그 중에서 네 글자를 딴 것이다. 특히 원나라와 청나라가 공자에 대한 추증이나 찬양에 열심인 까닭은 정권의 정통성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이민족 출신 정권일수록 정통 한족을 달래야 하므로 공자와 유교 경전을 많이 활용했다. 청나라 시절 조공에 몇 배에 달하는 하사품을 내려야 하는 관례 때문에 재정이 휘청거려 청 조정에서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조선의 사신이 <중용>의 구절을 언급하며 이를 제지했다.  "후왕박래는 연희와 하사는 후하게 하고, 공물을 바침은 박하게 함을 이른다"는 뜻의 '후왕박래(厚往薄來)' 네 글자다. 청나라가 정통성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조선의 외교관은 실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청나라의 약한 고리를 건드렸다.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논어>뿐만 아니라 주희가 편찬한 사서(논어, 대학, 중용, 맹자)를 달달 외면서 내면화했다. 그러니까 <논어>에 나와 있는 정치에 대한 견해가 '공론'이 된 것이다. 한국정치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논어>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와 <논어>가 바라보는 정치가 다르다. 오늘날 우리는 <논어>의 전통과 단절돼 있을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 수입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치 관념을 일반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성이 생긴 이래 공자와 같은 이는 없다"는 말로 <맹자>에 나온 구절을 청나라 옹정제가 현판에 새겨 대성전에 걸었다



<논어>가 생각하는 '정치'


우리가 고전, 특히 고대의 문헌을 볼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국민이나 평민에 대한 계급관념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100명의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 있다고 했을 때 플라톤은 그 중에서 뛰어난 10인을 대표로 뽑아서 번차례로 다스리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100명을 추첨해서 누구나 다스릴 수 있게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주의에 가깝지만 100명의 시민 뒤에 1만명의 노예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도가 아리아인이 원주민을 정복해서 세운 나라이듯, 그리스는 도리아인이 원주민을 정복해서 세운 도시국가다. <논어>에서 생각하는 독자 역시 귀족 계급 이상 왕까지이다. 일반인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반 독자들이 역사에 대한 인식과 고전에 대한 비판정신을 잃을 때 자기가 귀족인 줄 착각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논어>가 말하는 정치는 귀족 가문이나 왕가의 '가족' 문제였다. 가부장 그 자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논어>의 '위정 편'은 정치에 관한 내용들이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 않지만 사실 위정편의 내용들이 동양 정치의 기본 조건일 수 있겠다는 사실은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되었다. '위정 편'에서 '정치'에 관한 의미심장한 기록이 있다.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왜 정치를 하지 않으십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서경>에 '효행 자체가 전부와 같으며, 형제 간의 우애만 있다면 정치에 막대한 이로움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꼭 정치가가 되어야만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니 나 또한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자의 부모 형제가 서로 친해야 반란이 일어나지 않고, 백성들이 부모형제 간에 화합해야 다스리기 쉽고 특히 관리하기가 쉽다. 가부장제도가 제도화된 것은 일제시대다. 가족 중에서 남자 어른하고만 대화하면 관리의 효율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논어> '위정' 편은 보수적인 귀족 집안에서 자라난 사람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보아야 할 지침서 성격인 것이다. 가장 먼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동료들과 화합하는 방식을 집중적으로 강조한다. 아는 것과 본 것에 대해서도 무척 보수적인 시각을 강조한다.


자장이 공직생활의 비결을 여쭈었다. 공자가 말했다. 많이 듣되 의심스러운 것은 미뤄두고 확실히 아는 것만 말하면 비난받을 일이 적다. 널리 보되 의심스러운 것은 뒤로 미루고 자신 있는 것만 실천하면 실수가 적다. 비난이 적은 말을 하고 실수가 적은 행동을 하면 공직생활의 처세는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고전을 보는 관점은 '메타'적이어야 한다. '메타 인지'는 곧이 곧대로 보지 않고 오늘날의 실정에 맞게 필터링해서 보는 것이다. 비난할 것도 없고 곧이곧대로 들어야 할 것도 없다. 정치에서 '가족'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지금도 절대적이라는 면에서 <논어> '위정 편'의 메시지는 충분히 존중할 가치가 있다. 당대의 정치교과서를 평민이 볼 일은 없었을 것이기에 귀족의 입장에서 쓰인 것일 뿐이라면 논어가 고려하는 예상 독자에 본인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별 유감이 없을 것이다. 나는 <논어> '위정 편'의 메시지를 그대로 수용하되, 우리나라의 명문 집안의 자제들이나 고위급 공무원들이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 가늠하는 척도로 쓴다. <논어>는 확실히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효용성이 떨어지지만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데는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이것이 <논어>를 읽는 정치적 잇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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