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독서 도구의 장단점
※ 이 글은 1998년~현재년까지 햇수로 20년 동안 책을 읽으면서 고민했던 방법을 담은 것 입니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노트에 옮겨 적었습니다. 가장 무난한 메모 독서법으로 추천하는 것도 노트 독서입니다. 왜냐하면 아끼는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책 속의 소중한 문장을 채집하는 게 가장 쉽고 독서생활에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 남다른 독서 욕심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노트를 들고 다녔을 것입니다. 예전에 썼던 노트들을 지금도 가끔 들여다보며 당시의 고민을 추억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 방법의 단점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찾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썼던 노트는 어딘가에 보관하고 들고 다니는 노트는 1권입니다. 좀더 오래 전에 적어두었던 메모를 찾으려면 여의치 않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 꺼내볼 수 있는 메모를 추구했기 때문에 노트와는 결별했습니다.
지금은 어렴풋이 기억만 남아 있는 견출지 독서. 읽었던 내용에 표시를 해두고 필요할 때 찾아보는 거죠. 가끔 이런 방법으로 독서를 하시는 분을 보면 반갑습니다. 하지만 저는 짧았던 추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견출지는 너무 번잡하다는 이유로 바로 퇴출되었습니다. 미적으로도 상당히 안 좋죠. 시간이 지날수록 견출지가 구겨지고 떼지고, 혹시 헌책방에 팔기라도 하는 날에는 일감이 하나 더 늘어나죠. 좋은 추억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 견출지에게 유감을 표합니다. 견출지가 꼭 쓰임에 맞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A3를 두 번 접거나, A4를 한 번 접으면 웬만한 책에는 다 들어갈 정도가 됩니다. 신국판(225*152mm)에는 살짝 넘치고 230*160mm에는 딱 맞습니다. 독서를 할 때는 은근히 책갈피 하나가 아쉽습니다. 급할 때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다가 책갈피 대용으로 삼았다가 급히 명함이 필요하면 사라져 있는 안타까운 기억이 있죠. A3 메모 독서지는 책에 꽂아 두고 쓸 수 있기 때문에 책갈피로 손색이 없으며, 책과 함께 보관되기 때문에 서가에 책이 꽂혀 있으면 마치 부록처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저는 메모량이 많은 편이어서 A4를 쓰면 여러 장이 소모돼 아예 A3를 두 번 접어서 쓰고 있습니다. 버스정류장의 전광판이 내가 탈 버스가 5분 후에 온다고 알려옵니다. 저는 책과 클립보드(에 고정한 독서 메모지)를 꺼내서 부지런히 씁니다. 긴박한 짜투리 시간이야말로 제가 하루 중에서 가장 집중하는 때이며, 가끔 독립운동을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필기도구는 삼색볼펜을 사용하는데 파란색은 베껴쓰기, 빨간색은 요약이나 아이디어 등 한줄 코멘트를 답니다. 요즘은 빨간색을 쓰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다시 보기를 할 때는 빨간색만 보게 되니까요.
물론 아무 정보나 책에 넣는 건 아닙니다. 넣다 보면 A4 한장이 금세 찹니다. <미디어의 이해> 같은 대작이나 고전이 아닌 바에야 A4 한장을 넘어가면 정보가치가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메모장에 한줄 한줄 넣는 행위는 "단순한 책의 정보를 '나의 정보'로 변환시키는 과정"이 됩니다. 정보 홍수에서 내게 필요한 정보를 고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독서 과정에서 내게 필요한 부분을 선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책은 비로소 내 것이 됩니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요. 독서 메모지 중에서 선택 받은 책은 엑셀파일로 재작업합니다. 어릴 적 친구들이 컴퓨터 게임할 때 저는 차가운 방에서 한메타자를 게임 삼아 했던 쓸쓸한 경험이 빛을 발하죠. 제 워드는 빛보다 빠르지는 않지만 독서 메모를 능숙하게 파일화하는 정도는 됩니다. 아이들에게 워드 연습을 시켜놓으십시오. 이로운 일이 많을 겁니다.
독서노트가 엑셀파일로 옮겨간 가장 큰 이유는 "검색" 때문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의 키워드 하나만 검색하면 그 부분이 내 눈앞에 자세히 나타나니 수십권의 책을 읽어도 정확하게 책을 인용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놀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이런 문장들이 나오죠.
고상한 사람들은 놀이 삼아 말하고 듣기에 적합한 어떤 것이 있으며, 자유인의 놀이와 노예적인 사람의 놀이에는 차이가 있고, 교육받은 사람의 놀이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놀이에도 차이가 있다. - 《니코마코스 윤리학》
사소하고 일상적인 활동으로부터 독특하고 즐길 만한 게임이나 춤, 놀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뛰어난 창의성을 발휘하여 특별한 체계나 리듬을 만들어내어 그것에 따른다. 그럼으로써 상투적인 일과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체험을틀이 잡힌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 수 있음을 베르트하이머가 지적하기도 했다. - A.매슬로 《동기와 성격》
어떤 책 같은 경우는 아예 삼켜야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전에 사전을 한 장씩 씹어먹었다는 추억처럼 글의 문장들이 나의 뇌에 강력하게 각인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끝에 여러 단계의 반복 읽기가 고안되었습니다.
1. 책 읽기 2. 메모하며 읽기 3. 메모를 엑셀로 옮기기 4. 엑셀파일을 출력해서 오탈자 잡기.
1~4의 단계를 반복하면 책이 심장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느낌을 책을 쓰거나 문장을 소환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마치 호위무사처럼 어딘가 있다가 내가 요청하면 번개처럼 나타나는 문장들. 글을 쓸 때는 5의 방법을 씁니다. 출력을 해놓고 뚫어지게 보면서 원고를 씁니다. 처음에는 출력해서 읽었던 종이에 표시를 하죠. 이 부분은 어떨 때 쓸 것이고, 어떤 근거에 포함되어야 하고, 어떤 주장의 예시로 쓰겠다는 표시를 해둡니다. 모든 표시가 채택되는 건 아니지만, 표시를 하면서 저는 머릿속으로 원고를 그립니다.
눈 밝은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제가 소개한 독서 방법 안에 공통적으로 담기는 특징은 '반복적으로 읽기'입니다. 한 단계 한 단계의 과정이 모두 독서 행위입니다. 다음과 같은 맺음말로 결론을 삼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독서는 두 번째 읽을 때부터 시작된다. 처음 읽는 순간은 단지 '검색'(또는 '탐색')일 뿐이다.
※ 매거진 메모 독서 20년에 관심을 주시는 분들을 위해 조그만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엑셀에 하는 데이터 독서에 관심이 있거나, 샘플파일을 받고 싶은 분들은 댓글에 메일 주소를 입력해 주세요. 또는dajak97@hanmail.net 이메일로 문의 바랍니다. (사연을 함께 적어주시면 매거진 에 반영할게요. 함께 고민을 해결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