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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Jan 14. 2018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이라는 말이 불편하다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30년 대장정" 선포를 제안한다


제주도에 폭설과 한파가 몰아쳐 도로가 꽁꽁 얼었을 때 나는 아버지 기일 때문에 제주시에서 성산포로 가고 있었다. 일주도로를 탔어야 하는데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서 연북로로 빠지는 바람에 한 시간 넘게 거북이 걸음을 해야 했다. 도로에는 차가 차도 옆으로 낙오되거나 오르막길에서 헛바퀴질을 하기는 했지만 큰 사고는 없었다. 정말 큰 사고는 이틀 후 평화로에서 있었다. 온도가 다시 오르고 눈이 녹자 도로의 눈이 서서히 녹아서 자동차들이 정상속도로 달리던 그 순간이 가장 교통사고가 많았고 피해가 컸다.


서귀포 수업 때문에 애월에서부터 평화로를 차 몰고 가다가 나도 속도를 좀 높였는데 도로에 미처 녹지 않은 구역을 지날 때는 차체가 기우뚱하면서 섬찟한 순간도 있었다. 나는 다시 눈 구역이 나올까봐 정상속도보다 조금 느리게 차를 몰았다. 돌아오는 길에 참혹하게 망가진 두 대의 자동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 빙판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을 정도로 완파되어 있었다. 범퍼는 흔적도 없고 보넷은 속을 드러냈고 강판은 엿가락처럼 기울어져 있었다.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사고가 났다는 흔적이 명백했다. '해빙기의 함정'을 제대로 본 하루였다.


역사적으로는 '해방 공간'이 '해빙기'와 비교할 수 있다. 빼앗겼던 나라를 자주적으로 세우려고 했던 수많은 열망은 끊임없이 좌절되었다. 한줌의 세력에 불과했던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마치 상륙작전을 벌이듯 대한민국의 뜻 있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극우 정권을 만들었다. 해빙기에 터져 나온 열망은 뜨거웠지만, 냉정함이 부족했다. 이런 역사적 패턴은 반복된다. 노무현 정권과 문재인 정권에 담긴 열망도 뜻하지 않은 '해빙기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30년 대장정" 선포를 제안한다

 

네이버 뉴스 검색에 "제주4.3의 완전한 해결" 키워드를 입력하자 1600여개의 기사가 떴다.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이라는 때아닌 담론이 뉴스를 달구고 있다. 대한민국 100대 과제에 선정되었고 올해가 제주4.3 70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흐름을 보면서 평화로에서 보았던 교통사고를 떠올렸다. 


비록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최소 30년 이상 지나지 않으면 따뜻함이 세상을 감싸지는 못한다. - 《논어》, 「자로」 편


세상은 그렇게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빠르게 변화하는 건 사람의 마음일 뿐이다. 미래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그런 의미로 보면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이라는 말은 언감생심 공연불에 불과하다. 축구경기로 따지면 3:7로 지고 있는 경기에서 만회골을 하나 넣었을 뿐이다. 아직도 4:7이다. 하지만 기분은 마치 승리한 것 같다. 사실은 이 때가 추가골을 먹기 가장 쉬운 위험한 순간이다. 공자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열망을 식히면서 순간 순간 자신이 할 일을 했다. 덕분에 세상은 공자가 생각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었다. 이에 비해서 자로는 성급하고 너무 곧은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공자는 자로의 급한 성향을 억누르기 위해 평생 애썼지만 자로의 비참한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하루는 자로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로는 제 명에 죽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다"(「헌문」 편)라고 우려를 표시한 적이 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말처럼 자로는 위나라 정변을 막으려고 몸을 던졌다가 죽임을 당해 젓갈 재료가 되어버렸다. 


생전에도 자로의 성급함은 공자의 비난을 받았다. 언젠가는 후배 자고를 노나라 비읍의 지방장관으로 추천했다가 공자의 비난을 받았다. "남의 귀한 자식을 망치려고 하느냐?" 자로는 이렇게 대꾸했다. 


백성을 다스리고 영토를 수호하는 큰 일이 있습니다. 어찌 꼭 책을 읽어야지만 학문한다고 하겠습니까? - 《논어》, 「선진」 편


자로의 성급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공자는 화가 나서 "이래서 말 잘하는 사람이 싫은 거다"라고 짜증을 냈다. 칠조개라는 제자는 자로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공자를 흐뭇하게 했다. 스승이 벼슬할 것을 권하였지만 오히려 "저는 아직 충분한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사양했다. (「공야장」 편) 공자가 만약 "4.3의 완전한 해결"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분명히 서두른다고 하지 않았을까?



4.3의 완전한 해결은 다음 세대의 몫으로 남겨두자


나는 4.3의 완전한 해결은 70주년이 아니라 100주년에 비로소 현실화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87년에 독재정권을 물리치고 민주화를 달성했을 때만 해도 민주화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30년이 지나자 절차의 민주주의만 달성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만약 30년 후에 "4.3의 완전한 해결"이라는 이야기를 접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좀 민망해질 것 같다. 


나는 어린이, 청소년들과 함께 제주4.3에 대해서 이야기를 즐겨 나눈다. 치우치지 않고 사실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순수한 감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을 역사가인 것처럼 대하고 쉬운 말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세대는 누구도 한 쪽으로 쏠리지 않을 도리가 없기에 진보와 보수 양쪽이 납득할 만한 주장을 세우기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굴레가 없기 때문에 자유롭다. 문제는 제주4.3의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하는 것인데, 이것 역시 쉽지 않다. 제주4.3 문제가 다음 세대에는 주된 관심사에서 멀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얼마 전에는 두 편의 동시를 아이들과 함께 만들고 그림을 입혔다. 《나무 도장》이라는 그림책을 읽고 떠오르는 느낌을 자유롭게 말하게 했고, 그것을 가지고 시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제목을 정하고 그림을 입히는 일을 했다. 일종의 공동창작인 셈이다. 



이 두 편의 시화를 아이들과 작업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단초라고 생각했다. 나무 도장이 흘리지 못하고 맺히기만 한 눈물을 아이들이 콸콸 쏟아내 주는 그 날을 위해서 어른은 어른이 할 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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