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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승주 작가 Jan 18. 2018

'오승주'라는 사람

소개글이 필요해서 남겨둡니다

저는 다니엘 블레이크처럼 엄청나게 강렬한 소개글은 쓰지 못합니다.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자랑할 것이라곤 '성산일출봉'뿐 없습니다. 제주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매일 일출봉을 보면서 자랐거든요.


1. 죽을 아기


아기 때 많이 아팠어요. 세 살이 되기 전에 급성폐렴과 림프성 결핵, 그리고 대정맥 절단을 앓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 병이 제 인생을 결정한 것 같아요. 제 이웃집 아이는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 아이 부모님은 동네에서 약 사다 먹이고, 제 어머니는 저를 안고 서울대병원에 가셨어요. 동네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죠. "살 아기는 죽고, 죽을 아기는 살았다"고. 저는 죽을 아기였지만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과 가세가 기울 정도의 돈을 쓰고 살아났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 삶의 값을 누군가 대신 치렀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그만큼 절박하게 사는가 묻는다면 부끄럽지만요.


2. 소리 없는 장난꾸러기, 놈팡이 어린 시절


시골의 어촌에서 자란 아이들은 놈팡이가 많습니다. 바다가 면해 있지 않은 성산읍 관내 친구들은 휴일에도 부모님 따라 밭에 간다 과수원 간다 바빴지만 저희는 놀았어요. 놀면서 나쁜 짓도 많이 했죠. 노름하기, 전자오락실 다니기, 문방구 털기. 저는 평생 떨어야 할 지랄을 그 시기에 다 떨었습니다.


3. 대학 시절, 문학동아리, 그리고 전과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동시를 썼어요. 몸이 약해서 친구들처럼 오래 뛰놀 수 없었죠. 그때 소원이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거였어요. 아이들이 축구하는 거 구경하면서 한켠에 앉아 있다가 꽃도 보고 새도 보고, 바람도 봤어요.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태극기를 펄럭이는 바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계속 시를 썼어요. 좋은 시 선배, 시 선생님들도 많이 만났고요. 대학은 공대로 들어갔지만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국어국문학과에 전과했고 철학을 복수전공했죠. 그 당시 도서관에서 밑줄치면서 메모하면서 인문고전 많이 봤어요. 다른 사람들은 중학교 때 공부한 실력으로 먹고산다고 하는데, 저는 대학 시절 읽었던 인문고전 덕에 먹고사는 것 같아요.


4. 뒤늦게 투쟁가가 되다


대학 시절 노무현 VS 이회창 대통령 선거가 있었어요. 저는 노사모도 몰랐고 정치에 관심도 없었어요. 그저 책만 읽었고 학생회장 형이 자꾸 저 잡으러 다녀도 도망다니기 바빴어요. 1996년 연세대 사건 이듬해에 대학에 갔으니 그 분위기 말 안해도 아시겠죠? 1997학번. 그런데 대학 졸업 후 서울생활하면서 저는 투쟁가가 돼요. 군 생활 때 밑줄 긋고 스크랩하면서 읽었던 경향신문의 사설 하나가 제 인생의 방향을 바꿨죠. 제 인생의 성지글입니다.  

[사설]기자 없는 파행 발간, ‘시사저널 사태’에 주목한다


저는 글을 보고 바로 프레스센터로 달려가서 시사저널 기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1년을 같이 싸워 시사in 창간을 보고 돌아갔죠.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어요. 이명박 정부 때 쇠고기 사건 생기고 '촛불'이 시작되었잖아요. 저는 2개의 언론시민운동 단체에서 운영위원을 하면서 2010년까지 언론운동을 했어요.


5. 가족을 잃기 직전에 아이의 호소를 듣다


작가로서의 탄생은 바로 이 지점부터입니다. 사업이 잘 안 되었지만 회사에 붙잡혀 집에 들어가지 못하던 어느 주말.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갔다가 침대 위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민준이(당시 네 살배기)를 보고 옆에 앉았습니다. "민준아 왜?" 하고 묻자 민준이는 "아빠랑 놀고 싶은데, 아빠는 나가 버려."라고 대답했습니다. 벌써 6~7년 전의 일인데 마치 복음처럼 저를 완전히 바꿔놓은 한마디였어요. 좀 힘들었지만 제 주변을 완전히 정리하고 아이와 가족에게 가까워지는 방법을 모색했어요. 제주도로 이주한 것도 자연스러운 후속 조치였습니다.


가족의 문제가 과연 나에게만 해당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가족들이 안고 있는 문제이면서, 사회구조적 문제이기도 하잖아요.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인생을 걸기도 좋다고 생각하고 가족 문제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아이를 생각하면서 그림책도 읽고 인문고전도 읽자 전혀 새롭게 읽히기 시작했어요. 2013년 《책 놀이 책》(이야기나무)을 쓰고 많은 부모님들을 만났어요. 감정 문제에 많이 괴로워하시는 게 안쓰러웠습니다. 우리 세대가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감정 문제가 아이들에게는 목숨보다 더 중대한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세를 고쳐앉아 파고들었어요. 제주에 와서 3년 정도 공부방을 하면서 학습이 부진한 아이, 가정환경이 위태로운 아이, 억압적인 환경에 괴로움 당하는 아이,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 등 크고 작은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는 아이와 그 가족을 오랜 시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제 아이와 함께 자란 시간과 공부방에서 서로 배운 시간들은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글라이더)에 담았습니다.


어린이, 청소년, 엄마, 아빠, 가족, 교육이 제 핵심 주제입니다. 책에 담기는 주제는 이 범위를 크게 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 쓰고 있는 책은 《10대와 마주하는 인문고전_공자와 논어》입니다. 사마천, 아리스토텔레스를 연이어 집필할 계획입니다.


제가 언론시민운동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현재보다는 미래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생각도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저는 책을 생명체, 에너지로 봅니다. 제 에너지와 책의 에너지를 섞는 거죠. 책의 이론에만 빠지지 않게 노력합니다. 그리고 문장은 대화를 통해서 길러진다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쉽게 이야기를 나누듯 하는 게 '오승주 문체'라면 문체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양자역학의 아버지 막스 플랑크가 《과학적 자서전》에서 서글프게 회상한 문장을 소개합니다. 저는 플랑크의 생각에 동감하며, 제 인생을 베팅해볼 생각입니다. 적절한 소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납득시키고 그들을 이해시킴으로써 승리를 거두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자들이 결국에 가서 죽고 그것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 막스 플랑크, 《과학적 자서전》



아내가 인터넷에 사진 공개하는 거 싫어합니다. 그래서 남자1,2,3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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