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학생들과 산책하면서 강의하는 것을 즐겼다. 또 강의 내용에 대해 질의 및 의논을 하며 거닐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때 그들이 걸어 다녔던 산책길을 페리파토스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인 페리파토스 학파가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소요학파라고 부르는데, 소요란 마음 내키는 대로 슬슬 거닐며 돌아다니는 것을 뜻한다.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걷기 혹은 산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골방에 틀어박혀 머리를 싸매가며 고민하기도 할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는 인맥을 총동원하여 많은 대화를 통해 해결점에 다가갈 것이다. 물론 그들 중의 누군가는 산책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한다. 갑갑한 실내를 벗어나 탁 트인 야외로 나와 걷다 보면 일단은 기분이 전환된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돌아다니면 한껏 고양된 기분이 두뇌를 활성화시키기 때문이겠다.
나 역시도 종종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주변을 돌아다니는 습성이 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막혔던 부분이 뚫리거나 조금은 더 색다른 표현들이 생각나곤 한다. 그렇다면 이때의 걷기 혹은 산책은 걷거나 돌아다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각 및 사색이 그 목적이 되는 셈이다. 걷는 혹은 산책하는 행위가 나를 또 다른 차원의 글쓰기의 공간으로 데려다 놓는 역할을 하는 것이니까.
이렇게 산책을 할 때는 아무래도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뭐라고 해야 할까, 30분에서 1시간쯤 걷는다고 가정했을 때 몸에 약간의 땀이 맺힐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보면 산책의 효과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지금처럼 우리를 지독하게도 괴롭히는 이 폭염 속에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땀을 내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건 산책을 통한 사색이 아니라, 그저 운동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한다면 이 폭염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산책은 그리 권장할 만한 게 못 된다. 별다른 도리가 없다. 가급적 그늘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강렬한 햇빛만 내리쬐지 않는다면 웬만큼 걸어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걷기라는 무의식적인 반복 동작을 통해 나는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완전한 이동을 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일상의 리듬 속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불교의 경전인 반야심경에선 '가세 가세 건너가세'라고 하며,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건너가 큰 깨달음을 얻으라고 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라는 구절로 잘 알려진 대목이다. 그렇게 차 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것, 그래서 깨달음을 얻는 행위가 곧 산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그만큼 산책이 주는 이점이 크다. 상당한 돈을 들여 멀리 가지 않아도, 즉 바로 집을 나서서 근처를 거닐어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산책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의식적인 행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문을 통해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건너가는 것, 그것이 곧 산책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건너가 보면 나는 분명 일상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생각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약간만 과장하자면 그렇게 떠난 길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적은 아마도 없지 않았을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되었든 반야심경이 되었든 어떤 생각이나 깨달음을 얻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